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바람이 그대를 찾아간다 - 황동규
    시가 있는 사랑방 2012. 7. 29. 00:05

     

     

    황동규

     


     

    ▣ 시인의 약력
     

    1938년 평남 영유 출생. 아버지는 소설가 황순원이다

    1951(13세) 1·4후퇴 때 대구로 피난. <학원>지에 투고 우수작 등

    1954(16세) 음악에 심취. 「바그너」를 좋아함

    1957(19세) 서울대 영문과 입학

    1958(21세) <현대문학>에 <十月><즐거운 편지><동백나무>로 문단 데뷔

    1961 첫 시집 『어떤 개인 날』 이후 『비가(65)』, 『태평가(68)』, 『열하일기(72)』,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78)』, 『악어를 조심하라고(86)』, 『몰운대行(91)』

    1968 현대문학상 등

    현재 서울대학교 영문과 교수, 「대학신문」의 주간을 맡고 있다



     



     

    바람이 그대를 인식한다



     

    송 아무개(시인)




     



     

    몰운대행(沒雲臺行)



     

    황동규



     

    ……

    그 위에 환한 구름이 펼쳐진 길

    그 끝을 향해



     

    5

    몰운대는 꽃가루 하나가 강물 위에 떨어지는 소리가 엿보이는 그런 고요한 절벽이었습니다 그 끝에서 저녁이 깊어 가는 것도 잊고 않아 있었습니다

    새가 하나 날다가 고개 돌려 수상타는 듯이 나를 쳐다보았습니다 모기들이 이따금씩 쿡쿡 침을 놓았습니다



     

    (날것이니 침을 놓지!)

    온몸이 젖어 앉아 있었습니다

    도무지 혼자 있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매화꽃 1


     

    모래내 살 때 손등 데며 밤중에 간 연탄이

    실은 금강석의 전신(前身)임을

    안 게 언제지?

    여관 뜰에 막 핀 매화꽃

    모든 꽃의 마지막 냄새 같다

    냄새의 금강석?



     

    옆방에서 고스톱 치는 소리

    무릅쓰고 잠 청하다 잠 청하다

    이루지 못하고 몸 뒤척일 때

    밤 트럭 나가는 소리



     

    마당으로 난 창을 열면

    달빛 속에 귀기(鬼氣)의 매화

    마당 온통 번쩍거리는

    마음 온통 후끈거리는



     

    황동규의 <몰운대行>에서



     



     

    바람아

    멎어 버릇하지 말아라

    한지에 먹이 스민다. 산(山) 그리메 이끌고 왔는가. 한나절이나 툇마루에 않아 수선스럽게 읊조리던 노래. 물기 빠진 외로움이 마르지 않는다.

    갈 수 있거든 바람아,

    네 본성의 막막함까지 데리고 가라. 영원에 겨운 너의 울부짖음을 위해 저 하늘을 비워 두었거니, 떠나거든 되돌아오지 말아 다오. 혼자 있는 내 영혼은 접고 접히었다. 드르륵 드르륵 문풍지를 울리지 말아다오.



     

    -- 송아무개 즉흥시


     



     

    누가 물었지. 바람아, 너는 어디에 존재하는가고. 햇살을 갈무리하고 있는, 아직은 엷은 청시(靑枾)의 검은 과즙으로. 잎새들의 수선스런 팔랑거림으로, 노래하는 대추나무의 맛갈 속에.

    아니다. 나는 바라본다.

    무엇이 실체의 언덕을 걷어차며 떠나가고 있는지를.

    무엇이 우리들의 표상들에게 대상과 관계짓는 것을 주는가.

    바람.

    그대인가. 그대가 나를 바라보고 있는가. 떠나가는 것은 '나', 휘날리는 것은 '나', '나'였던 것을.……



     

    시인은 익히 알려진 대로 서울대학교에 있었다. 그 길은 알고 있는 만큼이나 가기 싫었다. 왜인가. 소학교 운동장이면 금새 그리움을 캐어 무는 눈시울이 뜨거워지는데, 서울대학교라면 절레절레 고개가 흔들리는 까닭은.

    그래 말하지 말자 배에 힘을 주고 구두끈만 졸라매자 詩를 향해, 詩로 인한 길이므로 가고자 했던 길이다. 찬밥 더운 밥 가릴 수 있으랴. 더군다나 시인은 영문학과에 계시다. 꼴성스러운 국문학과는 지나쳐도 되는 것이다.



     

    바람의 시인. 상아탑에 몸을 숨긴 은자(隱者)같은 시인은 굳이 피할 것이 뻔했다. 아마 필자의 이름으로 갔으면 삼일부복(三日俯伏)을 했어도 만나줄 턱이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만남을 위해서 몇 가지 수단을 부려야 했다. 필자는 은사이신 김용직, 박동규 교수의 성함을 미리 들먹이고, 다시 일주일간 뜸을 들인 후에, 후배이니 무조건 만나달라는 떼까지 쓰고 허락을 받았다.



     

    "선생님 저는 스포츠, 음악, 미술 등의 재질이 유전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문학은 다른 예술 장르와 달리 유전되지 않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만 저는 문학에서의 글쓰기의 재주나 특이한 감수성 등은 유전되는 것이……"

    말은 잘리고 말았다. 동시에 탐방자의 실수라는 것을 후에 깨달았다. 시인은 아버지 황순원으로 하여 수십, 수백 번의 동일한 질문을 받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 참, 문학이 어찌 음악이나 스포츠와 같겠어요. 문학은 경험의 공유라는 점에서 기술의 전수와는 다르지 않아요. 부자지간에 문학을 하면 아들이 손해예요."

    "아 제가 아둔했습니다. 천부인권과도 같이 경험의 대인적 소유권 말이죠."

    뒷골에 딱 소리가 날 정도의 깨우침이었다. 실제로 소설가 김원일, 김원우의 경우 동생인 김원우는 가족사와 관계된 소설을 거의 쓰지 않는 것이다. 한 집안의 가족사(家族史)를 형(兄)에게 모두 빼앗겨(?) 버린 탓일 것이다.

    "선생님 시대는 Eliot 주류를 이루지 않았습니까. 또 황무지를 번역하기도 했구요. 그런데 전혀 그런 냄새가 풍기지 않으니……"

    "그래요. Eliot는 좋아하지만 Eliot류는 싫어해요. 아니 일부러 싫어했어요."

    실제로 필자는 60년대의 시인들에 대해서 비꼼같은 감정을 갖고 있다. 딱딱하고, 어려우며, 아무런 감정도 없는 詩들 말이다. 흔히 난해시라 하는데 그 무미건조한 작품들은 모두 Eliot 탓인 것이다. 아니 Eliot 흉내 탓인 것이다. 그리고 시인은 이미 그때 Eliot를 기피할 만큼의 혜안과 자부심이 있다고 봐야 한다. 이러한 논의는 뒤로하자. 그가 얼마나 말 다루기에 뛰어난 기수인가는.


     

    우리 시단에 3,000여 명의 시인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시인으로 데뷔했거나, 시집 한 권 낸 것은 참다운 시인이라 할 수 없다. 그러므로 황동규 시인의 자리 매김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 점은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시도가 될 것이다. 즉 자리 매김에서 살아남은 자만이 진정한 시인의 반열에 들게 된다는 점이며, 앞으로 90년대 이후의 시단은 시인으로 남기 위해서 보이지 않는 치열함이 전개되리라고 믿는다.

    황동규. 시력 : 30년, 시집 : 7권, 문학상 : 따질 필요 없음. 왜냐하면 문학상을 제정한 후에 그에게 수상한 것으로 문학상이 권위를 부여받는 작태까지 있음. 평론가들의 평가 ; 더할 나위 없이 높여지고 있음. 독자층 ; 공식적인 통계는 한국의 출판구조상 알 수 없음. 분명한 것은 고정적이며 베스트셀러에 가까운 고급 독자가 있음. 아마도 다섯 손가락 안에는 드는 고급 독자층의 소유자임.

    시인의 시사적(詩史的) 위상(位相) ; 김소월 이후 분명히 열 손가락 안에 넣어야 한다고 필자는 생각함. 그러나 이것은 권위 있는 중진 평론가 김주연(金柱演)의 다음과 같은 글에 의해서 유추한 것임.



     

    위대하다는 문학 작품들은 대개 신비주의의 모습을 하고 있다. …… 신비주의와 신 중심주의를 모두 포괄하는, 철학과 신학까지 통합하는 높은 단계의 보편성이 이때 기대된다. ……황동규는 우리 시단에서 바로 이 보편성이 기대되는 몇 안 되는 시인 가운데 한 명이며, ……단연 우리들의 관심 가장 앞머리에 위치해 있다. ……위대한 것처럼 보이며, 또 그렇게 선전된 많은 시인들에게 있어서도 우리의 삶의 본질적인 문제에 대한 근원적 통찰이 결여된 채, 감성적 자기 확인과 피상적인 사회 문제, 혹은 관념적 이데올로기를 대상으로 한 돈키호테식 싸움을 너무 자주 발견한다. 철저한 세속주의적 세계관―그나마 시인 자신 스스로 인식하고 있지도 못하기 때문에 삶과 세계에 대한 인식의 깊이가 낮을 수밖에 없다.……이른바 정신적인 깊이로까지 내려간 듯한 시인들, 가령, 서정주·김수영·김춘수 들에게도 그 한계는 그대로 나타나는데 그 원인에 대한 분석과 음미야말로 오늘의 우리 시에서 가장 긴요한 작업으로 생각된다.……50년 시인 황동규는……그런 의미에서 20세기 후반의 한국 시사(詩史)이다. 50년대의 전후시 분위기를 부분적으로 물려받으면서, 60년대의 개인주의적 감성과 자아의 문제, 70년대의 강렬한 현실의식, 80년대의 새로운 종합과 심화를 거듭해온 그의 시의 살과 피를 몸으로 모두 겪음으로써 보다 지양된 시의 총체적 모습을 위한 전망의 확보에 있어서 미상불 가장 책임 있는 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다.



     

    - 김주연, 황동규의 <몰운대行> 해설에서 발췌함


     

    황동규의 시사적 위상에 대해서 두 가지만 덧붙이고자 한다. 첫째 그는 「출판사 시대의 문학」을 열었다는 것이다. 60년대 김 현, 황동규, 김병익, 문학과 지성사. 독자들은 무슨 뜻인지 알리라. 둘째 그와의 영향권의 논의를 짚어 보고자 한다. 아마도 80년대에 가장 조명을 많이 받은 시인은 황지우와 이성복이 아닌가 한다. 자 독자들은 황동규, 황지우, 이성복 3사람의 시집을 나란히 두고 읽어보라. 두 후배시인에게서 황동규의 냄새를 맡을 수 있으리라. 촌스럽게 사상이니 이념이니 하지 마라. 통사구조와 발화법을 유심히 살펴 보라. 황지우의 스타카토(staccato)식 끊어 치기와 이성복의 얌전한 해서체(楷書體)식 통사구조는 분명히 황동규의 시에서 발견된다. 우연인가? 영향권 안에서 놀았다는 뜻인가? 하나하나 증명해 보일 수 있는 지면이 없음이 안타깝다.

    황동규 ― 그러므로 그는 더욱 큰, 더욱 커지는 시인이다.



     

    "선생님의 시집 몰운대행 중에서 저에게는 <매화사 1>이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낭패였다. 두 번 째 실수였다. 시인은 얼굴을 붉히며 펄쩍 뛰는 거였다.

    "아니 그 시가 제일 좋다고, 허어 이거 이런 수준이라면 만남이 없었어야 하는 건데."

    이럴 때는 기다리는 거다. 화가 가라앉을 때쯤 매듭을 풀어야 한다. 굳이 이런 부분의 대담을 삭제하지 않는 것은 까닭이 있다. 먼저 시인은 끼워 넣기 정도의 시로 생각하고 있으며, 필자도 전체 시집에서 뛰어난 시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짜투리 정도의 작품인데도 황동규의 맛이 있으며 모름지기 시인이라면 이 정도는 되고서야 발표하라는 것이다. 둘째 그에게 가는 길은 8차선 고속도로였다. 남이 간 길을 다시 갈 필요가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작가세계> 92년 여름호에서 그의 문제작들은 모두 훑어버린 것이다. 좀 엉뚱하게 <매화사 1>를 통해서 황동규식 시작법을 찔러 보자는 것도 좋은 공부 재료가 될 것이다.

    매화를 바라보는 황동규는 옛것에 대한 그리움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아니 의고풍(擬古風)의 멋깔쯤은 가볍게 일축해 버린다. 상식이나 습관성 무의식까지 도외시한 시간과 공간 속에서 시인은 소요한다. 매화, 지조, 왕조, 충신의 기침소리, 한월(寒月), 엄숙주의 그 어떠한 기존 관념도 존재하지 않는 무중력의 공간 속에 발길질을 툭툭한다. 이쯤 돼야 황동규의 시로서 출발할 수 있는 것이다.

    매화를 바라볼 때 일반인들은 공시적이지 못하다. 아니 매화 자체가 통시적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인의 매화는 공시적이다. 여관방, 고스톱, 밤트럭 나가는 소리 속에 존재한다. 도대체 매화의 배경치고는 너무 잔인한 것이다. 이미지의 대립이 시적 긴장을 가져온다고 하더라도 연탄과 매화 이건 말도 안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매화를 통해서 연상하고 거슬려 올라간 과거는 성삼문의 새남터도 정몽주의 선죽교도 아니다. 기껏해야 30여 년 전쯤의 모래내인 것이다. 그래서 더욱 신선한 것이다. 이것은 시인 스스로가 말하는 「첫 행부터 당돌하고 의표를 찌르는 작업」을 한 때문일까. 그의 시작법(<작가세계>, 92년 여름호, 시인의 시론, 알레고리와 상징의 밀회)을 정리해 보자.



     

    1) 낯설게 하기에 신경을 쓴다.

    a) 첫 행부터 의표를 찌르는 작업

    b) 북받치는 마음이 과장을 허용

    c) 화자의 열기가 충전된 발언 내던지기

    d)너무도 당연하므로 낯설게 한다

    2) 여행시를 쓰는 이유는 여행은 시인의 일상생활이기 때문이다. ―일상생활은 시의 보고이다. 그러나 낯설게 하기에 실패하지 않아야 한다.

    3) 초월적인 것도 일상생활에서 출발.

    4) 구체적인 사물 제시도 낯설게 하기의 장치이다.

    5) 알레고리와 상징이 만나는 순간 포착.

    6) 5)항을 위해서 무의식의 도움이 필요하고 중요하다.

    7) 중간을 끝처럼 만드는 요령



     

    ― 이상 상게서 황동규의 시론에서 발췌 정리



     

    시인은 대담 중에 매화에 대해서 매우 해박했다. 그는 승주(昇州)에 있는 선암사의 매화가 한국 제일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의 매화는 모래내의 연탄갈기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이것은 그의 시론 1)의 a)항에 해당된다. 나머지 항과 <매화 2> 작품과의 관계는 생략하기로 한다.

    여기서 그가 말하는 삶의 비유가 되는 세계, 즉 알레고리와 혼이 만나는 세계, 아니 만나는 것이 아니라 뜨겁게 밀회(密會)하는 순간을 어떻게 포착하여 형상화시켰는가를 검토해 보자.



     

    시인은 평범한 일상의 경험 ― 연탄과 모래내에서의 생활 ― 과 진부할 수 있는 명제(연탄=탄소=금강석)를 대비시킨다. 이 정도는 중학교 정도의 과학지식이면 충분히 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주의력이 깊은 독자는 '연탄=금강석'과 '연탄=금강석의 전신(前身)'의 차이점을 알아차릴 것이다. 그렇다. 前身이라는 평범한 어휘의 긴장도나 낯설게 하기는 그것이 첫 연의 끝에 나타나는 냄새의 금강석이라는 진술과의 함수가 있다는 것이다.

    시인은 「금강석=Diamond=남자의 성기=석가모니佛」로 연결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연탄의 소진이 방을 데우듯이 석가모니의 고행이 인류의 가슴을 데웠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었을까.

    그러므로 그는 제 2연에서 고스톱과 밤트럭 나가는 소리라는 일상사를 끌어들이고 극락과 깨달음은 바로 우리들 사바세계에 있다는 대승불교의 널리 알려진 진리를 설파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말이다. 이러한 일상성으로의 치환을 통해서 시인은 만유불성(萬有佛性)이라는 석가의 깨달음 하나를 넌지시 우리들에게 떠밀어내고 시치미를 떼고 있는 것은 아닌가 말이다.

    시인은 마당으로 내려선다. 여관방의 수선스러움을 내던져 버리고, 그리고 그는 매화를 바라본다. 옆 방에서 고스톱 치는 소리, 또 옆방에서 헐떡이는 소리, 그리고 새벽 일찍 시동이 걸린 비릿한 휘발유 냄새. 그곳에서 시인은 어쩌면 불편했을 하룻밤을 미워하지도 후회하지도 않는다. 담담한 긍정의 순간에 매화 향기에 이끌린다. 냄새의 금강석, 냄새의 진신사리(眞身舍利), 아니 온 마당이 후끈거리고 번쩍거린다. 기막히구나 후각을 금속성 이미지로 치환시킴이여. 분명하구나. 여관집 마당에서 그가 본 것은 매화가 아니다. 대웅전의 본존불이렷다.

    아마도 필자는 <매화 1>에 대해서 과도한 의미를 부여했는지 모른다. 시인은 또 겸손하게 무의식적으로 썼노라고 그의 시론을 빌려 말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필자에게는 하나의 약속이 있다. 왜 그가 언어의 천재이며, 또「바람이 그를 인식한다」를 표제어를 달았는가에 대한 너스레를 풀어야 하는 약속 말이다.


     



     

    내가 아픈 불두화佛頭花가

    붉은 귀를 내밀었다

    자꾸 귀 막으면

    꿈이 점차 처절해진다

    새가 하나 떨어진다

    개가 딴 곳을 보며 짖는다

    ……

    신기하다

    날개 없는 새들이 날고 있다

    상처 없는 입을 봉한 채

    나는 걷고 있었다

    우리는 걷고 있었다



     

    ― 황동규 <신초사新楚辭> 중에서



     

    상기한 시에서 자아와 대상과의 전이가 일어난다

    나=불두화는 붉은 귀를 내밀었다.

    (나는 듣고 싶다, 처절하게, 불두화는 붉은 귀 즉 꽃봉오리를 내밀면서 세계를 인식한다. 나의 말을 듣고 싶다. 나는 대상이며 불두화가 인식의 주체이다. 나=자꾸 귀를 막는다. 상처 없는 아니 상처 있는 입을 봉한다. 불두화의 꽃봉오리를 자꾸 막으면 찌그러진다. 꿈은 처절해진다. 불두화는 피지 못한다. 아니 찌그러진다.



     

    걸어서 항구에 도착했다.

    ……지전紙錢에 그려진 반듯한 그림을

    주머니에 구겨 넣고

    반쯤 탄 담배를 그림자처럼 꺼버리고

    조용한 마음으로

    배 있는 데로 내려간다

    정박중의 어두운 용골龍骨들이

    모두 고개를 들고

    항구의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 황동규 <기항지寄港地 1> 중에서



     

    만일 직관이 대상의 성질을 맞추어져야 한다면 나는 우리가 어떻게 대상을 선험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만일 대상(감각의 대상으로서의 대상)이 우리의 직관 능력의 구조에 맞아야 한다면, 나는 아무런 어려움 없이 그런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다.

    ― Kant. B XVI f.



     

    일반적으로 시인은 시를 쓰는 사람들은 시인의 눈으로 대상을 바라보고 인식한다. 그리하여 우리의 모든 인식은 대상을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듯하다. 그러나 황동규는 Kant의 코페르니쿠스적 행위처럼 대상이 우리들의 직관능력의 성질을 따르게 만드는 해묵고 골치 아픈 형이상학을 내던지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초기 시 <기항지 1>에서부터, 즉 배의 용골이 항구와 시인을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기항지 1>, <불두화>, <매화사>는 일관성이 없는 것일까. 왜 대상과 인식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황동규에게서 폭발하고 있는가.



     

    시인과의 목례. 넉넉한 미소.

    가을비. 대학본부 앞 잔디. 창포 냄새, 규장각. 굴원의 시 이소경 ― 사람마다 즐거움이 따로 있는데 나홀로 결백을 사랑했었네. (民生各有所樂兮余獨好修以爲常). 관악이 싫다하는 바람의 귓속말. 필자의 혓바닥 위로 뜻모를 화두가 굴러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울지 마라

    바람아

    하늘로 가는 길을 닦는 것이

    그토록 외로웁던가

    맨 처음 빛은 하이얀 형식이었느니라



     

    -- 송 아무개 즉흥시



    후기 ;
    황동규 시인은 한 마디로 뭐 같았다. 이 글을 꼼꼼히 읽어 보라. <매화 1>이 시인가. 이런 시를 괜찮은 시로 분석해 주었다. 그런데 무엇이 불만인지 <심상>지를 못 살게 굴었다. 그래서 박동규 교수의 제자들이 달래느라고 문예지에 몇 번이나 글을 실었다.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 황동규의 <즐거운 편지> 전문

    여러분 어때요, 좀 뭐 같다는 생각들지 않나요. 애인과 헤어졌는데 사소한 일이죠. 타이거 우즈 같은 바람둥이라서요. 이 시가 무슨 영화에 나오고 아이들의 수능 언어 영역에 나오고 유명해졌는데요. 황동규가 워낙 랄지 랄지 하니까 서울대 국문과 출신들이 출제위원으로 들어가서 내 주었을까요. 이 시가 발표되던 70년대는 이미자가 동백 아가씨 부를 때죠. 헤일 수없이 수많은 밤을 당신 생각만 하고 있을 때죠. 이 시는 그런 정서와는 멀죠. 90년대에 나타난 압구정동 오렌지 스타일이죠. 보릿고개가 목줄을 맬 때에 누군가에게 매달리지 않으면 못 살 때죠.
    그런데 황동규는 20년이나 앞선 정서 과히 천재죠. 그런데 영문과 교수죠. 영어권 시 베낀 게 아니라면 황당하죠. 정지용의 <향수>가 하버드 출신 천재 시인의 시 번역하다 슬쩍 자기 시로 발표한 것처럼
    나는요, 이때 받은 핍박으로 시인을 찾아간다 그만 쓴다고 다짐했어요. 갑자기 그만 두면 이상할 터이니 몇 번 더 쓰고 그만 쓴다고 마음 먹었어요. 황동규 아버지 황순원 더럽게 부자죠. 평양에서 결혼할 때 그 많은 평양 시민에게 모두 떡 돌렸다고 해요. 황순원 며느리에게 들었어요.
    ㅆㅡㅂXX들, 친일파 XX들 잘 먹고 잘 살고 그 자식은 서울대 교수 해 쳐 먹고 그렇죠. <소나기> 기억나요. 자신의 첫 사랑을 기념하기 위해 소녀 하나씩 죽어야 되죠. 황순원 가이XX. 나는 니가 너무 잘 죽었어, 억울해 임마.
    내가요. 중학교 출신 장정일과 서울대 교수 황동규의 천재성 비교라는 글 쓸려다가 말았어요.
    --------------------
    위대하다는 문학 작품들은 대개 신비주의의 모습을 하고 있다. …… 신비주의와 신 중심주의를 모두 포괄하는, 철학과 신학까지 통합하는 높은 단계의 보편성이 이때 기대된다. ……황동규는 우리 시단에서 바로 이 보편성이 기대되는 몇 안 되는 시인 가운데 한 명이며, ……단연 우리들의 관심 가장 앞머리에 위치해 있다. ……위대한 것처럼 보이며, 또 그렇게 선전된 많은 시인들에게 있어서도 우리의 삶의 본질적인 문제에 대한 근원적 통찰이 결여된 채, 감성적 자기 확인과 피상적인 사회 문제, 혹은 관념적 이데올로기를 대상으로 한 돈키호테식 싸움을 너무 자주 발견한다. - 이상 김주연 교수의 글.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신비주의, 신 중심주의, 철학, 신학, 보편성 이런 말들이 한 자리에서 대구가 성립되나. 이러니 황동규나 김주연이나 무식하기는 매 한 가지지. 나는 그래도 황동규의 <매화사1>을 구체적으로 제대로 평론해 준 거 아니야. 

     
      1. 파우스트 2009/12/08 19:36 

        한 때 소위 '학문'을 해보고픈 생각이 있었습니다.
        [학문으로 一家를 이루는 것은 남자로 태어나 한번 해볼만한 일이다] 돌아가신 아버지는 평생 농사로 생을 마감하신 분이지만 자식이 농사를 배우면 결국 농사꾼밖에 안된다고 하시며 여느 농사꾼집 아이들보다는 농사를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손도 곱지요...
        요즘도 아들이 다니는 학교에 가니까 '누구누구 xx대합격', 촌에 가면 '아무개 둘째아들 사법시험 합격' 이런 현수막 많이 붙어 있습니다. 입지전의 인물, 스토리가 있는 인생일 수 있지요.
        노무현도 사법시험 합격했을 때 아마 봉하마을에 그런 현수막이 붙었을 수도 있다고 짐작합니다만, 관객들은 늘 드라마를 원하죠. 32살에 대학합격한 고들빼기도 신문에 났을 겁니다.
        수업시간에 들은 바로는 '황순원, 박목월, 조지훈' 이 분들이 친구지간이었는데, 아들 낳으면 같은 이름 짓자고 해서 황동규, 박동규라 했다는 이야기 들었습니다. 박동규 수업은 한 세학기 들었습니다. 학점 잘 주기 때문이었죠. 빗맞아도 B였지요. 졸업은 해야겠고, 공부는 하기 싫고, 그 수업을 듣는 대다수 학생들의 공통된 목적으로 박동규는 좋았습니다. 일주일 3시간 주업중 1시간짜리는 아예 하지 않으시고, 2시간짜리는 부친 말씀 해주시고 종종 테레비 출연하시니 수업 안하시고...
        [재는 머리는 좋은데 인사성이 없어]
        요즘 보니까 고들빼기 선생님이 꼭 이 말에 해당되시는 것 같습니다.ㅎㅎㅎ 이러면 서울대 교수 못 되거든요...
        한 날 국사과 앞에서 담배 한대 피는데, 국사과 교수님들이 도열해 계시더군요. 이병도 선생께서 출두하셨기 때문이랬습니다. 90도 인사는 기본이였죠.ㅋㅋㅋ 훌륭한 선생님을 섬기는 것이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같은 것이겠지만...
        제가 시힘 동인에 대해 알도 못하고 욕 좀 했는데요, 그것 가지고 멋도 모르고 질러댄다는 어느 시인이란 작자 말 듣고 마치 고등학교 시화전할 때 학교에 모여 끼리끼리 노는 것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촌 동네 공부

        • 파우스트 2009/12/08 19:41 

          좀 한다는 연놈들 모여 히히덕 거리고... 그 때 우리 친구들 용연사 밑에서 깡소주 빨고 있었거든요. 맘에 안들면 몇 놈 불러 다구리 치면 끽소리도 못하던 자들이요. 세상 많이 좋아졌습니다.ㅋㅋㅋ
          선생님 제가 오늘요, 본사에서 송연회한다고 불려가 낮술 한잔 했거든요. 말이 다소 거칠더라도 용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 풍경과 시 2009/12/08 19:46 

            울지 마라
            바람아
            하늘로 가는 길을 닦는 것이
            그토록 외로웁던가
            맨 처음 빛은 하이얀 형식이었느니라

            ,를

            맨 처음 빛은 하이얀 형식이었느니라
            울지 마라
            바람아
            하늘로 가는 길을 닦는 것이
            그토록 외로웁던가

            이렇게 바꾸어 읽어보았습니다. 하늘로 가는 길을 외롭게 닦는 이,를 생각했습니다.
            함께 가는 길도 필요하지만 더러는 외로운 길도 필요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했습니다.
            사과나무밭이 완성되면 작고 아름다운 잔치나 한 판 여세요. 가서 저는 도동도동 춤을 출게요.

            • 파우스트 2009/12/09 12:39

              풍경님 도동도동 춤 추시면 저는 뭐 해야하나...
              추임새도 하고 막걸리통 들고 따라다니며 술이나 올려야겠네요...^^

            • 고기 2009/12/09 13:39

              파우스트님, 풍경과 시님, 얄라셩님
              내년 봄에 사과나무 심고 잎만 나와도 초대할게요.
              그날 모임에서요. 판소리 하는 친구와 같이 와도 되거든요. 마을에서 직선거리로 1km나 떨어져서 아무리 크게 소리질러도 괜찮아요.
              도동도동 춤을 추어도 되고요.
              내 앞의 주인은 소개소를 하던 사람이었는데
              아가씨들 다른 업소에 넘기기 전에 그곳에 데려가서는 같이 벌거벗고 춤추면서 놀았다던요.
              만약 여성이 없으면 우리끼리 벗고 지내기 3시간 뭐 이런 것도 가능할 거에요. 옥스포드 대학의 교수들이 그랬다던데요.
              이런 재미 있는 게임도 가능할 거에요.
              연못에 가서 가재 1마리나, 잉어 1마리씩 생포해 오기, 20분 내로 못 잡아 오면 벌주 마시기, 노래하기, 옷 벗고 지내기 등 그러다 술 마시고 고인돌 위에서 잠자기도 되거든요. 고인돌 위에서 잠자면서 별 많이 세기 이런 놀이도 가능하죠.

              연못에 금붕어가 모두 죽었는 줄 알았는데 어, 있던데요. 물고기는 새가 오지 않으면 한꺼번에 알을 수만 개 낳죠. 한해 지나면 물반 고기 반 되지요.

            • 파우스트 2009/12/09 18:38

              건축에 대한 전문적인 식견에 또한번 감복합니다. 전원주택이 아닌 전원 감옥이라는 말씀. 장차 시골 밭에 집 짓고 사는 것을 원하였는데, 전문가의 견해를 빌려야 할 것 같군요.
              저도 사과꽃 피는 봄날이 기다려집니다.
              고맙습니다.^^

            • 파우스트 2009/12/09 20:40

              지나가다님은 술도 별로 안 하시는 것 같고... 잡기도 별로 안 즐기시는 것 같고... 책만 읽으시나요?
              어제 선생님께서 추천한 신영복선생님의 <강의>를 주문해서 받았습니다만, 지난 번 시작한 <부의 기원>도 아직 60여쪽 남아 있으니 연내독파로 목표수정을 해야할 것 같습니다. 맨날 어디 술이나 먹으러 다니니 독서가 되겠습니까. 동결사건이란 이야기를 하더군요. 애니 오클리라는 여자가 총으로 촛불을 끈다든지 하는 묘기를 하는데 1890년 황태자 빌헬름이 물고 있던 담배를 총으로 쏘아 끄는 묘기를 했답니다. 그 때 애니의 손이 조금만 떨려서 황태자가 죽었다면 1차대전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랍니다. 하잘 것 없고 우연한 일이지만 역사의 방향을 결정짓는 사건을 말하는데요, 제가 사십수년을 살다가 블러그라는 것을 알고 고들빼기 선생님과 여러 귀인들을 만나게 된 것도 동결사건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한번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 파우스트 2009/12/09 21:05

              그런 면에서 보면 저는 아주 세속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먹던 사탕을 주는 것이 친구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어릴 적 알아버렸습니다. 마음 안 맞는 모임에 가면 엄척 술을 먹고 분위기를 몰고가 버리기도 하지요. 고향에 오니까 중학교 동기회장 하라고 해서 동기생 경조사마다 쫓아다니고요... 지나가다님의 선비같은 정신을 보니 모난 돌이 안될려고 비겁했던 제 모습이 그려져서 참 부끄럽습니다.
              고맙습니다.

            • 파우스트 2009/12/10 15:14

              약간 빗나간 이야기입니다만, 고들빼기 선생님 나중에 교과부 장관이라도 추천되셔서 청문회 나가는 상상을 해보고 많이 웃었습니다. 비도 추적추적 오니 별생각을 다 하나 봅니다. 꼴통수구 국회의원들이 청문회랍시고 선생님 과거행적 캐고, 박가 시 가지고 나와 추잡한 의문 제기할 때, 명패 확 던지고 나오는 모습이 그려지니 어쩜니까.
              그냥 혼자 한번 해본 생각입니다.
              고맙습니다.

            • 고기 2009/12/10 16:27

              파우스트님,
              즐거운 상상입니다마는 실현 가능성이 없지요.

              이런 생각은 하지요.
              교과부 장관 시켜 주면, 중고교 수업일수를 일주일에 3일만 하고 3일은 자기 집에서 100km 밖에 가서 놀다 오지 않으면 졸업시켜 주지 않는다. 만약 학원 가면 퇴학이다. 그렇게 퇴학 당한 학생 검정고시 칠 자격은 5년 뒤에 준다.
              그래서 경북의 고등학교와 경남, 전남의 고등학교는 3일씩 바꾸어서 학생을 숙식시키느라 생똥이 빠지겠지요.
              전국의 논밭은 중고교생들의 놀이터가 된다. 학원에 과목당 내는 20만 원을 5배만 하면 200평 논에서 나는 생산량(60만 원)보다 훨씬 높아요. 논에서 미꾸라지를 잡든 너구리를 잡든 벼베기를 하든 상관없다.
              놀아라. 전국의 식당은 중고교생들을 찾아가느라 정신이 없겠죠. 전국의 경찰은 이 아이들이 잘 놀 수 있도록 감시하고 지도한다.
              이런 거 하겠는데 적극적으로 밀어주면 나 교과부 장관 하겠다. 싫으면 관둬라. 뭐 이런 상상에 빠지는 때가 있기는 하지요.
              놀아라, 젊은이들아, 몸으로 놀아라, 젊은이들아,
              이게 꿈이지요. ㅎㅎㅎ

          • 푸르나 2009/12/08 22:24 

            옛날부터 우리 엄마는 나보다 나이가 많았다
            나도 이제 꽤 나이 들었다 생각하며 찾아갔는데
            엄마는 어느새 또 나보다 나이가 많아 있었다
            퍼뜩 엄마의 나이를 따라가서 동무해 주지 못하는
            이것이 오늘은 참 슬펐다

            시인을 찾아서는 눈에 들어오지 않고 풍경님의 엄마라는 시가 들어옵니다.
            가슴 한쪽에 하얀 가루같은 것이 쌓이지도 않으면서 쏟아져 내리는 것처럼.
            슬프다거나 그런 거 아니고 화난다거나 그런 거 아니고
            봉화의 눈내리는 마당과 소리지르는 서울의 풍경님 우당탕 책상 밀치는 대구의 파우스트님
            그 사이에 들어오는 지나가다님이 무협영화에 나오는 협객처럼 빠르게 달리다가
            아직 시장의 왁자지껄한 걸걸한 웃음도 달빛을 바라보는 한량없음도 없이 그렇게 다가옵니다.
            사람들이 이리 많아도 괜히 외로워지는 밤입니다.
            그런데 또 좋기도 합니다.
            한결 솔직하게 드러나는 마음들이 좋아서
            말 한마디 거들지도 못하지만 옆에 서 있을 수 있어서 좋습니다.

            • 고기 2009/12/08 22:34

              파우스트님 찾아가서 아부지 이야기 했는데요.
              ---------------
              논어 <옹야>에 공자의 제자 안회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자왈, 대단하구나 회야여, 단사표음으로 가난한 동네에 사는도다. 남들은 그 근심도 감당하지 못하는데
              회야는 가난 속에서 도를 닦는 즐거움을 그만 두지 않도다. 대단하구나 회야여.

              파우스트님의 글 읽으면서 이런 글 생각났거던요.
              친구와 애인이 배신하면서 눈앞을 지나가는데 따라가서 작살 내지 않는 거 아무나 못하지요.
              내 친구는 자살하였는데, 파우스트님이 그 둘보다 잘났기 때문에 참을 수 있었다고 생각했어요.
              바둑도 잘 두고, 당구도 잘 치고 무언가 꿀릴 게 없었던 것이지요. 마음까지요.
              파우스트님의 아버님께서는 마을에 더 많이 배우시고 더 부자가 있었는지 모르지만, 안회처럼 가난하더라도 꿀리지 않고 도를 닦는 마음이 있었으므로 아들을 훌륭하게 키웠지 않을까요.
              그래 당신들 나보다 잘났다. 나는 다 떨어진 못 입고 비싼 옷 입은 사람 곁에서 꿀리지 않는 자로를 좋아하고, 아무리 가난해도 내색 않고 도를 닦는 안회처럼 아들 키운다. 이런 거 있을었을 것 같아요.
              그래서 나를 배신한 여자와 친구가 곁을 스쳐도 허허 웃는 것이지요.
              그 이야기 참 감동적이었어요.

              子曰, “賢哉, 回也! 一簞食, 一瓢飮, 在陋巷, 人不堪其憂, 回也不改其樂. 賢哉, 回也!”

              ---------------------
              풍경과 시님
              찾아가서 엄마 이야기 잘 들었어요.
              우리 엄마는 10년 앓았으니
              내 엄마랑 같이 살았던 햇수와 비슷하지요.

            • 파우스트 2009/12/09 13:21

              선생님 소설이라니까요^^
              세상이란 늘 한 쪽만 볼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김지하가 비녀산과 안장산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요,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 기억하는가 봅니다.
              중학교 1학년때 사촌형이 같은 학교 3학년에 다니고 있었지요. 덩치 큰 동급생에게 한대 맞고 형에게 일렀던 적이 있습니다. 우리형이 제 말 듣자 마자 왜 동생을 때렸느냐, 이유가 뭐냐 이런 것 다 필요없었습니다. [니가 내동생을 때렸어] 하나로 시작해 말도 못하게 두둘겨 팬 적이 있죠. 퍽퍽퍽...
              지금은 강원도에서 선생님 하시는데요, 몇년전인가 명절에 오셨길래 그 때 동생 위해서 그 놈 때린 것 물어보니까 기억도 못하더라고요... 내 생애 고마운 몇가지 경험중 하나였는데 말입니다. ㅎㅎㅎ

            • 고기 2009/12/09 13:22

              지나가다님
              자연과학과 달리 인문학은 25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진보가 별로 없었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논어에서
              단사표음을 오늘날 무엇에 비길 것이냐의 문제가 남는데요.
              나보다 많이 배운 사람, 나보다 돈이 많은 사람, 나보다 기술이 좋은 사람, 나보다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조직의 자리에 있는 사람 등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이런 사람들과 말을 할 때에 꿀리더라도
              비굴하지도 허세를 부리지도 않는 경지,
              진정한 겸손의 의미를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면 안회처럼 또는 자로처럼 덕을 지녔다 하겠지요.

          • 풍경과 시 2009/12/08 23:27 

            <아버지>
            아버지는 돌아가셨으니 나이가 무덤에서 멈추었을 것이다. 지금 어머니 나이가 아버지를 넘었다. 술 좀 그만 드시라고 여자한테 함부로 손찌검 하지 말라고 아버지를 불러 좀 야단쳐도 되겠다. 아버지가 무덤에서 뛰쳐나와도 당신보다 나이 많아진 어머니를 옛날처럼 어쩌지는 못할 것이다. 연장자에게는 늘 깍듯했던 분이니까.

            헤-- 여기다 아버지에 대한 시도 한 편 발표합니다. 안마당이니 문학상까지는 아니더라도 약간의 고료는 주시지 않을 지. ㅎㅎㅎ(고들빼기님 흉내낸 웃음입니다.)
            아버지께서는 어머니께 손찌검을 하셨거든요. 정말 무섭고 그랬습니다. 손바닥이 발바닥이 되도록 빌고 빌고 그랬습니다. 아버지도 한 많으셨던 분이었습니다. 정미소와 과수원을 했는데 홍수로 다 떠내려갔어요. 강 건너 미류나무에 걸린 시체를 보았지요. 정미소의 원동기는 떠내려가지 않고 남아있는데 형과 아버지가 그걸 붙들고 울더라고요. 저는 그 아버지와 형의 울음 속에 좀 끼워줬으면 하는 마음으로 그분들을 바라보며 혼자 울었지요.

            • 고기 2009/12/09 13:52

              풍경과 시님,
              아버님에 대하여 무언가 오해를 하는 듯한데요.
              아들은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핍박 받는 것만 기억하죠.
              그래서 아들이 효자가 되겠지만요.
              아버님께서 어머님을 정말로 손찌검을 했을까요. 손찌검이란 남자의 주먹이 정말로 휘돌리면 어머님은 크게 다쳐서 병원에 입원을 해야 했을텐데요.
              아버님은 나름 한이 깊었을 것이고, 세파를 헤쳐가다 그걸 확인하는 순간에 감정이 격해지는 것을 달래는 방법에 서툴렀다고 볼 수 있겠지요.
              그래서 혼자서 씩씩거리면서 마음씨 착한 아내가 그 대상인 양 과장과 허세를 부리면서 스스로를 달래느라 애를 쓸 때에 어머님께서는 남편의 그런 모습을 애원하는 척하면서 장단을 두드려 준 것이겠지요. 아무리 화가 나도 사랑하는 어머님을 다치게 하시지는 않았을 거에요.
              풍경과 시님은 아버님보다 더 많은 현대교육을 받았잖아요. 그래서 감정의 통제와 조절을 아버님보다는 더 잘 하겠죠. 곰곰히 생각해 보세요. 아버님께서 무엇까지 참으셨던가를.....

              그리고 정미소와 사과밭을 했다면 꽤 부자였었네요.

            • 파우스트 2009/12/09 14:32

              세상일이 마음대로 안 되던 시절 아버지의 울분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생전에 '신명'이 있다는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동네 잔치하면 앞에서 춤추고 노래하고... 술 취하셔도 꽹과리도 잘 치시고요.
              다정다감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 걸 잘 표현하지 못하는 세대였다고 생각됩니다만...

            • 고기 2009/12/09 16:04

              좋은 모습이었겠습니다.
              춤 추고 노래하시는 아버님,
              나도 아버지가 장국 메고서 춤추는것 한 번 보았는데요. 큰아버지 환갑날 아버지가 장구 치고 춤 추시던데요.
              아버지와 아들은 세대가 달라서 소통 방식이나 문화 차이로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측면도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답니다.

            • 풍경과 시 2009/12/10 11:51

              아 선생님
              읽었습니다.
              고들빼기님의 말씀 중에
              "어머님께서 남편의 그런 모습을 애원하는 척하면서 장단을 두려려 준 것"이라는 말씀이 새겨졌습니다.
              그렇다면 저의 어머니는 정말 생의 고수였겠습니다. 정말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 이제야 들었습니다.
              이 깨달음은 시 이상입니다. 어머니한테 살짝 농담삼아 물어보면 얼굴을 붉히실 듯....

              저 엉뚱한 데 와 있어서 이제 올립니다.

          • 2009/12/09 16:17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 고기 2009/12/10 10:51 

              지나가다님과 파우스트님의 정담을 읽으면서
              겨울밤이 짧게 느껴지네요.

              선비란 무엇인가. 순수한 우리말이라면 어원을 아직도 모르는 말 같은데요.
              士는 계급적 의미에서 출발하였으니 뭐라 하기 그렇고요.
              하여간 士보다 <선비>라 하면 도덕적 실천자로서 자기 시대의 책무를 느끼고 무언가 실천하는 사람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논어를 읽어 보면 공자는 마음씨 좋은 아저씨였고 10가구의 마을에도 자신보다 德이 높은 선비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말을 하므로
              파우스트님이나 지나가다님은 분명히 선비임이 분명합니다.
              스스로 선비가 아니라 해도 나는 선비로 여깁니다.
              공자가 말한 師는 三人行必有師이니 나보다 나은 점을 찾아서 스승이라 하였으며
              나보다 못한 점도 경계하여 스승이라 하였소이다.
              하오니 두 분은 스승이고 또 선비라 해야 옳소이다.
              서로를 높이 사고 사양하면서 선플(대화)을 이끌어 가는 모습이
              계단을 오를 때 먼저 오르기를 권하면서 읍을 하는 고대 선비의 모습이올시다
              원효는 저자거리의 모든 다중을 부처님이라 경배하였소이다.
              원효나 공자의 뜻에 따르면 두 분은 선비이올시다.

              • 파우스트 2009/12/10 13:15

                지나가다님에게는 모르겠지만 제에게 선비라 칭함은 너무나 가당치 않는 말씀입니다. 어디 술자리라도 기웃거리고, 손님들 눈탱이쳐서 먹고 사는 장사치을 어찌 선비라 하겠습니까.
                하지만 선생님께서 그리 지향하고 살라하시는 가르침으로 믿고 누가 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아침에 출근해 오는 길에 비가 추적추적 옵니다. 선생님 계시는 봉화는 아마 눈이 내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만...
                항상 고맙습니다.

              • 푸르나 2009/12/10 23:40

                정담을 나누시는 선비님들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듣습니다.
                읽다보면 마치 다른 세상인 것 같습니다^^

              • 푸르나 2009/12/11 00:31

                사유의 깊이가 감히 범접할 수는 없지만
                그 끝에서 읽는 이야기가 도란도란 시골집의 앞마당을 생각하게 합니다.
                아름답고 행복한 밤 되십시오...
                읽다보니 저절로 동화가 되어서 이렇게 인사를 드립니다.

                황동규 시인을 찾아서를 읽었지만
                눈에는 고들빼기님의 글만이 들어옵니다.

              • 풍경과 시 2009/12/11 00:58

                저 너머 저 산 저 재 너머도 더 너머
                봉화에 내리는 눈은 남도 사내가 도망가
                맞는 눈이겠네
                거기 또 거기 그렇게 거기 봉화에 내리는 눈은
                해발 오백 몇 미터를 훌쩍훌쩍 넘어 울며
                세상 다 덮고 덮어주고 덮으며 내리나
                고들빼기 가을도 다 간 가을을
                국화 삶아 먹고 간 가을을 무사히 덮었나 그랬겠나
                한 겨울 다 와서 추운데
                겨울이 오지 않아도 추운데
                그 너머 내가 모르는 저 산 저 고개 너머
                내리는 눈은 사과나무나 다치게 하지 말았으면 좋겠네
                눈 내려 펑펑 오지처럼 내려 덮고 덮어주고
                사과나무를 안아 준다면야 또 그 너머 무슨 세상의 눈이 다
                거기 봉화에 몰려가 내려도 나는 좋겠네
                이듬해 봄날에 새싹만 와도 초대한다는
                임의 그 먼 국토 봉화를 가보려네
                눈은 와도 와도 다 덮지도 못할 마음을
                제 아무리 내려도 우리 맘보다 얕은 눈은
                이렇게 내려도 내려도 무섭지 않네 그리울 뿐이네

                음주강의 음주운전 음주가무 음주댓글입니다
                또 제가 집구석에 살살 늦게 왔다 이제 잘랍니다
                크게 나무라지 않으신다면 좀 푹 잘랍니다

              • 파우스트 2009/12/11 02:05

                酒大이시여, 미천한 상인이 이제 집에와 다시 술을 청하려하는데 시인이 먼저 주무시려하니 이게 말이나 됩니까. 저는 오늘 황제를 알현하고 와 눈에 뵈는게 없는 지경에 이르었으니 그대 시인은 정신을 온전하게 하여 지존의 명을 기다리심이 온존할 줄 아오.
                하루종일 비가와서요, 장사도 안되고 친구가 청하여 술한잔 하고 시계를 보니 벌써 1시가 넘었구려. 그대 사랑하는 시인이여, 비록 미천하다고 하나 그대가 벗의 말을 천히 여기는 사람이 아닐진데, 그대가 말씀하신 모든 글은 이미 읽어 아는 바, 벗을 탓하지 마시기를 기원하지만... 그대의 酒境이 이미 범속의 경지를 넘은지라 삼가히 벗의 도리에서 말하는 것임을 양지하시라.
                음주강의라 하지만 소생도 이미 도로교통법의 처분을 받은 바 있거늘, 이명박의 전과 14범에는 못 미치나 구미지역 폭력전과 24범이 나를 형님이라 칭하였으니 그대의 음주강의는 선학의 웃음속에서 그 가치만 가지는 것이라 사료되오.
                선한 마음은 아무리 '씨발'이라고 해서 천해지지 않은 것을 이미 알며, 나 또한 '존나'를 외쳐도 타고난 천성을 어지럽힐 수는 없는 법, 그대가 씨발을 외쳐도 내가 능히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있으니 그대는 그 이상이 되기는 힘든 지경에 놓인 것이 명약관화한 듯하오. 그대는 술을 마셔 탈이 날 것을 걱정했지만, 하나 그것을 걱정하지 않는 뜻을 나는 이미 알고 있지만 우인들이 나를 걱정하는 것을 저어하듯, 나도 그대 속 앓음을 걱정하지는 않소. 가면 같이 가는 것이 아니겠소. 세상에 운명이란 것이 있다면 나는 갈 뜻이 생겼소. 지금 21세기, 세상의 모순이 다 해결된 것 같았지만 그렇지가 않더이다. 지나가다님은 2500년전 인문학이 완성되었다고 했는데 나는 그렇지 않더이다. 그대 시인이여, 내가 비록 그대보다 두어살 연상일지라도 그대의 덕망에 보면 하잘 것 없는 인생이거늘... 그대의 '씨발'이 자랑스럽더이다. 오늘은 벌써 새벽2시가 되어가는데, 그대의 씨발이 내게도 내재되기를 마음속 깊이 원하오이다...

              • 고기 2009/12/11 11:20

                파우스트님
                상인이 미천하다는 것은 차이나 놈들의 사고방식 같은데요.
                고려의 왕건은 상인이었지요. 상인이 나라를 세웠는데요. 신라도 상업세력의 힘으로 삼국 통일 하였지요. 조선만 바보 같은 자들이 상업을 천시하다가 나라 망했지요. 이민족에게,
                하나의 상품을 판매하는 것은 생산이지요. 수박 한 덩이를 농부가 생산하였는데 상인이 없으면 수박 먹으려 일일이 밭으로 가는 끔찍스러운 일이 발생하지요.
                그래서 종이 한장을 필요한 아이에게 전달하는 문방구 아저씨는 생산자이고요, 핸드폰 1개를 필요한 시민의 손에 돈을 받고 전하는 이는 생산자이지요.
                학교 다닐 때 서비스는 생산이라고 배웠을 터인데,
                아니 그래가지고 S대학 어떻게 들어갔어요. ㅠㅠㅠ
                내 보기에는 핸드폰 더 많이 못 파는 것, 사업체를 더 늘리지 못하는 것, 종업원을 더 많이 두지 못하는 것이 부끄러운 노릇이지요.
                나중에 사과밭에서 만나면요, 광개토대왕비문에 앉아서 막걸리 병으로 손바닥 때릴 거에요. 왜냐, 세상의 많고 많은 일거리 중에서 신성한 상업을 모욕한 죄로 손바닥을 때리노라, ㅎㅎㅎ
                광개토대왕 비문보다 큰 평평한 바위가 밭 가운데 있거든요. 그곳에서 한 잔 해요.

              • 파우스트 2009/12/11 12:48

                어제 제가 한 짓이 음주댓글이라 정신 차리고 보니 선생님께 또 비수 맞을 짓만 한 것 같습니다.
                제발 용서해 주십시오. ㅎㅎㅎ
                이 무슨 음주댓글에도 뭔가 법적조치를 취해야 하느게 아닌지, 그러면 저보다는 풍경님이 법망에 걸릴 확률이 높을 것도 같은데요...
                점심 먹고 한자 적습니다. 식사는 하셨는지요?

              • 파우스트 2009/12/11 17:56

                지나가다님의 훌륭한 글 잘 읽었습니다. 탐욕과 무지의 일관된 주제에 대한 탁월한 콘텐츠는 여전하심을 알겠습니다.
                제가 미천한 상인이라고 한 것은 상인의 미천함이 아니라 제가 미천하다는 뜻으로 생각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보부상의 예로 보여주신 탐욕의 기저에 있는 돈에 대한 지나가다님의 통찰을 이해하고, 판매를 더 못하는 것, 사업체를 더 늘리지 못하는 것, 직원고용을 더 못하는 것이 부끄러운 노릇임을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고기 2009/12/11 21:33

                지나가다님과 파우스트님의 우의는 참 아름답습니다.
                공자는 후대왕들에게 이용을 당하는데요.
                그 이유가 왕권에 대한 도전에는 관심이 없고
                통치의 방법에는 관심이 있으며 청렴 검소함을 표상하는데
                바로 이 점이 왕가에서 반기는 요소였었다고 서양의 학자들은 분석을 하지요.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제명에 처음에는 분노하였으나
                지금도 공자적 사유를 종식시킴으로써 국가 발전의 모태를 찾자고 생각하는 개념들이 있고

                허나 공자적 사유는 100여 년 전에 죽어 버렸다는 데서 이런 모토가 낡은 모토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거든요.
                아무려나 다 좋은 것이지요. 공자적 사유를 공부했다고 공자적 사유가 국가 발전의 모태라고 여기는 것도 우스운 일이고 보면
                그저 지켜 보기나 하고 혼자서 공부는 조금 해 보고 뭐 그렇지요.

                지나가다님을 초대하려면 어떡하나를 걱정하였는데 아, 파으스트님이 메일 주소를 알기 때문에 알아서 챙겨 주겠다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고인돌에 앉아서 물고기 퍼덕이는 소리 들으면서 술 한 잔 할 수 있겠는데요. 바람 따뜻하고 꽃바람이 비처럼 쏟아지는 날에 말이지요.

              • 파우스트 2009/12/12 16:38

                소주와 항주에 대한 사진이 있는 블러그를 소개합니다. 지나가다님께서 말씀하셔서 도대체 어떤 곳인가 찾다보니 멋진 사진이 가득하네요.

                到蘇州而不遊虎邱乃是憾事

              • 고기 2009/12/12 23:31

                지나가다님
                올봄에 오신다 하니 고맙습니다.
                차이나 사람 약속처럼
                날짜나 시간 단위가 아니라 년이나 계절 단위로 하는 약속이라서 참 고전적인 분위기 같아요.
                그런데 항주와 소주에는 갔다 온 후에 저 시를 알 것 같은데요. 저 시가 차이나 제일 가는 시 중에 하나라 하는데 왜 제일 가는지, 차이니즈들에게 지명이 갖는 공간의 서정은 무엇인지.
                시간의 동일성에 의한 서정이라는 것은 들어보았는데
                공간, 이 공간은 무엇인지 골똘히 생각하게 되거든요.
                무언가 불길한 예감 때문에 산에서 내려와서 겨우 블로그 확인해 보는데요.
                숙제 하나 안고 갑니다.

            • 푸르나 2009/12/12 00:10 

              오늘은 어찌하다 보니 조금 전에서야 들어왔습니다.
              왜 그러셨어요 할 수도 없고, 그저 고맙습니다 할 수도 없고 그렇습니다.
              먼 길 오시라 하기는 외람되고 정말로 봉화에 가서 찾아뵙고 싶습니다.
              제가 사람들에게 막 자랑을 해야겠습니다.
              팍 주눅들어 있었는데 봐라 하면서 큰 소리로 자랑을 하고 싶습니다.
              사람들이 놀란 눈을 하면서 보겠지요.
              그러면 저는 씨익 웃으면서 고들빼기님의 이야기를 할것입니다.

              계신 곳에는 눈이 나렸겠지요
              여기는 새벽까지 비가 내렸습니다.
              출근길에 보니 하늘이 파랗게 드러나고 포근하고 그랬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주마감이라는 걸 하는데요, 오늘이 그 날입니다.
              팀장이 자리를 비워서 하루종일 밖에서 식구들 동행하면서 고객들 집에 머물렀습니다.
              어느 집에서는 유자차를 마시고 어느 집에서는 커피를 마시고 그랬지요.
              주마감은 잘 했습니다.
              아파트 단지 돌면서 전단지 돌린 곳에서도 전화가 와서 3건이나 게약을 했구요.
              입회도 여섯 과목이나 했으니 계단 타고 내려오면서 붙인 전단지의 효과는 이만하면 성공입니다.
              어떤 때는 한 통의 전화도 없을 때가 있거든요.
              아마도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온기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내일은 회사에서 고객 자녀들을 데리고 체험학습이라는 걸 갑니다.
              가까운 경주로 가는데요
              버스타고 가면서 아이들 챙기고 사진도 찍어주고 그럴 것입니다.
              예쁜 사진 찍게 되면 보여드릴게요^^

              • 푸르나 2009/12/13 03:46

                울산 연리문화제를 준비하는 사람한테 전화를 했습니다.
                무진장 기뻐하였습니다.
                우와... 그게 바로... 블로그의 힘이구나
                하였습니다.

                저는요...
                그게요... 블로그의 힘이 아니라
                따스한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 파우스트 2009/12/12 23:06

                우리 푸여사님 귀가하셨네요.
                경주 현장학습은 잘 하셨나요? 오늘 하도 조용해서, 섭섭했거든요. 근데요, 그 용재 오닐인가 디게 슬픈 느낌이네요.
                '엄마가 섬 그늘에 굴따러 가면, 아기는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불러주는 자장노래에 팔 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

            • 고기 2009/12/12 23:32 

              푸르나님
              이곳에도 비가 와서 눈이 모두 녹아 다니기 좋아졌어요.
              좋은 일이 있는 듯 밝은 댓글 기분이 좋은데요.

              • 고기 2009/12/12 23:34 

                파우스트님
                오늘 어린 여성의 손을 잡았어요.
                마을에 혼사가 있다 하여
                방문한 김에 아이들 안아 보고
                베트남 새댁 두 손 잡아 보았어요.
                그리고 마을의 새댁들이 낳은 아들 둥이나 안아 보았어요.
                온 놈에 기가 번지는 듯하여 참 좋은 기분입니다.
                고기도 먹고요. 맛있는 반찬도 먹었어요.

                • 파우스트 2009/12/13 01:33

                  선생님 기뻐해주십시오.
                  저 오늘요, 막걸리는 한 잔 했는데요. 푸여사가 저한테 오라버니라고 했지 뭡니까. 솔직히 제가 여자 귀한 집안에서 태어나 장가 가서도 아들만 셋인 집안이잖습니까. 그런데요 푸여사가 저한테 먼저 고백을 했지 뭡니까. 오라버니라고...
                  저 지금 뽕 갔습니다. 세상에 날더러 오라버니라니요, 그래서요, 지금, 저 심각합니다. 어여쁜 여동생을 위해서 어떻게 해야되나, 일전에 말씀드렸듯이 저 단순/무식/과격하거든요. 한번 와락 안아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오라비로서의 할 도리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런 호강이 어디 있습니까. 세상에 나를 오라비라고 부른 사람은 정말 없었거든요... 저 이제부터는요 푸르나가 세상 언놈 마음에 안 든다고 하면요, 그 놈 저한테 디졌습니다. ㅋㅋㅋ
                  막걸리 3통째인데요, 오늘 정말 기분 좋습니다. 세상에 저더러 오라버니라니요....
                  푸동생 오빠만 믿어라. 으 ㅎㅎㅎㅎㅎㅎㅎ

                  푸동생이 마음에 안든다고 해서 삭제합니다. 선생님...
                  세상에 동생 말 안듣는 오라비가 있겠습니까.
                  고맙습니다.

                  가만 생각해보니 안 그래도 될 것 같아 다시 복원합니다. 푸동생 이해하시게...

                • 풍경과 시 2009/12/13 01:39

                  아 저 순정하신 파우스트님 보기가 좋은데요 삭제 안해도 푸동생이 이해하실 듯.. 마음이 그렇게 약해서 어쩌실려고...단순 무식 과격하면서도 오라비로서의 도리를 생각하시니 단순한 단순이 아니네요...죽창 같습니다

                • 푸르나 2009/12/13 03:50

                  ㅠㅠ 고백까지는 아닌데...
                  오라버니가 생겼으니 그 빽 믿고 좀 까불어도 될라나요^^

              • 풍경과 시 2009/12/13 01:11 

                좋은 일들이 많습니다. 푸여사 그 참 기막힌 명명입니다. 한참 웃었습니다.
                오라버니라는 소리를 듣고 뿅간 파우스트님의 환한 표정이 사방 만 리를 밝힙니다.
                장계가 소주에서 읊은 시보다
                “고인돌에 앉아 양어지에서 물고기 퍼덕이는 소리를 들으며 따뜻한 사과 꽃바람이 쏟아지는 날”을 길일로 받아놓으신 지나가다님의 낭만이 배승합니다.
                계절단위의 만날 날을 하염없이 기다리시는 넉넉한 고들빼기님의 마음이 자연의 그것이겠습니다. 수많은 이야기가 오고가는 이곳(고들빼기님 방)은 가히 남한 제일의 문방입니다. 잠시만 한눈을 팔아도 이야기의 높은 품격을 가늠할 수 없고 조금만 헛짚어도 엉뚱한 데 빠져 허우적 대야하니 장삼이사 필부가 들어오길 꺼려할까 걱정되기도 합니다. 기우겠지만 말입니다.
                고들빼기님의 곧고 높은 학문과 지나가다님의 넓고 넓은 식견과 파우스트님의 끝간 데 없는 정열과 푸여사님의 문풍지처럼 섬세한 감수성
                고들빼기님은 진돗개(충절 용맹 지조) 지나가다님은 보더콜리(머리가 최고 좋죠) 파우스트님은 그레이하운드(무지막지 하게 엄청 잘 달립니다) 푸르나님은 당연히 푸여사니까 푸들(두 번째 머리 좋은 개죠) 저는 똥개입니다 술취한 똥개 이거 맛은 좋은 고기입니다. 헤헤 이거 참 개에다 비유해서 죄송합니다. 다음에는 식물에 빗대어야겠습니다.
                달도 귀 기울여 내려다보고 있을 경북 봉화 어디 높은 다락에 오르신 분들이 내려오는 사다리를 아예 치워버리고 정담을 나누는 모습입니다.
                제가 사다리를 들고 가야겠습니다. 내려오시는 길 밝힐 횃불도 들고요...
                고맙고 감사하고 늘 배우고 갑니다....

                • 파우스트 2009/12/13 01:47

                  저도 오늘은 참 잠이 오지 않네요. 풍경님이 똥개라니요, 아무리 고기맛이 좋을지라도요, 시인이야말로 제 인생의 스스인걸요. 한마디 한마디가 詩입니다.
                  내일 제 둘째조카 혼인이 있어 울산가는데요, 푸동생이 거기있다지만 연락처도 모르고... 사과꽃 피는 봄 봉화에서 만나면 와락 한번 안아줘야지요....ㅋㅋ

                  우리 선생님 베트남 새댁 손 잡아주시고... 혼례식 날 고기도 잡수시고, 막걸리는 한잔 안 하셨는지요?

                  근데요 푸르나가 선생님은 할아버지 같다고 하고 저는 오라비같다고 했으니 기분 째집니다.ㅋ 우리 봉화서 사과꽃 필 때 봉화서 만나면요, 술은 제가 다 준비하겠습니다요. 올라갈 때요 제가 불로막걸리 한백통 장만해가겠습니다.

                • 풍경과 시 2009/12/13 12:31

                  장난스럽게 비유했다가 이거 참 부끄럽게 되었습니다. 저의 농에 지나가다님의 심각한 댓글을 보고 처음에는 한참 킥킥거렸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하니 이거 하마터면 제가 게르만족의 우수성을 광신했던 아돌프 히틀러가 될 뻔 했습니다. 평등 평화 사랑의 다문화 다인종국가가 되고 있는 세계의 현실을 도외시하고 인종주의 종파주의 혈통주의에 집착하는 부류가 있는데 제가 그 짝이 날 뻔했습니다. 아돌프 히틀러는 인종청소를 자행하면서 이른바 똥개들을 다 잡으면서 유대인 정신병자 신체장애인 동성애자 집시 등을 닥치는 대로 죽였습니다. 자신의 육촌동생까지 죽였으니 참 말로 할 수 없는 비극이었죠. 무심코 개들에게 제 존경하는 분들을 비유했다가 여지없이 혼났습니다. 근데 있잖아요 이거 비밀인데요 고들빼기님하고요 파우스트님하고요 서울대 순혈주의가 약간 있는 거 같아요 엄청 친하거들랑요. ㅋㅋ. 이거 아무에게도 말씀하지 말아주세요.
                  고들빼기님의 비수에 파우스트님이 찔리고 지나가다님의 비수에는 제가 찔렸습니다. 앞으로 함부로 농담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비유를 계속해야겠는데 머리를 써보겠습니다. 생물학을 제대로 공부해야지 정치한 비유 아름다운 비유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래도 당분간 저 개 비유는 제가 잊을 수 없는데 이거 참 어떻게 하죠 하 하
                  아무래도 지나가다님은 보더콜리 같은데......아무래도......

              • 풍경과 시 2009/12/13 01:25 

                고들빼기님은 청송 신기동의 느티나무(큰 그늘에 온 동네 사람들이 들지요)
                지나가다님은 상주 공검의 은행나무(여기 은행이 엄청 열립니다. 얻어먹을 게 많지요)
                파우스트님은 전남 창평의 대나무(이걸로 죽창 만들면 아무도 못 덤비잖아요)
                푸여사님 함박꽃 (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향기롭고 생활력이 있기 때문에 꽃 가운데서 왕이라 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화입니다)
                풍경과 시는 음 그러니까 저는 절 모르겠어요 흑흑 혹시 가시나무나 아닐지...

                • 푸르나 2009/12/13 03:47

                  ㅋㅋ 흑흑이라니요
                  가시나무는 절대로 아닙니다^^

                • 파우스트 2009/12/13 03:57

                  이제 모두 취침!!!

                • 푸르나 2009/12/13 09:04

                  시인님께서 놓아주신 사다리 타고 내려왔습니다.^^

                • 풍경과 시 2009/12/13 13:28

                  그렇군요 나무가 이쪽으로 보면 쓸모가 없지만 저쪽으로 보면 쓸모가 있을 수 있겠네요. 쓸모없는 가시나무가 과연 도둑을 막는 데 쓸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고 보면 가시나무인 제게도 뭔가 세상에 좋게 쓰일 데가 있을 듯 합니다. 노력하겠습니다.
                  그런데,
                  조선 중기 문신 장유라는 사람이 지은 글 중에 곡목설(굽은 나무 이야기)이 있는데 거기 보면 이런 말이 나옵니다.
                  “나무가 구부러졌을 경우 비록 보잘 것 없는 목수라 하더라도 가져다 쓰는 법이 없지만, 사람이 곧지 못할 경우에는 좋은 정치의 시대에도 등용한다. 지금의 조정을 보면 공경과 사대부로서 화려한 관복을 입고는 조정에서 거드름을 피우는 자들 치고 바른 도를 소유한 자는 보기 힘들다. 이처럼 구부러진 나무는 늘 불행하지만 비뚤어진 사람은 마냥 행복하다.” 고 하여 정직하지 못하고 사사로운 이익을 추구하며 권력의 달콤한 맛만 노리는 자들이 등용되는 당시의 현실을 비판한 것이겠는데요,
                  정말 쓸모 없다(도덕적 결함을 포함하여)고 스스로 생각하면 관직에 나가지 않는 것이 도리일 것 같습니다. 막상 청문회가 시작되면 결격사유가 마술사의 입에서 나오는 끈처럼 계속 나옵니다. 총리도 검찰총장도 장관도 그런 사람이 너무 많아요. 그러니 이 자들이 혹시 자기는 도덕적으로는 쓸모 없지만 실용적(경제살리기)으로 쓸모 있다 그렇게 생각하여 나라를 다스리는 일에 참여하지는 않는지 그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근데요 저는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말입니다. 가시나무보다는 잡초로 할랍니다. 이거 잡초가 매력이 많은 것 같습니다. 지나가다님의 말씀에는 얻을 것이 참 많으니 은행나무가 아니더라도 무조건 유실수에 비유해야겠습니다. (정색을 하고...)

                • 풍경과 시 2009/12/13 15:25

                  이것은 정말 만약이니데요 그럴리도 없고 그랬던 적도 없고 그럴 수도 없지만 혹시 저한테 공직에 대한 어떤 제안이 들어오면 나는 어떻게 할까 상상해 봤어요. 저는 절대 아니다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실력도 없지만 그것보다 저의 도덕적 결함 때문에 또는 조그만 제 개인의 자유를 잃을 것 같다는 부담도 있고요. 어쨌거나 양심에 어긋나는 그런 일을 한 적이 있다면 공직에는 안 나가는 게 개인의 양심일 텐데...그 양심을 걸러내는 방법이 부실하니....깨어있는 시민의식과 더불어 좋은 제도적 장치도 필요할 것 같아요. 물론 제도적 장치도 깨어있는 국민들의 끊임없는 노력으로만들겠지요...
                  지나가다님이나 파우스트님이나 고들빼기 샘이나 정말 만나면 참 신기하겠다 그런 생각이 듭니다. 좋은 행복한 휴일이시기를....저는 돈 번다고 사무실 나와서 일하고 있습니다. 자랑스럽지 못한 직업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이런 직업도 인정해 줬는데...지금은 제가 봐도 좀 아닌...그런...

                • 고기 2009/12/13 16:05

                  풍경과 시님,
                  사람을 동물 특히 개로 비유하는 것은 다반사인데요. '개'는 몽골에서 가장 흔한 이름 중의 하나라고 해요. 용맹성 충직성 친근성 등에서 비교할 동물이 없지요. 진도개는 너무 좋은 명칭이고요. 만주어 선생님에게서 많이 들었거든요.
                  나무로도 비교할 수 있는데, 느티나무는 그곳에 추워서인지 잘 자라지 않던데요. 들메나무가 많이 자라는데, 들메나무 군락지라고 하던데요. 들메나무는 커녕 갈매나무 같은 관목만도 못 되지만요.
                  그리고 가시나무는요, 류명도 종명도 아니지요.
                  그리고 파우스트님과 고들빼기의 무슨대 순정파는 좀 아닌 것 같은데요.
                  아마도 이 블로그에서
                  풍경과 시님의 詩 솜씨를 백락처럼 알아본 사람은 고들빼기가 아닐까요.
                  지나가다님의 백과사전에 방불하는 지적성취를 소개하기 시작한 것도 나이고요.
                  괜히 벽을 만들지 마세요.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과나무 제법 자라면 만나자고 했으므로
                  풍경과 시님만 싹 빼 놓을 생각은 없는데요.

                • 풍경과 시 2009/12/13 18:56

                  아 선생님
                  만주지역에도 잘 자라며 넓은 그늘을 만드는 나무를 몰라요. 그걸 알면 거기다 비유할 텐데요.
                  무슨대 순혈주의는 ㅋ크 부러움 시샘입니다.
                  절대 벽 쌓기 아닙니다....ㅋ 용서를....
                  제가 백락의 천리마라면 정말 한 번 용기백배 기개를 뽐내며 달려보고 싶기도....하- 욕심입니다.
                  사실요 백락의 천리마 오늘 첨 알았습니다.

                • 파우스트 2009/12/14 09:17

                  잠깐 출타하고 오니 역시나...
                  풍경님의 말마따나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뭔가 한번 생각해봤습니다. 아직은 힘도 좀 남아있고 그러나 머리에 든 것은 별로 없으니 역시 몸빵이 최고구나...ㅋ
                  어제 푸여사가 사는 울산까지 갔는데 결국 만나지 못하고 왔습니다. 술도 한잔 되고 일행도 많아 그랬는데, 어쩌면 안 보고 온 것이 그리움으로 잔직되고 봄날 봉화에서 봤을 때 이야기꺼리도 더 되고...

                  근데요, 저야 뭐 장사하는 사람이지만 선생님께서 상업이 최고(?)라 하시는 바람에 보람(?)을 가지고 있고, 학원강사도 해봤고, 신일선풍기 사장집 딸 과외도 해봤고, 예전 MBC사장하던 이득열이 집에도 가봤습니다. 요새야 개털이 되어있습니다만, 보니까 푸여사도 책 팔고 있던데요. 선생님은 사과농사 짓고...
                  요새 장사도 시원찮은데 강의라도 한번 뛰어볼까요? 먹고 사는데 뭐 귀천이 있나요? 새빠지게 돌벌어서 아이들 먹이고 가르치면 되지요. 가끔 술도 한잔 하고... 돈 없으면요 어디가서 술도 못 삽니다.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