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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그대를 찾아간다 - 황동규시가 있는 사랑방 2012. 7. 29. 00:05
황동규
▣ 시인의 약력
1938년 평남 영유 출생. 아버지는 소설가 황순원이다
1951(13세) 1·4후퇴 때 대구로 피난. <학원>지에 투고 우수작 등
1954(16세) 음악에 심취. 「바그너」를 좋아함
1957(19세) 서울대 영문과 입학
1958(21세) <현대문학>에 <十月><즐거운 편지><동백나무>로 문단 데뷔
1961 첫 시집 『어떤 개인 날』 이후 『비가(65)』, 『태평가(68)』, 『열하일기(72)』,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78)』, 『악어를 조심하라고(86)』, 『몰운대行(91)』
1968 현대문학상 등
현재 서울대학교 영문과 교수, 「대학신문」의 주간을 맡고 있다
바람이 그대를 인식한다
송 아무개(시인)
몰운대행(沒雲臺行)
황동규
……
그 위에 환한 구름이 펼쳐진 길
그 끝을 향해
5
몰운대는 꽃가루 하나가 강물 위에 떨어지는 소리가 엿보이는 그런 고요한 절벽이었습니다 그 끝에서 저녁이 깊어 가는 것도 잊고 않아 있었습니다
새가 하나 날다가 고개 돌려 수상타는 듯이 나를 쳐다보았습니다 모기들이 이따금씩 쿡쿡 침을 놓았습니다
(날것이니 침을 놓지!)
온몸이 젖어 앉아 있었습니다
도무지 혼자 있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매화꽃 1
모래내 살 때 손등 데며 밤중에 간 연탄이
실은 금강석의 전신(前身)임을
안 게 언제지?
여관 뜰에 막 핀 매화꽃
모든 꽃의 마지막 냄새 같다
냄새의 금강석?
옆방에서 고스톱 치는 소리
무릅쓰고 잠 청하다 잠 청하다
이루지 못하고 몸 뒤척일 때
밤 트럭 나가는 소리
마당으로 난 창을 열면
달빛 속에 귀기(鬼氣)의 매화
마당 온통 번쩍거리는
마음 온통 후끈거리는
황동규의 <몰운대行>에서
바람아
멎어 버릇하지 말아라
한지에 먹이 스민다. 산(山) 그리메 이끌고 왔는가. 한나절이나 툇마루에 않아 수선스럽게 읊조리던 노래. 물기 빠진 외로움이 마르지 않는다.
갈 수 있거든 바람아,
네 본성의 막막함까지 데리고 가라. 영원에 겨운 너의 울부짖음을 위해 저 하늘을 비워 두었거니, 떠나거든 되돌아오지 말아 다오. 혼자 있는 내 영혼은 접고 접히었다. 드르륵 드르륵 문풍지를 울리지 말아다오.
-- 송아무개 즉흥시
누가 물었지. 바람아, 너는 어디에 존재하는가고. 햇살을 갈무리하고 있는, 아직은 엷은 청시(靑枾)의 검은 과즙으로. 잎새들의 수선스런 팔랑거림으로, 노래하는 대추나무의 맛갈 속에.
아니다. 나는 바라본다.
무엇이 실체의 언덕을 걷어차며 떠나가고 있는지를.
무엇이 우리들의 표상들에게 대상과 관계짓는 것을 주는가.
바람.
그대인가. 그대가 나를 바라보고 있는가. 떠나가는 것은 '나', 휘날리는 것은 '나', '나'였던 것을.……
시인은 익히 알려진 대로 서울대학교에 있었다. 그 길은 알고 있는 만큼이나 가기 싫었다. 왜인가. 소학교 운동장이면 금새 그리움을 캐어 무는 눈시울이 뜨거워지는데, 서울대학교라면 절레절레 고개가 흔들리는 까닭은.
그래 말하지 말자 배에 힘을 주고 구두끈만 졸라매자 詩를 향해, 詩로 인한 길이므로 가고자 했던 길이다. 찬밥 더운 밥 가릴 수 있으랴. 더군다나 시인은 영문학과에 계시다. 꼴성스러운 국문학과는 지나쳐도 되는 것이다.
바람의 시인. 상아탑에 몸을 숨긴 은자(隱者)같은 시인은 굳이 피할 것이 뻔했다. 아마 필자의 이름으로 갔으면 삼일부복(三日俯伏)을 했어도 만나줄 턱이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만남을 위해서 몇 가지 수단을 부려야 했다. 필자는 은사이신 김용직, 박동규 교수의 성함을 미리 들먹이고, 다시 일주일간 뜸을 들인 후에, 후배이니 무조건 만나달라는 떼까지 쓰고 허락을 받았다.
"선생님 저는 스포츠, 음악, 미술 등의 재질이 유전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문학은 다른 예술 장르와 달리 유전되지 않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만 저는 문학에서의 글쓰기의 재주나 특이한 감수성 등은 유전되는 것이……"
말은 잘리고 말았다. 동시에 탐방자의 실수라는 것을 후에 깨달았다. 시인은 아버지 황순원으로 하여 수십, 수백 번의 동일한 질문을 받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 참, 문학이 어찌 음악이나 스포츠와 같겠어요. 문학은 경험의 공유라는 점에서 기술의 전수와는 다르지 않아요. 부자지간에 문학을 하면 아들이 손해예요."
"아 제가 아둔했습니다. 천부인권과도 같이 경험의 대인적 소유권 말이죠."
뒷골에 딱 소리가 날 정도의 깨우침이었다. 실제로 소설가 김원일, 김원우의 경우 동생인 김원우는 가족사와 관계된 소설을 거의 쓰지 않는 것이다. 한 집안의 가족사(家族史)를 형(兄)에게 모두 빼앗겨(?) 버린 탓일 것이다.
"선생님 시대는 Eliot 주류를 이루지 않았습니까. 또 황무지를 번역하기도 했구요. 그런데 전혀 그런 냄새가 풍기지 않으니……"
"그래요. Eliot는 좋아하지만 Eliot류는 싫어해요. 아니 일부러 싫어했어요."
실제로 필자는 60년대의 시인들에 대해서 비꼼같은 감정을 갖고 있다. 딱딱하고, 어려우며, 아무런 감정도 없는 詩들 말이다. 흔히 난해시라 하는데 그 무미건조한 작품들은 모두 Eliot 탓인 것이다. 아니 Eliot 흉내 탓인 것이다. 그리고 시인은 이미 그때 Eliot를 기피할 만큼의 혜안과 자부심이 있다고 봐야 한다. 이러한 논의는 뒤로하자. 그가 얼마나 말 다루기에 뛰어난 기수인가는.
우리 시단에 3,000여 명의 시인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시인으로 데뷔했거나, 시집 한 권 낸 것은 참다운 시인이라 할 수 없다. 그러므로 황동규 시인의 자리 매김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 점은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시도가 될 것이다. 즉 자리 매김에서 살아남은 자만이 진정한 시인의 반열에 들게 된다는 점이며, 앞으로 90년대 이후의 시단은 시인으로 남기 위해서 보이지 않는 치열함이 전개되리라고 믿는다.
황동규. 시력 : 30년, 시집 : 7권, 문학상 : 따질 필요 없음. 왜냐하면 문학상을 제정한 후에 그에게 수상한 것으로 문학상이 권위를 부여받는 작태까지 있음. 평론가들의 평가 ; 더할 나위 없이 높여지고 있음. 독자층 ; 공식적인 통계는 한국의 출판구조상 알 수 없음. 분명한 것은 고정적이며 베스트셀러에 가까운 고급 독자가 있음. 아마도 다섯 손가락 안에는 드는 고급 독자층의 소유자임.
시인의 시사적(詩史的) 위상(位相) ; 김소월 이후 분명히 열 손가락 안에 넣어야 한다고 필자는 생각함. 그러나 이것은 권위 있는 중진 평론가 김주연(金柱演)의 다음과 같은 글에 의해서 유추한 것임.
위대하다는 문학 작품들은 대개 신비주의의 모습을 하고 있다. …… 신비주의와 신 중심주의를 모두 포괄하는, 철학과 신학까지 통합하는 높은 단계의 보편성이 이때 기대된다. ……황동규는 우리 시단에서 바로 이 보편성이 기대되는 몇 안 되는 시인 가운데 한 명이며, ……단연 우리들의 관심 가장 앞머리에 위치해 있다. ……위대한 것처럼 보이며, 또 그렇게 선전된 많은 시인들에게 있어서도 우리의 삶의 본질적인 문제에 대한 근원적 통찰이 결여된 채, 감성적 자기 확인과 피상적인 사회 문제, 혹은 관념적 이데올로기를 대상으로 한 돈키호테식 싸움을 너무 자주 발견한다. 철저한 세속주의적 세계관―그나마 시인 자신 스스로 인식하고 있지도 못하기 때문에 삶과 세계에 대한 인식의 깊이가 낮을 수밖에 없다.……이른바 정신적인 깊이로까지 내려간 듯한 시인들, 가령, 서정주·김수영·김춘수 들에게도 그 한계는 그대로 나타나는데 그 원인에 대한 분석과 음미야말로 오늘의 우리 시에서 가장 긴요한 작업으로 생각된다.……50년 시인 황동규는……그런 의미에서 20세기 후반의 한국 시사(詩史)이다. 50년대의 전후시 분위기를 부분적으로 물려받으면서, 60년대의 개인주의적 감성과 자아의 문제, 70년대의 강렬한 현실의식, 80년대의 새로운 종합과 심화를 거듭해온 그의 시의 살과 피를 몸으로 모두 겪음으로써 보다 지양된 시의 총체적 모습을 위한 전망의 확보에 있어서 미상불 가장 책임 있는 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다.
- 김주연, 황동규의 <몰운대行> 해설에서 발췌함
황동규의 시사적 위상에 대해서 두 가지만 덧붙이고자 한다. 첫째 그는 「출판사 시대의 문학」을 열었다는 것이다. 60년대 김 현, 황동규, 김병익, 문학과 지성사. 독자들은 무슨 뜻인지 알리라. 둘째 그와의 영향권의 논의를 짚어 보고자 한다. 아마도 80년대에 가장 조명을 많이 받은 시인은 황지우와 이성복이 아닌가 한다. 자 독자들은 황동규, 황지우, 이성복 3사람의 시집을 나란히 두고 읽어보라. 두 후배시인에게서 황동규의 냄새를 맡을 수 있으리라. 촌스럽게 사상이니 이념이니 하지 마라. 통사구조와 발화법을 유심히 살펴 보라. 황지우의 스타카토(staccato)식 끊어 치기와 이성복의 얌전한 해서체(楷書體)식 통사구조는 분명히 황동규의 시에서 발견된다. 우연인가? 영향권 안에서 놀았다는 뜻인가? 하나하나 증명해 보일 수 있는 지면이 없음이 안타깝다.
황동규 ― 그러므로 그는 더욱 큰, 더욱 커지는 시인이다.
"선생님의 시집 몰운대행 중에서 저에게는 <매화사 1>이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낭패였다. 두 번 째 실수였다. 시인은 얼굴을 붉히며 펄쩍 뛰는 거였다.
"아니 그 시가 제일 좋다고, 허어 이거 이런 수준이라면 만남이 없었어야 하는 건데."
이럴 때는 기다리는 거다. 화가 가라앉을 때쯤 매듭을 풀어야 한다. 굳이 이런 부분의 대담을 삭제하지 않는 것은 까닭이 있다. 먼저 시인은 끼워 넣기 정도의 시로 생각하고 있으며, 필자도 전체 시집에서 뛰어난 시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짜투리 정도의 작품인데도 황동규의 맛이 있으며 모름지기 시인이라면 이 정도는 되고서야 발표하라는 것이다. 둘째 그에게 가는 길은 8차선 고속도로였다. 남이 간 길을 다시 갈 필요가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작가세계> 92년 여름호에서 그의 문제작들은 모두 훑어버린 것이다. 좀 엉뚱하게 <매화사 1>를 통해서 황동규식 시작법을 찔러 보자는 것도 좋은 공부 재료가 될 것이다.
매화를 바라보는 황동규는 옛것에 대한 그리움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아니 의고풍(擬古風)의 멋깔쯤은 가볍게 일축해 버린다. 상식이나 습관성 무의식까지 도외시한 시간과 공간 속에서 시인은 소요한다. 매화, 지조, 왕조, 충신의 기침소리, 한월(寒月), 엄숙주의 그 어떠한 기존 관념도 존재하지 않는 무중력의 공간 속에 발길질을 툭툭한다. 이쯤 돼야 황동규의 시로서 출발할 수 있는 것이다.
매화를 바라볼 때 일반인들은 공시적이지 못하다. 아니 매화 자체가 통시적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인의 매화는 공시적이다. 여관방, 고스톱, 밤트럭 나가는 소리 속에 존재한다. 도대체 매화의 배경치고는 너무 잔인한 것이다. 이미지의 대립이 시적 긴장을 가져온다고 하더라도 연탄과 매화 이건 말도 안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매화를 통해서 연상하고 거슬려 올라간 과거는 성삼문의 새남터도 정몽주의 선죽교도 아니다. 기껏해야 30여 년 전쯤의 모래내인 것이다. 그래서 더욱 신선한 것이다. 이것은 시인 스스로가 말하는 「첫 행부터 당돌하고 의표를 찌르는 작업」을 한 때문일까. 그의 시작법(<작가세계>, 92년 여름호, 시인의 시론, 알레고리와 상징의 밀회)을 정리해 보자.
1) 낯설게 하기에 신경을 쓴다.
a) 첫 행부터 의표를 찌르는 작업
b) 북받치는 마음이 과장을 허용
c) 화자의 열기가 충전된 발언 내던지기
d)너무도 당연하므로 낯설게 한다
2) 여행시를 쓰는 이유는 여행은 시인의 일상생활이기 때문이다. ―일상생활은 시의 보고이다. 그러나 낯설게 하기에 실패하지 않아야 한다.
3) 초월적인 것도 일상생활에서 출발.
4) 구체적인 사물 제시도 낯설게 하기의 장치이다.
5) 알레고리와 상징이 만나는 순간 포착.
6) 5)항을 위해서 무의식의 도움이 필요하고 중요하다.
7) 중간을 끝처럼 만드는 요령
― 이상 상게서 황동규의 시론에서 발췌 정리
시인은 대담 중에 매화에 대해서 매우 해박했다. 그는 승주(昇州)에 있는 선암사의 매화가 한국 제일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의 매화는 모래내의 연탄갈기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이것은 그의 시론 1)의 a)항에 해당된다. 나머지 항과 <매화 2> 작품과의 관계는 생략하기로 한다.
여기서 그가 말하는 삶의 비유가 되는 세계, 즉 알레고리와 혼이 만나는 세계, 아니 만나는 것이 아니라 뜨겁게 밀회(密會)하는 순간을 어떻게 포착하여 형상화시켰는가를 검토해 보자.
시인은 평범한 일상의 경험 ― 연탄과 모래내에서의 생활 ― 과 진부할 수 있는 명제(연탄=탄소=금강석)를 대비시킨다. 이 정도는 중학교 정도의 과학지식이면 충분히 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주의력이 깊은 독자는 '연탄=금강석'과 '연탄=금강석의 전신(前身)'의 차이점을 알아차릴 것이다. 그렇다. 前身이라는 평범한 어휘의 긴장도나 낯설게 하기는 그것이 첫 연의 끝에 나타나는 냄새의 금강석이라는 진술과의 함수가 있다는 것이다.
시인은 「금강석=Diamond=남자의 성기=석가모니佛」로 연결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연탄의 소진이 방을 데우듯이 석가모니의 고행이 인류의 가슴을 데웠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었을까.
그러므로 그는 제 2연에서 고스톱과 밤트럭 나가는 소리라는 일상사를 끌어들이고 극락과 깨달음은 바로 우리들 사바세계에 있다는 대승불교의 널리 알려진 진리를 설파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말이다. 이러한 일상성으로의 치환을 통해서 시인은 만유불성(萬有佛性)이라는 석가의 깨달음 하나를 넌지시 우리들에게 떠밀어내고 시치미를 떼고 있는 것은 아닌가 말이다.
시인은 마당으로 내려선다. 여관방의 수선스러움을 내던져 버리고, 그리고 그는 매화를 바라본다. 옆 방에서 고스톱 치는 소리, 또 옆방에서 헐떡이는 소리, 그리고 새벽 일찍 시동이 걸린 비릿한 휘발유 냄새. 그곳에서 시인은 어쩌면 불편했을 하룻밤을 미워하지도 후회하지도 않는다. 담담한 긍정의 순간에 매화 향기에 이끌린다. 냄새의 금강석, 냄새의 진신사리(眞身舍利), 아니 온 마당이 후끈거리고 번쩍거린다. 기막히구나 후각을 금속성 이미지로 치환시킴이여. 분명하구나. 여관집 마당에서 그가 본 것은 매화가 아니다. 대웅전의 본존불이렷다.
아마도 필자는 <매화 1>에 대해서 과도한 의미를 부여했는지 모른다. 시인은 또 겸손하게 무의식적으로 썼노라고 그의 시론을 빌려 말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필자에게는 하나의 약속이 있다. 왜 그가 언어의 천재이며, 또「바람이 그를 인식한다」를 표제어를 달았는가에 대한 너스레를 풀어야 하는 약속 말이다.
내가 아픈 불두화佛頭花가
붉은 귀를 내밀었다
자꾸 귀 막으면
꿈이 점차 처절해진다
새가 하나 떨어진다
개가 딴 곳을 보며 짖는다
……
신기하다
날개 없는 새들이 날고 있다
상처 없는 입을 봉한 채
나는 걷고 있었다
우리는 걷고 있었다
― 황동규 <신초사新楚辭> 중에서
상기한 시에서 자아와 대상과의 전이가 일어난다
나=불두화는 붉은 귀를 내밀었다.
(나는 듣고 싶다, 처절하게, 불두화는 붉은 귀 즉 꽃봉오리를 내밀면서 세계를 인식한다. 나의 말을 듣고 싶다. 나는 대상이며 불두화가 인식의 주체이다. 나=자꾸 귀를 막는다. 상처 없는 아니 상처 있는 입을 봉한다. 불두화의 꽃봉오리를 자꾸 막으면 찌그러진다. 꿈은 처절해진다. 불두화는 피지 못한다. 아니 찌그러진다.
걸어서 항구에 도착했다.
……지전紙錢에 그려진 반듯한 그림을
주머니에 구겨 넣고
반쯤 탄 담배를 그림자처럼 꺼버리고
조용한 마음으로
배 있는 데로 내려간다
정박중의 어두운 용골龍骨들이
모두 고개를 들고
항구의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 황동규 <기항지寄港地 1> 중에서
만일 직관이 대상의 성질을 맞추어져야 한다면 나는 우리가 어떻게 대상을 선험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만일 대상(감각의 대상으로서의 대상)이 우리의 직관 능력의 구조에 맞아야 한다면, 나는 아무런 어려움 없이 그런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다.
― Kant. B XVI f.
일반적으로 시인은 시를 쓰는 사람들은 시인의 눈으로 대상을 바라보고 인식한다. 그리하여 우리의 모든 인식은 대상을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듯하다. 그러나 황동규는 Kant의 코페르니쿠스적 행위처럼 대상이 우리들의 직관능력의 성질을 따르게 만드는 해묵고 골치 아픈 형이상학을 내던지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초기 시 <기항지 1>에서부터, 즉 배의 용골이 항구와 시인을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기항지 1>, <불두화>, <매화사>는 일관성이 없는 것일까. 왜 대상과 인식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황동규에게서 폭발하고 있는가.
시인과의 목례. 넉넉한 미소.
가을비. 대학본부 앞 잔디. 창포 냄새, 규장각. 굴원의 시 이소경 ― 사람마다 즐거움이 따로 있는데 나홀로 결백을 사랑했었네. (民生各有所樂兮余獨好修以爲常). 관악이 싫다하는 바람의 귓속말. 필자의 혓바닥 위로 뜻모를 화두가 굴러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울지 마라
바람아
하늘로 가는 길을 닦는 것이
그토록 외로웁던가
맨 처음 빛은 하이얀 형식이었느니라
-- 송 아무개 즉흥시
후기 ;
황동규 시인은 한 마디로 뭐 같았다. 이 글을 꼼꼼히 읽어 보라. <매화 1>이 시인가. 이런 시를 괜찮은 시로 분석해 주었다. 그런데 무엇이 불만인지 <심상>지를 못 살게 굴었다. 그래서 박동규 교수의 제자들이 달래느라고 문예지에 몇 번이나 글을 실었다.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 황동규의 <즐거운 편지> 전문
여러분 어때요, 좀 뭐 같다는 생각들지 않나요. 애인과 헤어졌는데 사소한 일이죠. 타이거 우즈 같은 바람둥이라서요. 이 시가 무슨 영화에 나오고 아이들의 수능 언어 영역에 나오고 유명해졌는데요. 황동규가 워낙 랄지 랄지 하니까 서울대 국문과 출신들이 출제위원으로 들어가서 내 주었을까요. 이 시가 발표되던 70년대는 이미자가 동백 아가씨 부를 때죠. 헤일 수없이 수많은 밤을 당신 생각만 하고 있을 때죠. 이 시는 그런 정서와는 멀죠. 90년대에 나타난 압구정동 오렌지 스타일이죠. 보릿고개가 목줄을 맬 때에 누군가에게 매달리지 않으면 못 살 때죠.
그런데 황동규는 20년이나 앞선 정서 과히 천재죠. 그런데 영문과 교수죠. 영어권 시 베낀 게 아니라면 황당하죠. 정지용의 <향수>가 하버드 출신 천재 시인의 시 번역하다 슬쩍 자기 시로 발표한 것처럼
나는요, 이때 받은 핍박으로 시인을 찾아간다 그만 쓴다고 다짐했어요. 갑자기 그만 두면 이상할 터이니 몇 번 더 쓰고 그만 쓴다고 마음 먹었어요. 황동규 아버지 황순원 더럽게 부자죠. 평양에서 결혼할 때 그 많은 평양 시민에게 모두 떡 돌렸다고 해요. 황순원 며느리에게 들었어요.
ㅆㅡㅂXX들, 친일파 XX들 잘 먹고 잘 살고 그 자식은 서울대 교수 해 쳐 먹고 그렇죠. <소나기> 기억나요. 자신의 첫 사랑을 기념하기 위해 소녀 하나씩 죽어야 되죠. 황순원 가이XX. 나는 니가 너무 잘 죽었어, 억울해 임마.
내가요. 중학교 출신 장정일과 서울대 교수 황동규의 천재성 비교라는 글 쓸려다가 말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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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하다는 문학 작품들은 대개 신비주의의 모습을 하고 있다. …… 신비주의와 신 중심주의를 모두 포괄하는, 철학과 신학까지 통합하는 높은 단계의 보편성이 이때 기대된다. ……황동규는 우리 시단에서 바로 이 보편성이 기대되는 몇 안 되는 시인 가운데 한 명이며, ……단연 우리들의 관심 가장 앞머리에 위치해 있다. ……위대한 것처럼 보이며, 또 그렇게 선전된 많은 시인들에게 있어서도 우리의 삶의 본질적인 문제에 대한 근원적 통찰이 결여된 채, 감성적 자기 확인과 피상적인 사회 문제, 혹은 관념적 이데올로기를 대상으로 한 돈키호테식 싸움을 너무 자주 발견한다. - 이상 김주연 교수의 글.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신비주의, 신 중심주의, 철학, 신학, 보편성 이런 말들이 한 자리에서 대구가 성립되나. 이러니 황동규나 김주연이나 무식하기는 매 한 가지지. 나는 그래도 황동규의 <매화사1>을 구체적으로 제대로 평론해 준 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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