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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용운이 사랑한 여인 - 경기고 서울대의 또라이들
    시가 있는 사랑방 2012. 7. 29. 00:07

     

     

    시는 내 맘대로 읽는 거다. 한용운의 <님의 침묵>을 쉽게 읽는 수는 없을까. 있다.
    여성과의 사랑시로 읽는 거다.
    한용운이 여성과 사랑하였다고 그의 민족지절이 변하지 않는다.
    뭐 학교에서 가르치는 대로 님을 불교의 깨달음이나 조국광복으로 읽어도 된다.

    나는 나대로 읽는다는 거다.

    한용운과 왜놈...
    조국의 광복에 헌신하였고
    구도의 길을 포기하지 않고 걸어갔다.
    허지만 그는 왜놈의 덫에 빠져 몸으로 여인을 사랑하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왜놈들이 대처승을 만들었으니까
    한용운은 실제적 대처승이곤 했으니까

    그래서
    <님의 침묵>이라는 시를 썼다.
    백담사를 찾아온 여인이 아이를 낳겠다 하자 거절한다.
    나는 민적(호적)이 없는 사람이요.
    아이를 낳아도 호적이 없소.

    <<한용운-당신을 보았습니다.
    당신이 가신 뒤로 나는 당신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까닭은 당신을 위하나니보다 나를 위함이 많습니다.
    나는 갈고 심을 땅이 없음으로 추수가 없습니다. 저녁거리가 없어서 조나 감자를 꾸러 이웃집에 갔더니 주인은 "거지는 인격이 없다. 인격이 없는 사람은 생명이 없다. 너를 도와 주는 것은 죄악이다." 고 말하였습니다.
    그 말을 듣고 돌어 나올 때에, 쏟어지는 눈물 속에서 당신을 보았습니다.
    나는 집도 없고 다른 까닭을 겸하야 민적이 없습니다.
    "민적 없는 자는 인권이 없다. 인권이 없는 너에게 무슨 정조냐." 하고 능욕하라는 장군이 있었습니다.
    그를 항거한 뒤에, 남에게 대한 격분이 스스로의 슬픔으로 화하는 찰나에 당신을 보았습니다.>>


    여인은 떠난다.
    허둥지둥 여인을 찾아 따라간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적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여인은 한용운의 약을 올린다. 내려갔다가 올라가는 길을 택하여 한용운에게 뒷자태를 보인다.
    단풍나무 산길을 따라 푸른 산빛을 깨치고 떠나가면 내리막길인데,
    <푸른 산 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는 오르막길이다.
    왜 님이 저 길을 택하는 것인가. 따라오라는 신호를 보내는 거다.
    이때는 단풍이 들기 시작하는 가을 산꼭대기에는 단풍나무가 산 아래에는아직 푸른 산빛이다.
    한 용운은 용기백배 소리지른다.
    님은 갔지만 나는 님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백담사를 떠나갔지만 내가 설악산 신흥사로 가면 속초에 사는 여인이 찾아올 것이니까
    나는 님을 보낸 것이 아니다.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 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이 시를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는 불교적 용어로 쳐바른 또라이도 경기고 서울대 출신의 宋 아무개 교수다. 서울대 영문과 교수했는데 인문대 교수들이 그를 <잘난 체>라 하였던 것으로 알고 있다. 색즉시공이 이 시와 무슨 상관이 있나. 회자정리 리자정회는 관련 있다 볼 수 있다. 머리 나쁜 자들의 상투 수단이 별 거 아닌거 별 거인 것처럼 말하는 습관이다. 국어교과서에도 장기간 실려 있었는데 이런 또라이들 때문에 한국 고등학생의 세상 이해 수준이 떨어졌음은 말할 것도 없다.
    이 교수가 얼마나 또라이였는지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교수들도 영어 시험 쳐서 평가 어쩌고 하는 이야기가 있어서 자신이 출제하였나 보다. 그리고 자신도 시험 쳤다. 평가는 다른 교수들이 하고, 이 송 마무개 교수가 영어 시험 과락이었다. 그때 유행한 말이 영어가 한국 와서 고생한다는 말이다.
    바로 이런 놈들이 경기고 서울대 출신의 전형적인 모습 중의 하나이다. 자기는 군대 안 가고 남들은 가라고 하는 놈들, 복무기간 줄이면 애국심 운운 하며 반대하는 놈들
    등신아 단순하게 쉽게 이해하면 제일 좋은 거다. 이건 그냥 연애시다.
    이런 놈들이 친일파 후손인 거 말 안해도 알것지.

     
    1. 파우스트 2010/10/07 10:49 

      언젠가 한번 들었던 적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한용운의 사랑시...
      이렇게 관점을 고치니 한눈에 확 들어옵니다ㅎㅎ

      • 고기 2010/10/07 10:53

        쉽게 읽어도 좋고
        어렵게 읽어도 좋고
        모두가 지 맘이지요.
        <님의 침묵>을 세상에서 가장 쉽게 읽기쯤이라고 할까요. ㅎㅎ

    2. 풍경과 시 2010/10/07 18:18 

      한용운 시인의 이 이야기를 언뜻 한 번 들은 듯도 합니다.
      쉽게 단순 명쾌하게 싸악 해석하셨네요.
      파우스트님이 좋아하게(ㅎ 사실은 제 입맛에 딱 맞아서요.) 해석되어서 저도 잘 읽고 갑니다. 연애시에다 역사 종교 집어 넣어서 해석하지 말아야겠습니다.

      • 고기 2010/10/07 19:18

        풍경님의 사랑 시를 종교 시로 해석만 잘하면
        크아 금상첨화지요.
        이 시도 종교시로 보는 견해가 대세이지만
        색즉시공 공즉시색과는 아귀가 맞지 않아서
        이 시를 이순신 장군의 승전고라 보는 것과 다른 거 없는 거 같아서요.

    3. 흰흰산 2010/10/07 21:18 

      아 선생님. 한수 배웠습니다.
      이렇게 가르치면 아주 쉽겠습니다.

      • 고기 2010/10/07 22:08

        시 이해의 한 가지 방법이랄까요.
        시 중에서 사랑시로 해석이 가능한 시는

        1. 시인이 어떤 상황에서 누구와 사랑하였는가를 먼저 궁구한 후에 이해를 하고
        2. 그의 사랑시는 더 넓게 더 깊게 해석할 여지가 있는가를 연구를 한 다음에
        어쩌고 저쩌고 하면
        3. 이해하기도 쉽고 남에게 전달하기도 쉽고
        인간 삶이 그보다 다른 차원의 세계와 닿을 수 있는 맥락도 생기고 그렇지 않을까요.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도
        깨달음의 시에 이렇게 노골적 시어를 왜 사용하였느냐
        승려가 여인과 육체적 접촉을 하였으므로
        양심의 가책 때문에 날카로운 키스라고 놓고 난 후에야 그 다음 구절들이 해석이 되지요. 이걸 깨달음의 순간이라고 하는 건 자유지요.
        돈오돈수를 첫키스라고 하였다고 망발이 되어야 하지 않는다면요.

        뭐 혼자 생각이거든요.

    4. 푸르나 2010/10/08 10:34 

      이거 중학교 때 다 외웠었는데요
      지금은 드문드문 끊기곤 합니다.^^

      • 고기 2010/10/08 10:53

        사랑시로서 뜨겁고 강렬한 정서를 읊었지요.
        승려로서 사랑이었으니
        얼마나 뜨거웠을까
        충분히 상상이 되는데
        시는 사랑을 비틀어서 표현할 수도 있고
        불교 승려였으니
        불교적 사유를 버릇처럼 외던 분인지라
        그런 흔적은 묻어 있겠지요.

    5. 겸사 2011/03/26 00:59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이제야 이글을 발견하고 읽습니다.
      이 시가 이런 뜻이 있었나요? 금시초문 ... 색즉시공 회자정리 이거 많이 암기하고 시를 이해하기 보다는 색증시공이란 말을 더 파악하느라고 ...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선생님 덕택에 한용운 시를 다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역시 종교도 음양을 비껴갈 수 없었군요.

      저는 한용운 선생님의 시 중에서 첫 구절이 사랑을 사랑이라고 하면 이미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그 시가 좋았습니다. 생활에 찌들어서 그 시를 다 잊었네요.
      한때는 저도 ...시는 못 쓰지만 시를 좋아했는데 ...
      제 문체는 하도 건조하고 버석 거려서 시와는 전혀 안 어울립니다. 내 친구는 평상시엔 건조한 언어를 쓰는데 글을 쓰면 너무나 서정적이고 아름다워서 내가 참 좋아했고 그 친구는 소설을 쓰면 시처럼 쓰인다고 제 문체를 부러워하고 우린 정말 이 궁합을 어찌해야 할지를 몰랐답니다.
      오늘도 하나를 또 배우고 갑니다.

      • 고기 2011/03/26 09:58

        님의 침묵은 노골적인 사랑시라고 봐야지요. 김소월은 민족애를 사랑시로 썼고
        한용운은 사랑시를 불교시로 바꾼 점에서 둘 다 위대한 시인의 반열에 들지요.
        이를 간파하지 않으면 김소월도 한용운도 이해하기 힘들지요.
        한용운의 시 중에서 <나룻배와 행인> 정도는 사랑시보다는 불교의 돈오점수를 읊었다는 점에서 빼어나다고 보아야지요.
        백석은 겨레의 질박한 삶을 사랑시로도 관념시로도 바꾸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의 많은 시들이 김소월도 한용운도 흉내낼 수 없는 경지를 개척하였다고 볼 수 있지요.

    6. 2011/03/28 04:19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 고기 2011/04/01 10:29

        겸사님의 첫 인상은 공부하는데 재미를 붙여
        어린 아이처럼 좋아하는 모습이었어요.
        공자는 이를 不知老라 하였는데
        국문학은 연원이 짧아 어느덧 다 보았다는 생각이 들 터인데
        역학을 통해서 연구하는 재미는 아마도 知樂의 즐거움이 있을 것 같아요.
        임수는 壬水인 듯한데
        역학을 공부하지 않아서 잘 모르겠어요.
        세상에서 제일 좋은 만남이 공부하는 즐거움을 아는 사람과의 만남이지요.
        참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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