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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여(眞如)의 그리움으로 - 박희진시가 있는 사랑방 2012. 7. 29. 00:00
시/인/을/찾/아/간/다/17 박 희 진
▣ 시인의 약력
·1931년 경기도 연천에서 태어나다
·55년 고려대 영문학과 졸업
·이한직·조지훈 추천으로 시인되다
·첫 시집으로 『실내악』(60년)을 내고 그 후 12권을 상재하다.
·61~67년까지 「60년대 사화집」의 핵심 동인으로 활동하다
·시 낭송회 130여 회. 한국 시 낭송의 개척자이시다. 79년~91년 현재까지 매월 마지막 수요일 7시에 대학로에 있는 바탕골 예술관으로 찾아가라. 시인은 천상의 목소리로 시를 낭송할 것이다.
·「시와 무용과의 만남」, 「춤과 미술과 시와의 만남」에 출연하여 열연하시다. 또 그 길을 개척하시다
眞如의 그리움으로
XXX(시인)
인간의 귀는 밖으로 뚫려 있지만 詩人의 귀는 안으로 뚫려 있는 것이다.
박희진 시인을 찾아가라. 심상사의 통보를 받았을 때 필자의 귀는 환청인 듯 가벼운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왜냐고? 사행시(四行詩)나 민요시집을 펴기까지 하는 시인의 몸부림을 기억하자. 포스트모더니즘이다 뭐다 오만가지 방정을 떠는 시단에 대하여 올곧게 서 있는 한국인이 몇이나 되겠는가.
밖으로부터의 자유인(自由人)이 아니라, 안에서 비롯되는 참자유 자재인(自在人) 으로 존재하는 시인은 누구이던가.
「아 이대로 돌 사람처럼 꽃다운 하늘 아래 단좌하여 허(虛)할 수 있음이여」라는 시를 쓴 시인의 가슴은 비우고 또 비워서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드나들 수 있겠지. 투명하여 훤히 들여다 볼 수 있겠지. 「유리와 같은 가슴의 벽을 넘나드는 투명한 슬픔」에 온몸을 적실 수 있겠지.
그러나 시인은 몇 차례의 통과제의가 있어야만 만날 수 있었다.
먼저 바탕골 예술관에서 개최하는 시낭송회에 참석하여 시낭송을 들으라는 거였다. 성철이라는 불자는 삼천 배를 해야 친견할 수 있다는데, 그보다 나은 시인인데 어찌 거역할 수 있겠는가.
마지막 수요일의 7시의 괜찮은 거였다. 입구에서 지면이 있는 김의수(金毅洙) 시인이 반갑게 맞아 주었다. 국산 카메라로 화랑 관창이 T셔츠를 입고 멋을 부린 듯이 앉아있는 시인의 모습을 찍어대던 필자는 준수하다 너무 준수하다를 몇 번이나 되뇌었다.
이윽고 김의수 시인이 내어주는 의자에 엉덩이를 붙인 필자는 이내 짜증을 내고 말았다. 가만히 들어보니 중국 관광을 끝내고 하는 시 낭송회라서 때 아닌 중국 바람이 부는 거였다. 이럴 때 관대하지 못한 필자를 용서하라, 외국 갔다 왔다는 얘기를 들어주는 참을성 있는 귀를 가지지 못한 것이다.―그 내용이 무엇이든 간에―.
당연하겠지. 그럴싸한 명칭을 붙인 중국 관광이겠지. 문인들이라서 뱀탕 관광도 섹스관광도 분명히 아니었겠지. 그러나 생각해 보라. 오줌 누고 불알 털기는 마찬가지라면서 백두산 천지에다 못된 호연지기를 부리지는 않았는지. 자연보호와 예찬에 열을 올리면서 꽃잎 몇 개 꺾어서 책갈피에 감추지나 않았는지.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왜 밖으로 밖에서가 당신들에게 자존심을 부여하느냐에 있다. 최근 수년간의 시 전문지들을 훑어보라. 해외여행 탐방시들이 지나치게 많다. 그런 詩를 볼 때마다 압구정동에서 애완견을 끼고 걸어가는 묘령의 아가씨가 자가용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모습이 연상되는 것이다. 필자는 그렇다. 그 순간마다 불란서 비디오에서 질탕하게 놀아나는 창녀들 외에는 아무 것도 연상되지 않는다.
밖으로 나온 필자는 혼자서 대학로의 벤치에 앉아 있었다.
왜 우리는 이러한가. 해외로 해외로, 해외로가 안 되면 이제는 불러들인다. 잼버리 대회라도 열어 설악산에다 세계 각국 논다리들의 똥오줌으로 금수강산을 더럽혀야 직성이 풀리지 않던가. 그래 시인까지 밖으로 설쳐대야 하는가.
지금 우리에게 진리는 밖에 있는 것이다. 밖의, 밖에서, 밖으로, 밖을 위하여 살아가는 것이다.
참으로 그러하겠는가. 진리는 언제나 밖에 존재하던가. 도대체 안이 없는 밖을 상상이나 할 수 있는가. 그리고 진리는 안에 있는 것이 아닐까. 시인이야말로 안에서 몸부림쳐야 하지 않을까.
과소비, 수억대의 외제차, 수입초과, 공동체의식 붕괴,…… 이 모두는 표상(表象)했던 것들의 전개 과정이었다.
시인이여!! 그대들은 안의, 안으로, 안에서, 안을 위하여 표상하라. 그들의 자존심을 안에서 안으로부터 안겨 주어라. 야단스럽게 구호를 외치지 않아도 대중들은 그대들과 함께 안을 자랑하고 안을 채우리라.
대학로의 어둠은 말이 없었고 마로니에는 별빛 대신 전광을 이고 있었다. 왜 내가 비분강개하는가. 도대체 나의 자아가 이 세계보다 더 진실하다는 백일몽이라도 꿈꾸고 있단 말인가. 나의 안은 안으로 차올라 넘치기라도 한단 말인가. 저녁 9시, 하여간 안으로 들어가자. 처음 박희진 시인에게서 찾고 싶었던 안을 지금 나는 밖에서 구하고 있는 것이다.
'백두산에 올라갔다 온 한국인들은 모두 백두산을 보았다 천지(天池)를 보았다고 말한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20% 정도만 제대로 구경하고 온다고 합니다. 이번에 저희들은 천지연의 현묘한 푸른 빛 신성의 가슴 빛까지 보고 왔습니다. 그러나 저희들이 보았다고 하는 것은 그러한 밖의 눈으로 보았다고 보았다 하는 것은 아닙니다. 백두산 신령님이 뿜어대는 현묘한 안개 때문에 우리 한국인들이 실제로 보지 않고도 모두 다 보았다고 말하는 그 마음의 눈으로 보았기에 보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 마음의 눈으로 보지 않고 어찌 백두산을 보았다 하겠습니까?"
시인의 목소리에는 소나무 비린내가 났으며 우쭐우쭐 흔들어 대는 팔다리는 낙락장송이 바람에 춤추는 그것이었다. 큰 키에 긴 팔의 유연함. 너무도 인상 깊었던 그 모든 것은 결국 후에 밝혀졌다. 시인은 '춤과 시와의 만남'을 통해서 공연을 할 때 반은 무용인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그래서 원효대사가 무애가를 부르는 듯한 현묘함을 T셔츠 바람으로도 충분히 연출해내는 것이었다. 그렇다, 저 분들은. 밖에서 백두산에서 안으로 뚫리게 되는 커다란 민족의 귀를 가지고 단군 할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단군 할아버지의 눈빛을 바라보고 온 것이다.
『마음의 눈으로 백두산을 보는 사람들은 볼 수 있는 사람들은 우리 한국인들뿐입니다. 아, 그리고 나는 백두산을 보기 위해서 이 머리가 백두가 되도록 살아 왔구나. 이제부터 나의 아내는 천지연이다. 나의 영혼은 그대에게 사로잡히기 위해서 아직까지 혼자 살았구나. 나는 단군 할아버지의 자손. 이제서야 나는 한국인으로서의 자기 동일성의 근거를 가지게 되었구나. 우리 실존의 뿌리가 여기에 있었구나……"
바탕골, 나아가 대학로는 천지 못의 현묘한 안개로 뒤덮였던가.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그러나 커다란 감동만이 호흡을 가다듬고 있었다.
역사학의 또 다른 비조 비코(P. H. Vico)는 말했다. 역사에는 신들의 시대와 영웅들의 시대 그리고 인간들의 시대가 있다고.
그래 백두산에 오르는 모든 한국인의 눈빛은 왜 신성으로 빛나는가. 누구나 마음의 눈과 귀로, 천지연에서 울려 퍼지는 단군 할아버지의 말씀을 듣게 되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리고 한국인들에게 백두산보다 더 확실한 동일인식의 공간이 있는가. 이 지구상에 한국인을 제외하고 백두산에 오르는 순간에 인간들의 시대에서 영웅들의 시대로 그리고 신화의 시대 신들의 말씀을 들으며, 새로운 영웅들과 인간들의 시대를 만들겠다는 역사의 주체를 스스로 확인 받는 민족이 있는가.
백두산의 신성은 무엇이며, 그 자유의지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어쩌면 백두산의 명령에 우리는 조종당하고 있지나 않은가. 다시 비코(P. H. Vico)를 찾아가 보자. 그는 이상을 향한 항구적 발전의 역사(Ideal Eternal History)라는 것이 있고, 역사는 진리의 자기표상과정이라고 했다.
그렇다. 백두산이 우리들을 통해서 표상 시키는 것은 무엇인가. 왜 하나됨의 동일인식의 공간에 우리들을 부리어 놓는가. 그러한 것들로써 이루어가고자 하는 역사전개 과정은 무엇인가. 저 만주벌판까지 코리아의 이름으로 휘날리고 싶은가. 아니라면 백두산, 만주벌판 고구려라는 이름들 앞에 신들리고 마는가.
신들의 시대에는 신화나 詩로 말하고, 형이상학은 영웅들의 시대에, 그리고 인간들의 시대에 일상어로 말하는 경험과학으로 살아가게 된다는 것을 진실이라고 받아들여 보자. 20 세기도 얼마 남지 않은 오늘에 왜 우리는 영웅시대의 영웅적 문자를 쓰며 신라시대의 신들의 말씀으로 주고받고, 저 백두산의 이름으로 우리 모두는 「숭고한 시인」이 되고 마는가.
『백두산을 통하여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았노라』
들었노라. 그리고 보았노라. 박희진 시인의 한 마디가 天上의 울림으로 내려앉아 청동 빛 말씀으로 빛나는 것을.
독자들이여, 매월 마지막 수요일 대학호의 바탕골 예술관으로 가라. 가서 시인을 만나라. 이 도시의 짜증스런 일상이 사라지는 진공상태를 맛볼 것이다. 그곳에는 천상과 지상이 굿판을 벌리고 신들의 말씀만이 청동 빛 금언(金言)이 되어 그대를 위해 노래하리라.
대학로 벗마당, 그 곳에서 시인들은 필자에게 한 잔의 술을 따루어 주며 다정한 손길을 건네어 주었다. 박희진 시인의 오랜 지기이며 독신으로 사는 화가 이수, 작곡가 변규백씨까지 만날 수 있었다. 무얼까. 시인의 안과 밖은 이토록 크고 넓고 깊은 것이 아닐까. 그래서 우리는 알 수 있는 것이다. 밖으로를 모두 감싸고도 남을 수 있는 안이 있다는 것을---원효여, 나는 그대의 대승기신론소 한 줄을 빌리어 쓰고 싶으네. *욕언미의 포무외이유여(欲言微矣 包無外而有餘)라고.
注 ; * 작다고 말하고 싶으나 밖이 없는 것을 감싸고도 남음이 있다.
통과제의가 끝났으니 이제는 쉽게 맞이해 주리라. 九月의 첫 주 필자는 아침을 택해 그의 처소를 찾았다.
시인은 말없이 필자를 끌어당겨 창가로 향하는 것이었다. 일망무제로 탁 트이고, 맨 먼저 다가선다 아 북한산―.
이제 막 이내(紫霞)를 풀어 놓고, 그의 고전적(古典的) 빛살로 충만한 이마에는 아직도 남아있는 듯한 달빛의 비린내. 아 북한산이 저리도 신비롭고 현묘하던가. 필자는 진여(眞如)의 법문에 들어설 때 불이(不二)의 경계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아득함이 이러하리라 싶었다.
생각해 보라. 저 넉넉한 사랑이 어디에서 비롯되었기에 이 자리 오욕칠정을 대번에 씻어주는가.
묻힐만한 강호의 대숲도 없어라. 묻어버릴 세월이 있는 처사(處士)도 아니어라. 우리 모두는 콘크리트 숲 속으로 기어 들어가야 하는데. 문명이라는 천박한 누더기로 더욱더 초라해지는 이 몸뚱아리를 어쩌지 못하는데.
아 바라보면 언제나 마주할 수 있는 山이 있다는 것은 눈물겨워라 얼마나 넉넉한 축복으로 남는가.
시인과 북한산은 서로의 눈빛과 이마를 어루만지며 진여(眞如)의 그리움으로 향하는 버릇을 키우고 길렀으리. 그리운 님아, 너의 비린내와 나의 투명함으로 교미를 하면 달냄새 풍기는 정액이 떨어지고, 그곳에는 형체도 없이 소리도 없이 스스로의 각을 뜨는 한 줄의 시가 떠오르지 않더냐
밤이 되어 찬란한 보석들이 어둔 하늘을 수놓을 때에 배가 고파도 견딜 수 있어라 실상 이렇게 유리와 같은 가슴의 벽(壁)을 넘나드는 투명한 슬픔은 내 아무런 生에의 집착을 지니지 않음이니 아 이대로 돌 사람처럼 꽃다운 하늘 아래 단좌하여 허(虛)할 수 있음이여 나는 아노니 이윽고 내 야기(夜氣)에 젖어 차디찬 입가엔 그 은밀한 얇은 파문(波紋)이 새겨질 것을
- <허(虛)> 全文
밤으로 오나 낮으로 오나, 투명한 슬픔으로 비우고 또 비운 가슴 안으로 밤과 山이, 별과 시인이 하나가 되어 자유로이 넘나들 수 있음이니, 어쩌다 쓰게 되는 시라는 것도 眞如의 피안이 잠시나마 무명(無明)으로 흔들리게 되던 얇은 파문이던가. 그리하여 山아 북한산아. 우리 이렇게 진여의 창에 기대어 그리움 추스르면, 스스로 그리움 되어 북한산이 되는 것을, 창으로 굳는 것을.
시인은 山에 취한 필자를 말없이 끌어당겼다. 손수 끓인 찻잔이 놓인 탁자에 앉아 꿈결인 듯 분위기를 잡았다.
"고등학교에서 영어 선생 23년 했지. 언제나 그만두고 싶은 23년이었지. 그만 두고 나서 정말 살 것 같더군. 모르지. 국어선생이었다면 끝까지 했을는지."
그러실 겁니다. 선생님, 선생님은 안으로 우리 것을 향해서 끝없이 불어대는 바람. 그리고 그 바람을 잠재우고 키워주는 山이었더군요. 왜인가요. 독신으로 살아 이제는 예순인 지금도 쓸쓸해 보이지 않는가요.
스스로는 언제나 혼자 살았고, 혼자 있어야 마음이 놓였다는 유년기의 외로움을 차분하게 털어놓는 한 마디 한 마디에도 흐트러짐이 없다. 얼마나 고전적인 몸가짐인가. 시가 좋고 시인임을 자랑하는 강한 신념 속에서 쏟아지는 모든 것들이 보석 같은 금언(金言)들이다.
그는 1982년에 사행시(四行詩) 134편을 묶어 낸다. 우선 손에 잡히는 대로 읽어 보자. //강물은 잠들었고 달빛만 교교해라 / 비인 나룻배에 배를 툭 까내놓고 / 사공도 잠들었다 천지에 가득히 / 달빛과 나뭇내의 배를 툭 까내놓고//―<무제> 全文
아마 독자들은 형식·내용·정서·언어 모든 것이 현대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필자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좀 더 가 보자. 그의 민요집 《서울의 하늘 아래》를 펼쳐보면 아예 조선시대풍인 것이다.
이쯤 되면 박희진과 사행시에서 우리가 받는 것은 고려대 영문과 출신이 갖는 선입견조차 흔들리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박희진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조선 시대적이 아니라 전(全) 시대적이며, 오히려 형식과 내용을 초탈해 버렸다는 것을 이해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는다.
문학평론가 최동호는 말한다. 「박희진의 시를 읽으면 중량감을 느낀다. 이 중량감은……헌신적인 자기 집중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문학예술 91년 9월호
여기서 최동호가 말하는 중량감과 자기집중을 그의 시에서 충분히 느끼고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원인은 전혀 들먹이지 않았다. 그 이유를 필자는 나름대로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본다.
먼저, 박희진은 스스로도 밝히고 있듯이 형식과 내용을 무관하다고 생각하는데서 그의 시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즉 20C말과 「사행시」의 부조화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것이다. 이것은 그의 시를 이해하는데 지극히 중요하다. 형식과 내용을 무시함으로써 오히려 폭과 깊이를 확대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범박한 역사발전 이론까지도 무시하는 것이다. 필자도 그렇다. 변증법을 자주 들먹이는 자 치고 창조력이 뛰어난 자는 본 적이 없다. 즉 모든 것을 변증법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면, 변증법으로는 아무 것도 해결할 수 없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본 논의에서 다룰 것이 아니므로 그만 두기로 하자.
둘째, 그의 시는 금언적(金言的) 성격을 갖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필자가 서두에 비코(Vico)를 말하면서 언급한 바 있다. 그의 모든 시어의 내용, 정서, 비유법 등이 금언적 성격을 띄고 있다는 것은 그가 영웅시대로 회귀하는 「형이상학적 사유」를 즐기는데서 쉽게 알 수 있다. 동시에 앞의 명제 형식과 내용의 무시와도 관계가 있는 것이다. 그의 시는 言外言으로 말하는 법어(法語)이며, 고아한 품격으로 시대의 소모품이기를 거부하는 언어의 세계에 들어앉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비코가 말하는 영웅시대나 신라시대로의 회귀성이 오히려 그의 시에 중량감을 더해 주리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으며, 오늘날 역사발전 단계설이 부정되듯이, 역사발전의 각 과정과 「언어나 문자」와의 관계도 수정돼야 한다는 것이다.
끝으로 그의 시는 안으로 뚫린 귀로 쓴 글들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안」이란 두 가지 뜻을 지닌다. 하나는 「우리의 것」을 나타내며 다른 하나는 구도자적 내적 성찰을 함유하는 안이다. 그의 시가 과도한 우리 형식, 우리 정서, 우리 소재에 치중되어 있다는 것이 바로 안으로에 해당되며, 노자, 장자, 불교, 무속적 내용을 담으면서 金言的 내용과 품격을 드러낼 때의 구도적 시가 후자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그의 시(詩)를 한 줄로 요약한다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싶다.―안으로 뚫린 귀에서 곰삭은 형이상학적 금언(金言)들이 빛의 반란을 꾀하며 영원의 시공 속으로 날아가고 있다.
필자의 시인탐방기를 끝내면서 두 가지 아쉬움을 말한다.
첫째 「진여의 그리움으로」라는 제목을 고집할 때의 불교적 세계관의 소개가 없었다는 것이다. 이 점은 그의 시를 읽으면서 필자가 얻은 제명이나 지면 관계상 아쉬움만 표한다.
둘째, 그의 시를 금언적(金言的)이라 할 대의 금언을 내용으로 파악하지 말아달라는 것이다. 그의 시를 내용으로 파악하면 형이상학적 교술시로 남게 되는 위험이 있다. 아니다. 그의 시가 주는 서정, 품격 등에서 시대를 뛰어넘는 빛살과 향기를 풍긴다는 뜻이다. 그래서 言外言으로 직접적으로 다가온다고 표현한 것이다.
끝으로 사르트르의 이야기를 통해서 시인은 말했다. 문학은 사회적 억압에 싸운 것이지만 시인은 예외자다 라고. 그리고 북한산 진달래의 서문에 적힌 「참된 시인은 시대를 예견한다」는 그의 신념을 믿는다.
그의 시편들을 보자
천년의 비린내가 풍길 것이다.
너는 시작이자 끝이고, 끝이자 시작이다
흐르는 유현(幽玄)이다
오오 영원에 빛깔이 있다면
니르바나에 빛깔이 있다면 그것은 청자색
前生의 기억들을 상기하려 왔다
이 싱그러운 비릿내는 무엇인가
서설 밑 당신(인수봉) 몸에 새로
돋은 비늘 비늘
구만리 밖에 티끌로 떨어지고
정화된 공간에 홀로 고운 그녀
松韻을 들을 줄 아는 귀라야 별들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다
소나무는 그 그늘에조차 엷은 보랏빛 神韻이 감돈다
솔잎 사이로 새는 달빛으로 목욕을 할까나
―<북한산 진달래에서> 임의 발췌
필자는 그의 북한산에 마지막일별을 던지고는 호일당(好日堂)에서 떠나야 했다. 그 때 보았다. 영원의 빛줄기 하나 펄럭이는 것을. 필자의 목울대에 꽂히는 화살을.
그리고 여기
뜻 모를 화두 한 점 붉게 토한다
원효대사여,
시간의 안과 밖을 나에게 다오.
대승의 종체를 표(標)하고 싶다.
후기 ; 시인이 끓여주는 차를 마시는데 어디서 전화가 왔다. 지금 전화가 아니고 따르릉 말이다. 말없이 듣더니 아무 말 없이 내려 놓으셨다. 그리고 나직이 말씀하셨다. 30년 동안 걸려오는 전화라고 하였다. 시인은 독신이고 그를 사모하는 여성은 30년 동안 구애의 전화를 하고, 목소리만 듣는 거일 수도 있다. 나는 그 무엇도 물어보지 않았다. 2009년 11월 26일, 헌재에서 혼인빙자간음을 위헌이라고 하였다. 남녀 사이의 성애는 어디까지 법이 간섭해야 하는가. 나는 간통죄라는 개념 자체를 부정한다.
법을 야릇하게 만들면 30년 동안 전화만 받은 박희진 시인도 처벌할 수 있으리라. 한편 30년 동안의 전화는 지금은 스토킹으로 처벌 받을 수도 있으리라. 두 사람을 탓할 수 있는 이승의 법도는 없으리라. 아마도 새 우니 꽃잎이 지는 것이지 바람 탓이랴. 저 봄날의 새, 꽃, 바람 탓이랴. 그마저 부정 당한다. 꽃이 지는 거 바람의 탓이 아니란다. 북한산에게 물어보면 알라나.
꽃이 지기로소니 바람을 탓하랴. 엄숙주의 시대는 지고 말았다. 그의 시만 남아 虛함을 일러준다.
30년 동안 전화하는 거,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는가. 엄숙주의의 虛함인가. 김주대 시인이 필자에게 시를 쓰라고 하였다. 30년 동안 전화를 하였는데, 그 세월에 사내는 60이 되었는데, 20여 년 전화를 또 하란다. 80을 바라보는 시인이 아파도 미음 죽 한 번 끓여 주지 못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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