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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에 어찌 주인이 없겠는가 - 허영자시가 있는 사랑방 2012. 7. 28. 23:57
허영자
▣ 시인의 약력
경남 함양, 38년 생이란다
명문 경기여고 출신이다
숙명여대 국문과와 같은 대학원에 다니다
1962년 木月 시인이 시인의 멍에를 씌우다. 현대문학으로
5권의 시집을 꾸몄다. 『가슴엔 듯 눈엔 듯』 『新展』 『어여쁨이야 어찌 꽃뿐이랴』 『빈 들판을 걸어가면』 『조용한 슬픔』
5권의 시집을 내고 또 5권의 시선집으로 여미었다. 생각해 보라.. 얼마나 사랑 받은 여성인가를
현재 성신여대의 어여쁜 새악시들을 다듬어 주는 국문학과 교수이다
내 마음에 어찌 주인이 없겠는가 XXX(시인)
하나,
열 온 즈믄 골(萬) 잘(億) 울(兆)……
시작도 끝도 없다고, 영겁의 세월이라고 그 누가 말하던가.
여인은 말한다.
당신들의 세계는 언제나 Multiverse의 구정물이 어지러이 흐르나 나에게는 항상 Universe로 모이고 고이어 새로워진다고. 초경의 비린내를 어찌 잊을 것이며, 저어기 저 하늘 여어기 이 가슴자리 태양의 정(精)을 받아들이던 첫날밤을 말해 무엇하리, 그 밤에 지배당하던 수많은 밤들까지 알고 있는데. 엉클어지고 넌출지던 오욕칠정이 첫날밤에 숨죽이던 단 하나의 기쁨, 단 한 오라기의 신비감으로 모여들지 않던가.
밤이면 밤마다 스스로를 씻어 내리던 검은 빛이여
캄캄할수록 더해지는 새로움이여
정중동(靜中動)의 꿈틀거림이여
묵시의 침묵이 깨어지는 빛부심의 비린내여
임신년(壬申年)의 새날이다
음양미분(陰陽未分), 천지혼돈(天地混沌)의 순간에 마련한 그대 허벅지 속의 현묘한 검은 빛이 열린다. 붉디 붉은 속살의 각혈이 이글거린다. 새 날의 태양이다. 새 빛의 비린내가 꿈틀거린다.
빙기염 선자분(騁氣焰 先自焚)
더 멀리, 더 높이, 더 많이 태우고 싶은 불꽃의 치달림이여. 그대 스스로를 먼저 불살라야 하는 것을.
여인아.
치맛귀를 여미지 말라. 알몸에 알몸을 까 보자. 그대 오장육부까지 모두 벗기어 시뻘건 거품을 토하라. 스스로의 붉은 갈기로 박차를 때린다. 우리 모두는 한 몸뚱아리. 임신년의 태양으로 둥실 두둥실 타오르자.
xxx의 즉흥시 - 욱일승천
탐방자, 불청객이오나 독자 여러분에게 새해 큰 절 올립니다.
詩人 허영자.
영자의 전성시대, 장영자, 전화번호부 영자란. 전자와 후자의 느낌은 너무 다르다. 시인의 이름이 가지는 창조적 분위기란 무엇일까. 우리들은 영자라는 이름 앞에서 좀 복잡하고 불량기 있는 느낌들이 스미곤 하지 않던가.
그러나 시인 허영자, 너무나 상큼하고 청초하며 언제나 모과 냄새가 입안을 감돌게 하지 않는가. 실제로 허영자 시인은 신비한 분위기 때문에 젊은 여성들에게 대단히 인기가 있다고 한다. 이것은 시인이라는 고정관념 때로는 허영자 시인 특유의 분위기가 세속의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압도하는 좋은 예가 될 것이다.
더구나 1992년은 心象으로서는 스무 살을 먹게 된다. 시 전문지 스무 살. 그것도 1월호의 Title 시인은 여류시인 허영자. 참으로 많은 면에서 의미가 있을 것이다.
노자(老子)는 도덕경에서 여성을 현묘한 암컷(玄牝)이라고 했다. 그럴 게다. 여성은―
모든 것의 시작이면서 끝을 물고 있으며, 모든 것을 삼키면서도 아무 것도 담고 있지 않는 태허(太虛)의 충만인 것이다. 다함도 깊이도 없는 어둠이면서 태양보다 더욱더 환한 빛살을 품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년제(成年祭)에 찾아가는 허영자 시인은 길조(吉兆)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더 깊이, 더 크게, 더 멀리, 더 높이 온 누리의 환한 햇살이거라 심상(心象)이여, 온 누리를 품고 온누리를 낳을지니.
성신여자대학의 어여쁜 아가씨들은 똑똑했다. 탐방자의 정체를 단번에 파악하는 거였다. 좌우로 쫘악 갈라지면서 슬금슬금 피해가지 않는가. 하기야 시커먼 피부에 핵폐기물 같은 탐방자의 상판때기를 저리도 어여쁜 아가씨들 앞에 내민 용기는 지나침이 아니었겠는가.
시인은 대학도서관의 도서관장이었다. 운정관(雲庭館)이라. 시인의 상서로운 구름은 핵폭탄의 버섯구름까지 세척해 주시겠지.
"고향이 함양이라면 지리산 자락에 깔린 유학의 훈기가 심했을 텐데요. 대단한 가문 출신은 아니신지요."
"한미(寒微)한 몰락 선비 정도겠지요. 본관은 경상북도 하양입니다."
"아니, 하양이라구요. 허노제(許魯齊)선생의 일화가 아름다운 곳인데요."
너무 쉽게 풀리는 분위기였다. 탐방자는 수년 전 조선시대 영·정조 때 한문학 사대가(四大家)의 한 사람인 이덕무(李德懋)가 쓴 사소절(四小節)을 읽은 적이 있었다. 허영자, 하양 허씨, 허노제, 대화는 아주 자연스러운 길을 찾아가고 있었다.
― 허노제가 더운 여름 하양을 지나갔다. 목마름이 심했다. 길가에 배나무가 있었다. 모두를 다투어 따먹었으나 그만이 단정히 앉아 있었다. 누군가 말했다. 난세라서 이 배 밭에는 주인이 없습니다. 노제가 말했다. 배나무에는 주인이 없겠지만 내 마음에도 홀로 주인이 없겠는가. (許魯齊 署中過河陽 喝甚 道有梨 衆爭取啖 而獨危坐 或言 世亂此無主 曰 梨無主 吾心獨無主乎)
― 이덕무(李德懋)의 『사소절(四小節』에서 인용
※ 당시 필자는 잘못 알고 있었다. 허노제, 즉 허형(許衡)은 元나라 사람이었다. 하양도 중국의 지명이다. 『元史』, 열전(列傳)45 참조
"참 멋있고 괜찮은 남자이군요."
시인은 그저 담담하고 환한 미소뿐이었다.
"경산은 경주 세력에게 패배 당한 2세기 이래로 천민들의 거주지였습니다. 부곡(部曲)이 설치되어 있었지요. 그런데 허씨 가문만은 거의 독보적인 양반 가문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경산군 하양. 경북 제일의 평야지대이다. 구만들이라 한다. 구만 마지기이니 1800만 평이다. 허나 20세기 일제 강점기까지 군(郡)이라는 명칭은 단 한 번뿐. 언제나 현(縣)이었다. 고려 때 노씨(盧氏) 성을 가진 왕비가 배출되었을 때 말이다. 허나 그녀가 죽자 다시 군에서 현인 것이다. 삼국유사를 펴 보자. 경산군 자인(하양과 접해 있다)에서 한국 최고의 철학자 원효가 태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원효와 민중불교, 당시의 세계관으로서는 코페르니쿠스와 마르크스가 합작한 것보다 더 혁명적인 세계관일 것이다. 그것이 단지 삼국통일과 2국 멸망의 참상이라는 소용돌이에서 나온 것일까. 탐방자는 경산이라는 특수한 지역을 주목한다. 즉 원효는 어린 시절부터 천민들의 비참한 삶 속에 깊은 연민과 분노를 느끼고 민중들에 대한 애정의 싹을 틔우고 또 키웠을 것이라고 짐작해 본다.
어쨌건 시인의 고전적 품위와 때깔은 하양에서 지리산으로 옮기고, 또 이 나라 최고의 명문 경기여고에서 다듬은 것이니 빈틈이 없었다. 밖에서 추켜대는 가문의 영광에도 전혀 자랑하는 빛이 없었다.
여기서 우리는 소설가들의 가문 자랑을 한번은 짚고 넘어가자. 의도적이든 아니든 박경리의 『土地』,서희라는 복부인전에서 비롯된다. 그 후 숱한 부역자, 빨갱이를 소재로 다룬 작품에까지 온통 족보 자랑판인 것이다. 솔직히 그런 작품들은 보면 신물이 난다. 참말이지 채만식의 『탁류』만한 작품을 왜 쓰지 못하는가. 사회주의 리얼리즘까지는 가지 않아도 된다. 결국 작가가 쓰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제껴 둔 채 저열한 속셈만 내비친다. 그러나 시인들은 다르다. 아직까지 가문 자랑에 열 올리는 시인은 없지 않은가 말이다. 박경리의 경우 필자는 이렇게 생각한다. 가장 문제점 있는 작가 즉 과대평가된 작가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토지』는 주제, 인물, 배경 등 모든 것이 글렀다고, 길게 쓴 재주만 있다고.
자, 이제 논의의 본질로 가자. 탐방자가 시인을 찾아가서 클로즈업시키고자 하는 바에 초점을 돌리자.
허영자 시인. 그녀는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했다. 이 말을 하기 위해서 허노제, 뿌리의 역사적 의미, 헛된 가문 자랑의 정체성까지 벗겨줄 것이다.
그렇다면 국문학과의 위상부터 따져 보자. ― 좀 엉뚱하게.
1992년도 대입시에서 서울대 국문학과에 들어가려면 필요한 국어점수의 배점은 340점 중에서 75점이다. 반대로 외국어는 80점(영어가 60점 제2외국어가 20점)이나 된다. 만약에 서울대 수학과라면 좀 심하다. 국어가 55점 외국어가 80점이다. 이것이 거룩하고 머리 좋은 양반들께서 이 나라의 백년대계랍시고 세운 국어 대접론의 각론이며 민족 주체성 확립의 총론이다. 만약 국어가 100점 영어 30점 제 2외국어 20점이면 왜 안 되는가. 생각해 보라. 서울대 국문과보다 영문과의 교수 숫자가 한두 명 더 많다. 서울대 국문과 교수는 20여 명이 아니라 200명쯤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우우, 분통이 터진다. 을사보호조약 이래 외국 군대의 국내 주둔이 올해로 80여 년이 넘는다. 오천 년 역사이래 최대의 부끄러움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래서 허영자 시인을 찾아가는 탐방자의 가슴은 너무 무거웠다. 탐방자도 국문학과 출신이기 때문이다.
― 어찌 홀로 주인이 없겠는가―.
도대체 이 나라의 주인은 누구이며, 우리 문학의 주인은 누구인가. 한국인이며, 한국어이다. 국어로 된 문학 작품이다. 각론에 들어가서 국문학과를 주인이라고 말하자는 것도 아니다. 국문학과 출신들은 자료를 정리하고 문학이라는 마당을 펼치며 뒤치다꺼리를 하는 데에 더 가까이 있는 사람이다. 이 말이 또 영문과나 불문과에 비해서 주인이라는 뜻은 더더욱 아니다.
시인의 미소는 봄비에 젖은 꽃잎보다도 곱고 해맑았다. 일그러진 탐방자의 눈빛을 지긋이 다독거려 주었다.
"쓰면 안 돼요. 그런 답변은―"
"예, 상대방에게 누를 끼치거나 본인이 설화(舌禍)를 입을 수 있는 말씀이야 전혀 언급하지 않습니다."
"남에게 말하지 말기예요, 꼭이예요."
"예, 안심하세요."
"김소월, 미당, 청마, 목월……등의 작품은 단연 돋보여요. 패거리 짓는 것이 밉지만 고은이나 신경림의 시도 참 좋아해요. 시혼이 있구나 느껴지구요."
그러나 시인이 김지하 시인을 대하는 품세는 단호했다. 일찍이 그 어떤 남자시인도 퍼부어 대지 않던 독설(毒舌)이었다. 안타까운 나머지 탐방자가 능청을 떨어 보았다. 그는 혁명가였으며 어둠 속에서 홀로 진실을 말한 지사가 아니었느냐고, 진실의 힘이 위무(威武)와 부귀와 권세보다 강하다는 것을 보여준 실천적 초인이 아니었느냐고.
"그래요, 한 번 아니다를 끝까지 했으니 사나이답다는 것은 멋있어요. 그러나 그는 시인이기보다는 사상가였어요. 오적(五賊)이 처음 발표되었을 때 재미있다는 정도였잖아요. 그런데 그게 북한 방송에 나오고 구속된 거예요. 그에게 있어서 문학이란 어디까지나 수단이었어요. 문학이 현실에 참여하여 문학적 형상화를 거두는 것은 커다란 성과예요. 그러나 그의 시 어느 곳에 그런 노력이 보입니까. 문학을 망쳐 놓았어요."
잔잔한 호수에 바람이 드세어진다는 표현 정도가 알맞을까. 시인은 단호한 자세로 스스로의 지론을 밝혔다. 어쨌건 그러하다. 한 시대와 맞선 뜨거움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흠뻑 누렸던 시인. 필자는 그에 대한 사랑만큼이나 강한 비판의식을 20여 년 전부터 갖고 있었다. 오늘은 뒤로 가는 열차를 타보고 싶다.
"저도 동감입니다. 지하 시인은 풍자의 문학, 사회 비판시, 민중 계도시를 써야 한다는 목적의식이 그의 시를 쉽게 쓰도록 만든다는 것입니다. 왜냐. 쉬워야 전달이 되니까요. 문제는 그의 시가 가진 이러한 한계성이 70~80년대를 풍비하면서 수많은 김지하 풍을 만들고 그것이 문단에 해악(害惡)을 끼쳤다는 사실입니다. 몇 가지로 나눌 수 있겠지요. 먼저 식상한 독자들의 혐오증, 둘째 그로 인한 시 기피증이 독자들의 독해력 저하, 셋째 문학의 본질과 고급시에로의 멀어짐이 가져다 주는 저급 문화에의 편승과 저급시의 범람, 이것은 60년 70년대까지는 유지되던 대중음악에서 가사의 수준 높음이 80년대로 넘어오면서 맞춤법까지 엉망인 채로 들려오곤 하는 데서도 알 수 있을 거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시인이 탐방자의 이러한 견해에 수긍했는지 알 바는 없었다. 단지 예의 그 매혹적인 목소리와 미소 속에서 어미 닭이 병아리를 어르듯 분위기만 연출해 내고 있었다. 문학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성숙되고 기품 있는 올바로 서기에로의 끝없는 귀환 속에서 폭풍우와 눈보라를 거느리면서도 우리들 삶을 지켜주는 것이 아닐까.
어찌 홀로 주인이 없겠는가. 70~80년대의 우리 시단에 진정한 주인은 어느 곳에 있었단 말인가. 아무도 말해 주지 않았다. 그러나 주인이 있으므로 잔치판이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주인 없는 잔치에서 흥청거렸단 말인가. 근거의 귀속을 거부하는 주장이 지적사생아임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임이듯, 우리들 문학이 저 더러운 정치판의 불륜이 가져다 준 사생아일 수는 없는 것이다. 고무신 한 짝 막걸리 한 잔에 흥청거리듯 우리들 문학의 주권까지 포기할 수는 없는 것이다. 말하라, 김지하와 그대들은. 그대에게 내린 두 번의 사형선고가 왜 오늘날 우리 문단에 내던진 원폭투하로 인식되는지를. 생경하고 저열한 돌연변이는 무엇인가를. 그대들과 그대들이 독선과 아집의 근친상간 속에 출산시킨 그 숱한 저능아들을 이제 조용히 데려가 주게.
(― 당시 이러한 필자의 견해는 지나쳤으며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김지하와 신경림 시인에게 거듭 사과한다. 그리고 김지하와 신경림은 아주 훌륭한 시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남정네들이 가장 사랑하는 여인은 황진이가 아닌가 싶다. 중국인들은 심복이 지은 『부생육기(浮生六記)』에 나오는 심복의 안내 운(芸)을 가장 사랑한다고 한다.
※ 『부생육기(浮生六記)』― 沈復 저.
정이 두텁게 고이면 못생겨도 싫어하지 않는다(情之所鍾 雖醜不嫌)고 하는 것으로 보아 미인은 아니었나 보다. 그러나 두보와 이백에 대한 시평의 날카로움을 보여 주며 남편과 시 짓기를 한다. 달빛 걷기(步月)의 아취가 있는가 하면 은은한 연꽃향기가 풍기는 연화다(蓮花茶)를 끓일 줄 안다.
허영자 시인의 이미지는 황진이보다는 운(芸)쪽이었다. 탐방자는 수십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구 경기여고 자리 즉 덕수궁 돌담길을 끼고 데이트를 하고 싶었다. 그러나 쌀쌀맞기가 어떠하리. 여린 소년의 가슴에 소낙비로 때리는 다듬이리라.
점심 식사를 나누며 애써 통닭튀김을 권하는 거였다. 옛날 장모님들은 사위가 오면 언제나 닭고기를 내놓았다면서. 운이라는 여성은 사위를 보기도 전에 요절했다는데.
a)
꽃아
정화수를 씻은 몸
새벽마다 참선하는
미끈대는 검은 욕정
그 어둠을 찢는
처절한
미소로다
꽃아
연꽃아
<蓮> 全文
b)
귀뚜라미
귀뚜라미
울지 말아라
네 그리
하 애닯이
목메이면
얼음같은
내 마음도
금가려 한다
차돌 같은
내 마음도
깨지려 한다
<귀뚜라미> 全文
c)
또 한 번 天地는
흔들리누나
꽃잎은 펑펑
눈처럼 쏟아지고
고꾸라질 듯 고꾸라질 듯
내 영혼 흐느끼느니
알고 싶구나 愛人아
바람 부는 날에는 그 마음에도
아픈 금이 그이는가
<바람 부는 날> 全文
d)
아차 대질리면
어혈드는 살
바라다만 봐도 문드러지는 살
어스름 달빛 고요히
비껴 가는 살
至純無垢한 聖處女의 살.
<복숭아> 全文
세속에 절은 낙진을 덮어쓰고 시인을 찾아가는 괜스러움이 부끄럽다. 그녀를 찾아가기 위해서 시속으로 시의 속살 속에서 은밀한 얼개를 더듬어 보자. 허영자의 시에서 고전적인 부드러움만을 만나러 간다면 실망하고 돌아갈 것이다. 열아홉 살 성처녀의 해맑음에 부신 눈을 씻고 나면 가슴 속 깊은 곳에 벼리고 벼린 은장도의 매서운 칼날이 목을 겨누는 것이다. 그 칼날은 남정네를 유혹하는 거짓 시늉이 아니다. 즉 대타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스스로의 목줄기를 끊어 버리겠다는 극기의 정점과 맞물려 있는 것이다.
그녀에게 연꽃은 열반의 미소로 피어나지 않는다. 미끈대는 검은 욕정을 찢어버리는 처절한 자기 파괴의 미소로 피어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녀는 운다. 아니 울지도 못한다. 대신 울어주는 귀뚜라미에게까지 하소연하는 것이다. 가슴에 금이 가는 아픔을, 차돌같이 도사린 마음을 귀뚜라미의 더듬이로 두들겨 대지 말라고. 0.000……x. 무한대의 순결도를 가진 반도체이라야 무한대의 정보량을 소화하는 것이다. 섬세한 그녀의 영혼은 화사한 봄날 하늘과 땅을 자욱하게 뒤덮어 버리는 꽃잎 앞에서 흐느끼는 영혼을 이기지 못하고 꽃잎이 되어 고꾸라지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아 당신의 가슴에도 금이 가느냐」하는 비통한 울부짖음을, 단말마의 마지막 한 마디를 토하며.
갈증으로 속이 타는 여름날. 물컹거리는 복숭아 속살로 목을 축이어 보라. 갈증이 가시고 뱃가죽이 방실거리기 시작하거든, 한발 여유를 가지고 복숭아를 눌러 보라. 금새 시퍼런(?) 멍이 든다. 글쎄 시인은 바라보기만 해도 문드러진다고 하니 사랑하는 남정네의 눈길이 아니고서야 그렇겠나마는. 아니 시인이 사랑하는 그이 앞에서 허물어지고 싶은가 보다 이렇게 말해도 그만이겠지마는. 자세히 읽어 보라. 어스름 달빛까지 고요히 비켜 간댄다. 왜, 바라보면 그녀의 순결은 허물어지니까. 성처녀의 살은 그런 것일까. 그래서 그토록 군침이 돈단 말인가. 탐방자는 도서관 뒤뜰에서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며 몇 번이고 불안했다. 운정관(雲庭館)이니 구름이 노니는 뒤뜰이 아니겠는가. 어스름 달빛까지 비켜 가는데 카메라의 렌즈가 어찌 포착할 수 있을 것이며 그 달빛마저 구름 뒤로 숨어버리면 ― 결국 어둠뿐. 캄캄한 네거티브 필름만 성처녀로 존재하는 것이다.
a), b), c) 방점 부분에서 보이던 처절함이 d)에서 보이는 탐미적 부드러움으로 감싸고 있다면 좀 의외라는 생각이 들리라. 그러나, 어둠 속에서 빛이 솟아나며 텅 빈 골짜기 속에 가득 차오르는 바람소리가 울고 같다는 현빈(玄牝)인 것이다.
임신년 새해.
탐방자는 사진 찍기가 끝나고서도 시인과의 많은 말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시간복을 누렸었다. 심상사의 발전에 관한 문제, 문학이 정치와 사회를 포용해야지 거꾸로이면 안 된다는 소신, 심지어 한용운의 시는 사랑시가 주류인데 왜 조국이니 깨달음이니 하느냐 하는 것까지.
올바른 견해라고 탐방자도 맞장구를 때렸다. <님의 침묵에서 깨달음이나 조국을 함유한 님이 몇 번일까. 님은 갔지마는 님을 보내지 않았다고. 사랑하는 여자를 찾아가면 그만인데 왜 보냈단 말인가. 그런데 왜 존재론적 역설이라는 어려운 말만 하는가. 평론가들은 날카로운 첫 키스가 견성오도의 깨달음의 순간이라고 한다. 천만에, 마흔 여섯된 승려가 젊은 보살님과 키스를 했으니 양심의 가책으로 매일 밤 날카롭게 찔리고 찔리었으리라.
참으로 신나는 하루였다. 풀빵 틀에서 똑 같은 풀빵이 나오듯 말만하면 척척 들어맞는 거 있지―.
되돌아서기 아쉬운 발걸음으로 헤어진다는 것은 얼마나 복된 만남이겠는가.
아쉬움 때문일까. 전철 속에서 부대끼면서도 그녀에게서 풍기던 말리향 냄새로 어지러웠던 것은, 그러나 잊지는 않았다. 시퍼런 은장도의 칼끝을 갈고 또 갈아대는 것은 스스로의 주인의식을 깨우침이고자 함이 아니겠는가.
어찌 홀로 주인이 없겠는가.
이제 말한다. 시단을 아끼지 않는 객은 떠나가라고. 잔치판에 부조돈도 내지 않고 생색만 내지는 말라고. 자신의 명예만을 위하여 주책없이 기웃거리는 자, 저널리즘과 손을 잡고 스스로가 소모품인지 모르는 자, 남의 나라에서 중고품을 들여와서 비싸게 받아먹는 자. 팝콘 같은 시를 쓰면서 온갖 문학이론의 덤핑으로 순진한 독자를 우롱하는 자. 무엇보다 문학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떠나가기 바란다.
심상 창간 스무 살. 변하고 싶다. 지방 문인들을 격월제로 찾아갔으면 한다. 원로들이 아니라도 가치 있는, 때로는 가치발굴을 위해서 알려지지 않는 시인을 찾아가고 싶다. 이것은 전적으로 필자의 몫이다. 시여 용기를 주소서.
아아, 어찌하여 나는
표현의 기쁨에 구속당하는 인간으로 태어났단 말인가
사랑하고 싶다
표현하고 싶다
당신의 손길에 굶주린 창자
더 뜨거운 표현으로
이 몸부림 채워 주소서
- XXX 즉흥시
후기 ; 김지하와 신경림의 시는 위대하다. 이 글 속의 견해는 허영자의 입을 빌린 필자의 생각이다. 당시 필자의 문학관이 이정도 수준이었음을 고백한다.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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