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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수 전쟁(이상돈)
    모르는세상얘기들 2007. 5. 17. 14:07

    생수 전쟁

     

     

    이상돈 교수 (중앙대학교 법과대학)


     

     

    1. ‘먹는 샘물’ 시판 10주년


    우리가 흔히 생수(生水)라고 부르는 ‘먹는 샘물’이 합법적으로 판매되기 시작한 것이 1995년 5월 1일이니까, 지난 5월 1일은 생수 시판 10주년인 셈이다. 전세계에서 팔리는 생수가 우리나라에서는 1995년에야 공식적으로 판매되기에 이른 것은 생수를 판매하면 수돗물을 먹지 않아 수돗물 질이 나빠질 것이고, 생수를 사먹을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간에 위화감(違和感)이 생긴다고 주장한 환경단체들 때문이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오늘날 시점에서 보면 당시의 반대론은 근거가 없었던 것 같다. 생수 시판에도 불구하고 수돗물의 질은 더 좋아졌고, 생수가 부유층의 전유물(專有物)이기는 커녕 ‘국민 음료’로 자리 잡은 형상이다.

    생수를 시판하면 외국 생수의 수입을 막을 방법이 없고, 그러면 에비앙 같은 외국 생수가 몰려와서 수돗물도 못 먹는 사람과 수입 생수를 먹는 사람간에 이질감(異質感)이 생겨 국가안보를 위협할 것이라는 주장도 있었지만 그것도 공연한 걱정이었다. 외국 생수를 수입한 회사가 모두 망해 버렸기 때문이다.

    생수 시판을 결정할 당시 환경부는 1회용 프라스틱 용기가 넘쳐흐를 것을 걱정했었지만 그것도 기우(杞憂)였다. 페트병은 재활용품으로 지정되어 소비자는 모아서 버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생수를 많이 먹으면 지하수가 고갈되고 지반침하(地盤沈下)가 발생할 것이라는 주장도 있었지만 그것 역시 과장이었던 것 같다.


    2. ‘라이프 스타일’이 된 생수


    우리가 흔히 생수라고 부르는, ‘병에 든 물’ 또는 ‘병입수’(甁入水 : Bottled Water)는 단순히 마시는 물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생수는 이미 ‘라이프 스타일’인 것이다. 디자이너 브랜드 옷을 입고 에스프레소 바(Espresso Bar)에서 카푸치노를 마시는 것과 똑같은 현상이다. 오늘날 수돗물을 그대로 마시는 사람은 원시인(原始人) 취급을 당하는 것이 현실이다. 머지않아 우리나라에도 ‘프레미엄 생수’가 등장할 것이고, 그러면 보통 생수를 먹는 사람과 ‘프레미엄 생수’를 먹는 사람 사이에 차별화 현상이 생길 것이다.  

    우리나라는 평범한 국산 생수가 시장을 지배하고 있지만 이런 현상이 얼마나 지속될 지는 알 수 없다. 사람의 호기심과 사치욕구는 끝이 없는 법이고, 기업은 사람들의 그런 심리를 교묘하게 파고들기 마련이다. 세계의 맥주를 모아 놓고 파는 ‘비어 바’(Beer Bar)가 있듯이 세계의 생수를 모아 놓고 파는 ‘생수 바’가 생겨날 지도 모른다. 실제로 로스앤젤레스에는 ‘워터 바’(Water Bar)가 문을 열었다고 한다. 거기 가면 알프스 눈 녹은 물, 알래스카 빙하 녹은 물, 바이칼 호수 심층수(深層水) 등 각종 생수와 레몬이나 라임을 섞어 만든 별난 생수를 마실 수 있다고 한다. 멋진 유리잔에 투명한 얼음을 몇 조각 넣은 다음, 자기가 좋아하는 브랜드의 생수를 부은 후 빨대로써 물을 마시는 미니 스커트의 금발 미인은 ‘포스트 모던’의 전형(典型)이다. 이쯤 되면 물은 패션인 것이다.


    3. 다국적 생수 회사


    오늘날 생수 시장은 거대한 규모이다. 2002년 한해에 미국인이 생수 구입에 지불한 돈은 무려 77억 달러에 달한다. 생수 소비는 매년 10%씩 증가하고 있다는데, 이런 추세는 전세계에 공통된 현상이다. 미국에서 팔리는 생수의 상호(商號)는 현란하기 이를 데 없다. ‘폴랜드 스프링’은 점잖은 편이고, ‘아이스 마운틴’, ‘크리스털 스프링’, ‘알래스카 프레미엄’, ‘요세미테’ 등 어지러울 정도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이런 상표는 원산지와 관계가 없으니, 속보이는 사기 마케팅인 셈이다. 이에 비하면 무슨무슨 샘물 같이 회사 이름을 붙여 쓰는 국산 생수는 차라리 양심적이다.

    흔히 생수라고 부르는 ‘병에 든 물’도 종류가 여러 가지다. ‘스프링 워터’(Spring Water), 또는 ‘내추럴 미네랄 워터’(Natural Mineral Water)라고 부르는 생수는 자연적으로 솟아난 샘물이거나 파이프를 박아 뽑아낸 천연 지하수이다. 생수 회사들은 자기들 제품이 깊은 산간에서 나온 천연 샘물이라고 광고하지만 사실은 도로변이나 주차장 근처에서 파이프를 박아 뽑아낸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의 생수는 모두 스프링 워터의 범주에 속한다. 스프링 워터로 가장 유명한 것은 프랑스의 에비앙(Evian)이다. 하지만 생수 브랜드를 가장 많이 갖고 있는 회사는 스위스에 본부를 둔 다국적 식품회사 네슬이다. 네슬은 미국에서만 애로우헤드(Arrowhead), 디어 파크(Deer Park), 폴랜드 스프링(Poland Spring) 등 14개의 생수 브랜드를 갖고 있다.

    또 다른 종류의 생수는 물을 정화해서 용기에 담은 ‘퓨리파이드 워터’(Purified Water)이다. 미국에서 팔리는 생수 중 40% 정도는 샘물이 아니라 수돗물을 정화해서 만든 ‘퓨리파이드 워터’인데, 이들의 시장 점유율이 날로 높아져가고 있다. ‘퓨리파이드 워터’ 시장은 소프트 음료의 강자인 코카콜라와 펩시콜라에 의하여 양분되어 있다. 오늘날 세계 생수시장에 있어 이들 콜라 회사는 ‘태풍의 눈’과 같은 존재이다.

            

    4. ‘아쿠아피나’와 ‘다사니’


    코카콜라와 펩시콜라는 세계 음료수 시장의 강자이다. 이들의 경쟁은 너무 치열해서 ‘콜라 전쟁’(Cola War)이란 말마저 생겼다. 이 두 회사는 생수 시장을 두고 또 한판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으니, ‘제2의 콜라 전쟁’이 진행 중인 셈이다.

    1994년 펩시는 아쿠아피나(Aquafina)라는 상호로 퓨리파이드 워터를 출시했다. 펩시는 수돗물을 고도로 정화한 후 사람의 입맛에 맞는 생수 원액을 가미해서 이상적인 생수를 만들어낸 것인데, 나오자마자 성공을 거두었다. 펩시의 모험이 대단한 성공을 거두자 1999년에는 코카콜라가 다사니(Dasani)라는 브랜드로 퓨리파이드 워터를 출시했다. 이 두 회사는 콜라 원액을 물에 섞어 콜라를 만드는 방식을 본 따서 역삼투 방식으로 정화한 수돗물에 생수 원액을 풀어 생수를 제조하는 것이다. 두 회사의 기술력과 자본, 그리고 마케팅이 워낙 뛰어나서 몇 년만에 미국 생수 시장의 점유율 1위가 아쿠아피나, 2위가 다사니가 되고 말았다. 아쿠아피나가 비교적 순수한 물맛을 갖고 있는데 비해 다사니는 광물질이 강화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쿠아피나와 다사니는 공장에서 만들어내는 물이라 지하의 수원(水源)이 고갈되는 것 같은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공장에서 대량생산하는 탓에 가격이 싸다. 콜라 회사들이 자체가 갖고 있는 판로와 마케팅을 그대로 이용하니 거리낄 것이 없다. 대중은 코카콜라와 펩시콜라의 공신력을 믿고 다사니와 아쿠아피나를 구입하는 경향도 있다. 경쟁에 밀린 군소 생수회사들이 문을 닫거나 아예 아쿠아피나와 다사니의 체인으로 들어가는 현상마저 생겼다.

    미국에서 성공을 거둔 이들 생수는 곧 해외로 뻗어나갔다. 세계 각지에 콜라 공장을 갖고 있는 코카콜라와 펩시콜라가 외국의 생수 시장에 파고드는 것은 냉수 마시기 보다 더 쉬운 일이다. 오늘날 코카콜라의 전체 매출액 중 미국내의 매출은 1/4에 불과할 정도로 코카콜라는 세계화돼 있는 기업이다. 엄청난 생수 시장이 미국 밖에 있음을 잘 알고 있는 이들 콜라회사는 세계의 생수 시장 점유율을 급속히 높여 가고 있다. 후진국에선 수돗물은 물론이고 현지에서 생산한 생수도 믿을 수가 없으니 오직 믿을 것은 아쿠아피나와 다사니인 것이다. 이렇게 해서 브라질, 멕시코, 인도 등 세계 각지에 아쿠아피나와 다사니가 팔리게 되었으니, 머지 않아 세계인이 코카와 펩시가 만든 물을 마실 판국이다. 


    5. 한국은 ‘무풍지대’(無風地帶)?

     

    아쿠아피나와 다사니를 팔 수 없는 나라가 한 곳이 있으니, 다름 아닌 우리나라다. 우리나라의 먹는물관리법은 ‘먹는 샘물’을 “암반 지하층 안의 지하수 또는 용천수 등 수질의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는 자연 상태의 깨끗한 물을 먹는 용도로 처리하여 제조한 물”로 한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규제를 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 문제는 우리나라가 언제까지 이런 법규를 고집할 수 있나 하는 점이다.

    사실 아쿠아피나와 다사니를 금지하는 명분은 취약하다. 수돗물을 가공해서 팔면 생수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지하수 고갈과 지반침하 같은 부작용도 생기지 않는다. 이런 ‘인공 생수’를 선택하는가 또는 강원도 산골의 지하수로 만든 ‘자연 생수’를 선택하는가는 전적으로 소비자의 판단에 맡겨질 일이다. 생수를 ‘자연 상태의 깨끗한 물을 처리하여 제조한 물’로 한정시킨 우리의 법규가 세계무역기구 협정에 합치하는 지도 의문이다. 중요한 것은 소비자가 최종적으로 마시는 생수의 안전성이지 물의 원천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는 수돗물이 지하수 보다 더 안전하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그렇게 안전한 수돗물로 맥주와 콜라를 만들면 괜찮고, 생수를 만들면 안 된다는 것도 웃기는 이야기다.

    아쿠아피나와 다사니가 들어오는 경우 우리나라 생수 시장은 거대한 소용돌이에 휩싸일 것이다. 그런 다음 대부분의 국내 생수회사는 문을 닫을 것이고, 우수한 수맥을 확보해서 진짜 스프링 워터를 생산하는 몇몇 회사만 살아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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