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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부석사 / 신광철 (시인, 작가)흔해빠진 일반상식 2011. 10. 20. 10:19
영주 부석사 [초대칼럼] 신광철 (시인, 작가)
이별을 위해 준비하는 가을에 여행을 떠났지요.?여행에 파격을 들이면 오랫동안 가슴을 태우는 추억이 되거든요.
부석사는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북지리 봉황산에 있습니다. 부석사의 창건은 676년 2월, 문무왕 16년 째 해이니 1300년을 넘는 시간을 건너온 절이었던 것이지요. 의상이 왕명으로 창건한 뒤 화엄종의 중심 사찰로 삼은 사찰입니다. 부석사라는 절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 「삼국유사」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불교를 배우기 위하여 당나라로 간 의상대사가 등주의 어느 집에 머무를 때, 그 집의 딸 선묘가 의상을 사모하여 결혼을 청했다고 합니다. 의상은 오히려 그녀를 감화시켜 보리심을 발하게 하였답니다. 의상이 귀국 길에 작별 인사차 선묘의 집에 잠시 들렀을 때, 선묘가 공양물을 넣은 상자를 전하려 했으나 의상은 배를 타고 떠나버렸습니다. 선묘는 급히 선창으로 달려가 선물상자를 배에 탄 의상에게 던져 전하고는, 몸을 바다에 던졌습니다. 바다에 떨어진 여인은 용이 되었습니다. 용이 된 선묘라는 처녀는 의상의 뱃길을 끝까지 보호하였다고 합니다.
승이 속의 여인을 죽게 한 사건은 미화되어 아름다운 전설이 되었습니다. 죽음이 아름다울 수 있으려면 오롯이 순수로 접근할 때만이 가능합니다. 이야기는 더욱 날개를 얻어 아름다운 전설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더 볼까요.
용으로 변한 선묘는 의상이 신라에 도착한 뒤에도 줄곧 옹호하고 다녔습니다. 의상이 화엄의 큰 가르침을 펼 수 있는 땅을 찾아 봉황산에 이르렀으나 도둑의 무리들이 그 땅에 살고 있었습니다. 용은 커다란 바위를 들어 보이는 신기로 도둑을 제압하고 그 자리에 절을 지었습니다. 부석사란 이름은 돌을 들어 올렸다는 부석浮石에서 유래하고 있는 것이지요.
절은 절을 하는 곳이기 때문에 절입니다. 남의 말로 하면 사찰이고, 템플이라고 하나요. 절은 상대를 향해 예를 표하는 방법 중에서도 깊은 존경심이 있을 때 몸을 낮추는 각도가 깊어지는데, 절에서의 절은 몸을 무한히 낮추어 오체투지, 즉 온몸을 다 바닥에 대는 행위로 부처를 향해 예를 표합니다. 그것이 부처를 위한 경의지만, 그 절에는 사실 순서가 있다고 저는 우깁니다. 절은 자신을 향하여 깊이 사랑하는 마음으로 절을 올린 다음에, 상대를 향하여 절을 해야 하는 것이라고 우기지요.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의 인생을 낭비하거나, 남이 미워하도록 방치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먼저 깊이 절하고, 다음으로 경배의 절을 해야 하는 것이지요. 그런 사람은 올곧게 일어설 수 있습니다.
건축물로서의 부석사와 건축물이 가진 의미체로서의 부석사를 말하고 싶었거든요. 하지만 아무려면 어떻습니까. 절은 인위의 산물입니다. 의미를 형상화 한 것이 건축물이지요. 특히 종교건축의 경우는 그렇습니다. 부석사도 종교적 건축물이라면 종교적인 상징이 고스란히 담겨있겠지요. 저는 부분의 하나하나를 이야기하기에는 맞지 않는 짧은 글을 쓰려합니다. 그래서 부석사가 한국미를 담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만 언급하려 합니다.
우선은 부석사는 다른 절과 마찬가지로 불교의 의미체계, 풍수에 의한 의미, 그리고 한국미로서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저는 풍수를 전공한 사람으로서 한 마디 꼭하고 싶지만 한국미에 대해서만 말하고 마치려 합니다.
저는 ‘한국미는 모자란 자식을 끌어안고 세상을 살아가는 어머니의 마음을 닮았다’고 이야기 합니다. 무슨 말씀이냐고요. 건축물은 다시 언급하지만 인위의 결정체인데 묘하게도 한국의 건축은 인공의 건축물에 언제나 자연을 들여놓는다는 것이지요. 그것도 천연덕스럽고 바보스럽기까지 한 모습으로 인위를 살짝 허물어 자연으로 받아들입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것들입니다. 부석사가 가진 축대가 아름답고 견고하지만 우리의 담장, 특히 성벽은 인위와 자연이 묘하게 만나지요. 돌을 자르거나 규격화하려 않습니다. 자연석을 그대로 쓰지요. 그리고 하단이나 중간면을 통일시키지 않습니다. 하단은 울퉁불퉁한 바닥의 면을 그대로 받아들여 돌을 다듬어 올려놓습니다. 일면 그렝이기법이라고 하지요. 하늘과 맞닿는 덮개석만을 통일시키지요.
배흘림은 우리의 양식이 아닙니다. 하지만 추녀의 네 귀를 조금 길게 해서 멀리서 보면 일직선으로 보이게 하는 기법이나 잘 다음어진 기둥 중에 어느 하나를 다듬지 않은 자연목으로 대체하는 파격을 종종 드러내는 것이 한국의 건축입니다. 자연친화적인 기쁨을 가지고 있는 것이 우리의 건축물이지요. 그 중에서도 한국미가 잘 드러난 부석사를 보는 것은 행운이었지요.
가을이 깊어 단풍잎의 손가락 마디마다 곱게 물 들은 것이 아름다웠습니다. 부석사를 내려오는 데 바람이 불어와 산 전체를 아주 잠깐 흔들었는데, 흙먼지와 함께 나뭇잎들이 소나기처럼 내리더군요. 이별의 현장에서 더 없이 아름다운 사람들과의 답사는 그렇게 저물어갔습니다. 여행의 경유지인 부석사를 답사하고 여행의 진정한 목적지였던 집으로 가는 길은 흐뭇했습니다. 저마다의 가슴에는 깨달음의 돌덩이 하나씩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을 것이라 믿습니다.'흔해빠진 일반상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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