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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딜과 TVA
    모르는세상얘기들 2009. 5. 7. 14:54

     

    뉴딜과 TVA      

     

    이상돈 (중앙대 교수  법학)

     

        1. ‘뉴딜’이라는 神話

     

        노무현 정부 시절에 수도(首都) 이전에 대해서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이 반대하자 당시 여당 원내대표는 ‘수도 이전은 경제를 살리는 뉴딜’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봄, 이명박 정권의 실세 인사가 대선과 총선에선 중요 공약이 아니라고 꽁무니를 뺐던 한반도 대운하가 ‘경제를 살리는 뉴딜’이라고 둘러댔다. 어느 경우에나 ‘뉴딜’을 경제를 살리는 요술 방망이로 보았으니 재미있는 현상이다.

        1929년 주식 대폭락으로 시작된 미국의 경제공황이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으로 회복되었다고 보는 것이 우리나라의 ‘상식’이다. 그러나 이는 피상적인 관측이다. 미국이 더욱 심각한 공황에 빠져든 것은 루스벨트가 재선되고 난 다음이다. 루스벨트가 1기 임기 중에 추진했던 뉴딜 정책이 별로 효과가 없었음을 보여 준 것이다. 뉴딜은 농업조정법과 산업조정법으로 과잉생산을 억제하고, 금융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은행을 작게 만들었는데, 이는 오늘날에 경제학을 제대로 공부한 대학생들에게도 우습게 들릴만한 정책이었다.

        도시에선 먹을 것이 없어서 자살하는 사람들이 속출했는데, 농촌에선 돼지고기 가격 폭락을 막겠다고 새끼 돼지를 무더기로 살(殺)처분했던 것이 당시의 뉴딜 정책이었다. 은행의 도산을 막으려면 은행이 커져야만 하는데 대자본의 은행지배를 막는다고 은행을 작게 만들어서 작은 은행들이 연달아 무너졌고, 실업자를 구제하겠다고 소비에트를 흉내내서 집단농장을 여러 곳에 세웠지만 세금만 낭비하고 보기 좋게 실패했다.  

     

        2. ‘TVA’라는 神話

     

        우리나라에 뉴딜의 성공사례로 많이 제시되는 것이 TVA, 즉 ‘테네시 계곡 공사’이다. 1960년대에 박정희 정권이 국토개발을 추진하면서 다목적 댐이 경제성장의 주춧돌임을 홍보하기 위해서 뉴딜과 TVA의 성공을 홍보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지금까지도 TVA가 미국을 대공황으로부터 구해낸 일등공신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1932년 미국 대통령 선거 때 루스벨트는 민간기업이 소유 운영하는 발전소가 비싼 전기요금을 부과하고 있다고 대기업을 비난하면서, 자기가 당선되면 정부가 값싸게 전기를 공급하겠다고 했다. 1933년 초, 의회는 ‘테네시 계곡 공사법’(‘The TVA Act’)을 통과시켰고, 루스벨트는 이에 서명했다. 대규모 실업이 발생한 상황에서 이 법에 대해 국민들은 큰 기대를 걸었고, 낙후된 테네시 강 유역 주민들은 특히 그러했다.

        치카무가 댐, 더글라스 댐, 노리스 댐 등이 테네시 강과 그 지류의 흐름을 막고 건설되었다. 이미 건설된 윌슨 댐과 더불어 TVA는 많은 댐을 소유하고 운영하는 거대한 공기업이 되었다. 댐 건설은 많은 일자리를 만들었고, 댐이 세워져서 애팔라치아 산간 지역에도 전기가 들어오게 됐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주변의 군수공장에 전력을 공급하게 됐다.

        그러나 TVA의 댐 공사로 치른 대가는 적지 않았다. 테네시 유역에 세운 댐들은 노리스 댐이 높이가 80 미터였고, 그 외에는 높이가 40-50 미터 정도였다. 그 대신 댐의 길이는 500미터에서 2 킬로미터에 이를 정도로 길었다. 콜로라도 강의 계곡에 세운 후버 댐이 높이가 221미터, 길이가 379미터인 것과 비교된다. TVA 댐 건설에 따라 수몰되는 면적이 넓을 수밖에 없어서 15,000 세대가 집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이주해야만 했다.

        루스벨트를 추종하는 뉴딜주의자들은 TVA를 본 딴 공기업을 북서부의 콜럼비아 강 등 주요 유역에 세우고자 했다. 그러나 이런 시도에 공화당 의원들이 강력히 반대해서 제2, 제3의 TVA는 설립되지 못했다. 대공황 시절에 가장 성공적인 토목공사로 알려진 후버 댐은 전부터 계획된 것으로, 후버 대통령 재임시인 1931년에 착공해서 1936년에 완공되었다. 루스벨트 대통령이 준공식에 참석했지만 실제 공적은 후버 대통령의 공화당 정부에 돌려져야 하는 것이다. 내무부 개간국이 세운 후버 댐은 전력 생산이 워낙 많아서 발전으로 건설비용을 빠른 시일 내에 회수하는 기록을 세웠다.

        제2차 세계대전 후에도 TVA는 고만고만한 댐을 계속 건설했다. 후버 댐과 달리 TVA가 세운 댐의 경제성과 효용성은 계속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건설비용과 수몰지역의 규모에 비해 홍수 통제, 전력 생산 등 효용이 적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지역에 값싼 전력을 공급하는 덕분에 그 지역의 산업이 경쟁력이 장기적으로 약화되었다는 비판도 나왔다.

        수력발전만으로는 사업을 유지하기 어려워진 TVA는 화력발전소와 원자력발전소도 건설해서 오늘날 TVA의 전체 발전량 중 수력발전은 일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TVA가 운영하는 화력발전소와 원자력발전소의 환경안전 분야의 기록은 좋지 않다. 다른 민간 발전소에 비해 대기오염규제법 위반과 원자력 안전기준 위반이 많았다.    무엇보다 TVA와 같은 공기업은 미국의 정치적 경제적 문화와 맞지가 않았다. 1964년에 대통령 후보로 나왔던 배리 골드워터 상원의원은 자기가 당선되면 TVA를 민영화시키겠다고 공약했는데, 이에 대해 테네시 지역은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3. 로널드 레이건과 TVA

     

        TVA에 대한 가장 극적인 비판은 로널드 레이건에 의해 제기됐다. 1953년 1월, 제네널 일렉트릭(GE)은 회사 홍보 차원에서 미국의 소설과 연극 영화 등을 소개하는 교양 프로인 ‘GE 극장’(‘The General Electric Theater’)을 주말 TV 시리즈로 방송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몇 명의 호스트가 쇼를 진행했는데, 9월부터는 영화배우이던 로널드 레이건이 단독으로 진행했다. 레이건은 이 쇼를 진행하면서 현지 방문을 많이 해서 유명해졌을 뿐더러 돈도 많이 벌었다. 레이건은 이 프로를 진행하기 위해 책을 많이 읽는 등 나름대로 공부도 많이 했다.

        이 프로는 GE가 레이건을 해고함에 따라 1962년 5월에 종료되었다. 레이건이 방송 중에 TVA는 ‘큰 정부’(‘Big Government’)의 전형이라고 비판했는데, TVA는 GE가 발전 터빈을 공급하는 큰 고객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유명해 진 레이건은 이를 계기로 아예 정치에 나섰다. 1964년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였던 배리 골드워터 상원의원의 선거운동을 도왔다. 그가 골드워터를 지지하면서 한 유명한 연설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었다.

        “ TVA 사업을 추진하는 연방정부는 500년에 한번 있을 홍수에 대비한다고 했지만 500년에 한번 있을 홍수로 잠길 수 있는 면적보다 훨씬 큰 면적을 영원토록 물에 잠겨 버리게 했습니다. TVA가 지고 있는 부채에 대해 지불하는 이자는 댐 건설로 예방했다는 홍수 피해의 다섯 배는 됩니다. TVA가 댐으로 발전을 한다고 하지만 TVA의 발전량 중 댐이 차지하는 비중은 15% 밖에 안 됩니다. 연방정부는 화물운송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테네시 강 지류를 운하로 연결했는데, 그 운하에 다니는 바지는 TVA의 화력 발전소에서 태워버릴 석탄을 싣고 다닐 뿐입니다. 그런데 이 운하를 유지 관리하는 비용으로 석탄을 화물열차에 실어 나르면, 열차 요금을 다 내고도 돈이 남습니다.”

        1964년 대통령 선거에서 골드워터는 패배했지만 골드워터를 지지한 유명한 연설로 인해 레이건은 차세대 공화당 리더로 부상했다. 레이건은 1966년 캘리포니아 주지사로 당선되어 두 번 임기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그 후에는 방송 논평으로 인기를 끌었고, 1976년 대통령 선거에 공화당 후보 경선에 나섰으나 제럴드 포드 대통령에게 근소한 차이로 패배했다. 1980년 대선에 출마해서 지미 카터 대통령을 압도적 차이로 누른 레이건은 미국에 새로운 보수주의 시대를 열었다. 레이건은 임기 중 TVA를 민영화하려고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4. TVA의 대형 환경사고

     

        TVA는 많은 오래된 시설을 갖고 있어서 유지경비가 많이 나갔다. 1990년대부터는 전력사업에도 경쟁원칙이 적용되자 TVA는 인력을 감축하는 조치를 취했고, 이것은 환경안전에 문제를 일으켰다. TVA의 발전소는 대기오염법 위반사례가 특히 많았다.  

        2008년 12월 22일, 테네시 주 해리먼에 위치한 TVA의 킹스턴 화력발전소 석탄 슬러지를 모아둔 폰드(coal ash pond)의 벽이 열흘 동안 내린 비로 붕괴되는 대형 사고가 발생했다. 인근의 호수와 강으로 석탄 슬러지 260 입방야드가 흘러 들어갔고, 이로 인해 지나가던 열차가 탈선하고 가옥이 파괴되는 큰 피해가 발생했다. 문제의 시설은 사고가 나기 얼마 전에 작은 유출이 발생했었음이 밝혀져서 TVA가 안전불감증에 걸려 있음을 보여주었다. TVA 사장 톰 킬고어는 의회에서 야적된 슬러지와 물이 섞여서 폰드의 벽에서 누출되는 사고가 2003년과 2005년에도 발생했다고 증언했다.

        TVA의 안전관리에 하자가 있음이 밝혀져서 TVA에 대해 손해보상 책임 뿐 아니라 형사책임을 지워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현재 미국에는 사고가 난 것 같은 석탄 슬러지를 보관하고 있는 폰드가 1,300 곳이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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