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날의 수채화

가을날의 수채화 가을 햇살이 넉넉하게 현관까지 들어앉던 날 더 많은 따사로움을 느끼겠노라 문을 열어젖히고 마주한 식탁에 홀로 앉아 찻잔을 동반해 봅니다. 향긋한 찻잎 한 숟갈은 따끈한 물에 살포시 내려앉아 부드럽고 은은한 향을 지난 추억처럼 피어 올리고 찻잔을 감싸 안은 두 손으로 전해지는 따스한 온기는 어머니 품과 같아서 중년의 눈가에 졸음이 매달립니다. 한 모금, 또 한 모금 식도를 따라 내리는 진한 차 맛이 내 지난 세월에 지우고픈 상흔 같은 삶의 조각들 마냥 씁쓸한 여운으로 가슴에 스며들어 잔잔한 파문이 일고 중년이란 꼬리표에 한 올 한 올 늘어가는 흰머리를 뽑듯 서둘러 마셔버린 차 한잔이 아쉬워 물을 다시 채우고 찻잎대신 당신의 말씀 한스푼을 넣어 가슴을 덥히는데 어디선가 날아온 잠자리 한 마리 이 계절을 그리고 달아납니다. - 정인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