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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카고의 환경재난과 과학적인 환경사랑
    모르는세상얘기들 2009. 5. 7. 15:08

     

     

     

     

     

    시카고의 환경재난과 과학적인 환경사랑  

            

    박   석   순(이화여대 환경공학과 교수)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 버락 오바마의 당선으로 그의 정치적 고향인 시카고가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아프리카 케냐의 염소지기 아들 오바마가 40대의 나이로 중앙 정계에 진출한지 단 4년 만에 미국 대통령이 된 기적 같은 사건이 이곳 시카고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시카고는 앞으로 한동안 오바마의 드라마 같은 인생역정과 정치활동이 인구에 회자되면서 세계 정치사에 유명 도시로 남게 될 것이다.


    역사상 최대 사망자 낸 환경재난 도시


    시카고는 세계 환경사에서도 유명 도시로 알려져 있다. 영국 런던이나 일본 미나마타보다 더 참혹한 환경재난이 일어났던 이곳이 성공적인 생존전략으로 세계 최대 호반도시가 되었기 때문이다. 호숫가에는 수질 문제로 대도시가 들어설 수 없지만, 시카고는 현재 인구와 경제규모 면에서 뉴욕과 로스앤젤레스 다음 가는 미국 제3의 도시가 되어있다.

    시카고는 1803년 포트 디어본(Fort Dearborn)이라는 군사기지가 들어서면서 사람이 살기 시작한 곳이다. 1825년에 오대호와 허드슨 강을 연결하는 이리운하(Erie Canal)가 개통되어 뉴욕까지 배가 드나들 수 있게 되었고 1834년에는 시카고 시(市)가 만들어졌다. 1848년에는 일리노이 미시간 운하(Illinois and Michigan Canal)가 건설되어 미시간 호수와 미시시피 강 지류인 일리노이 강을 연결하게 되었다. 같은 해 이곳에 철도 건설이 시작되면서 시카고의 도시 규모는 점점 커져 갔다.

    1864년 미국 남북전쟁이 끝나자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시카고로 몰려들었다. 그러나 1871년 10월 8일, 27시간에 걸친 대화재로 도시 대부분이 불타버렸다. 이 화재로 300여명이 사망하였고 10만여명이 집을 잃었다. 그 후 시작된 재정비 사업과 더불어 도시는 더욱 빠르게 성장했다. 도심에 마천루가 들어섰고 인구가 급속히 증가하여 화재 당시 30만에 불과했던 시민이 1885년에는 100만을 돌파했다.

    인구가 늘어나면서 도시는 남쪽 칼루메(Calumet) 강 유역까지 확대되었고 거리는 마차에서 나오는 배설물과 쓰레기로 넘쳐났다. 그리고 더 많은 생활하수가 시카고 강과 칼루메 강에 방류되었고 두 강은 다시 미시간 호로 흘러들어가 물은 썩고 쓰레기로 범벅이 되었다. 시카고 시민들은 악취와 질병으로 고통당하고 깨끗한 식수를 더 이상 구할 수가 없었다.

    1885년과 1886년에 이곳에서 장티푸스가 창궐하여 9만여명이 사망했다. 100만 인구의 생활하수와 쓰레기가 버려진 미시간 호의 물을 식수로 사용하다 빚어진 대참사였다. 지금까지 기록된 환경재난 가운데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사건이었다. 그 후에도 오염된 하천과 호수로 인하여 시카고의 전염병은 계속되었다. 미시간 호의 물을 식수로 사용하고 하수를 다시 이곳에 버리는 한 시카고는 계속해서 장티푸스, 콜레라, 이질 등과 같은 수인성 전염병으로 고통 받을 수밖에 없었다.


     

    세계 최대 호반도시로 태어나

    대참사를 겪은 시카고는 당시로서는 엄청난 토목공사를 계획하게 되었다. 미시간 호로 흘러가던 시카고 강과 칼루메 강의 유역을 변경하여 미시시피 강의 지류인 데스 플레인즈(Des Plaines) 강으로 흐르게 하는 대역사였다. 시카고의 하수로 오염된 두 강의 흐름을 역류시키고 이곳에 배가 다닐 수 있게 한 것이다. 이것이 1887에서 1922년 사이에 건설된 시카고 운하(CSSC: Chicago Sanitary and Ship Canal)이다. 1900년에는 시카고 강과 데스 플레인즈 강을 연결하였고 그 후 칼루메 강을 잇는 칼색 수로도 완공했다(그림 참고).

    시카고의 하수는 더 이상 미시간 호로 들어가지 않고 미시시피 강을 따라 대륙의 남쪽으로 흘러가게 되었다. 공사가 마무리되자 미시간 호의 수질은 한결 좋아졌고 반복되던 전염병도 멈추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시카고 운하는 오대호와 미시시피 강을 연결하는 물류 동맥 역할을 하게 되었다.

    시카고 운하는 1870년에 완공된 대륙횡단 철도와 더불어 이곳을 내륙교통의 최고 요지로 만들었다. 그 결과 세계 최대 곡물시장(시카고 선물거래소)이 만들어졌고 미국 중서부의 대평원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은 이곳을 통해 팔려나가게 되었다. 특히 1959년에 캐나다를 통해 오대호와 대서양을 연결하는 세인트 로렌스 운하(Saint Lawrence Canal)가 건설되면서 시카고에는 대형 선박이 들어올 수 있게 되었다. 현재 미국은 전체 물동량 중 6.2%가 내륙주운에 의존하고 있으며, 그 대부분이 시카고가 중심이 되는 미시시피 강과 오대호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시카고에서 처음 시도한 유역변경은 그 후 다른 여러 곳에서도 행해졌다. 1930년경에 태평양 연안 시애틀의 생활하수가 인접한 워싱턴 호로 흘러들어가 심각한 수질악화를 야기하자, 시애틀 시는 1936년에 워싱턴호로 흘러가던 생활하수의 흐름을 태평양 연안 푸젯 만으로 변경시켰다. 1940년경에는 도시가 교외로까지 팽창하면서 1955년 무렵에는 워싱턴 호의 수질이 다시 문제가 되었다. 1963년 시애틀 시는 교외 지역의 생활하수도 푸젯 만으로 흐르게 하여 호수의 수질을 개선했다. 1950년대 말 당시 비누 사용이 일반화 되면서 심각한 부영양화를 겪게 된 스위스의 레만 호도 유입 하천의 유역변경을 통하여 수질개선을 이루었다.


    맺음말


    시카고는 환경재난을 슬기롭게 극복하여 맑은 물과 물길을 얻어낸 전화위복의 도시다. 그래서 시카고는 운하건설과 유역변경으로 세계 최대 호반도시가 된 사례로 환경사에 남게 되었다. 운하를 파고 강물을 거꾸로 흐르게 하는 것은 맹목적인 환경사랑에 도취된 자들에게는 절대로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시카고 운하는 시민의 생명과 호수의 수질을 지키기 위한 현명한 선택이자 과학적인 환경사랑의 결과였다.

    과학적인 환경사랑은 인간의 생명과 삶의 질을 최우선으로 한다. 환경이 소중한 이유는 세대를 초월하여 인간에게 돌아올지 모르는 부메랑 효과 때문이다. 그러나 맹목적인 환경사랑은 간혹 문제의 본질을 망각하고 환경에만 집착하는 과오를 범한다. 과학적인 환경사랑은 이러한 과오를 막아주고,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 풍요롭고 윤택한 삶, 그리고 지속가능한 발전이 함께 할 수 있게 해준다.

    시카고는 애칭으로 바람의 도시(Windy City)라 불릴 만큼 바람이 잦고 강하게 부는 곳이다. 미국 중서부의 대평원과 거대한 미시간 호수가 만나는 지리적 특성으로 인한 국지적 기상현상이다. 이 바람의 도시에서 시작된 오바마의 돌풍이 일시에 미 대륙을 휩쓸었다. 이제 이 돌풍이 9.11 테러, 이라크 전쟁, 금융위기 등으로 고전을 면치 못 하는 미국을 살리고, 아울러 오래전 이곳 시카고에서 시작된 과학적인 환경사랑을 지구촌 곳곳에 심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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