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강한 나라가 환경을 지킨다(박석순)모르는세상얘기들 2007. 10. 4. 17:56
부강한 나라가 환경을 지킨다
박 석 순 (이화여대 환경공학과 교수)
지난 8월 7일~14일, 8일 동안 북한에서 796mm의 폭우가 쏟아져 454명이 숨지고 156명이 실종되었으며, 4천351명이 부상을 입었고 50여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또한 평양을 비롯한 주요 도시들이 물에 잠겨 수십만 채의 주택이 파손되고, 적어도 북한의 전체 논 면적 20%와 옥수수밭 15%가 유실 또는 침수됐다. 이번 수해로 8.15 남북 통일축전이 취소되고, 당초 8월 28~30일로 잡혔던 제2차 남북정상회담도 10월 2~4일로 연기됐다.
북한의 수해는 이번만이 아니다. 지난 1995년 520여만 명의 이재민을 낸 ‘100년만의 대홍수’를 겪은 후 지금까지 2~3년을 제외하고 해마다 홍수와 가뭄이 반복되고 있다. 1996년 홍수, 1997년 가뭄, 1998년 홍수, 1999년 가뭄, 2000년에는 4월 가뭄과 8월 홍수, 2001년은 3~6월 가뭄과 10월 홍수 등 재난의 악순환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 해에도 7월 폭우로 수백 명의 사망·실종자가 발생했다.
가난이 국토를 황폐화
북한에서 이처럼 가뭄과 홍수 피해가 반복되는 것은 최근에 극심해진 한반도의 기상이변에도 원인이 있지만, 무엇보다 국토 황폐화와 빈약한 재해방지 시스템이 문제다. 지난 1970년대 우리가 열심히 산에 나무를 심을 때 북한은 ‘경지면적 넓히기’ 운동을 하면서 야산에 다락밭을 만들었다. 그리고 1990년대에 시작된 ‘고난의 행군’ 시절에는 땔감을 마련하기 위하여 깊은 산속까지 들어가 남벌을 했다. 식량난과 에너지난을 극복하기 위해 나무를 자르고 산을 깎은 것이다.
필자는 이번 수해를 보면서 굶주린 북한 동포의 계속되는 탈북행렬과 2004년 용천역 열차 폭발 사고의 참혹한 광경, 그리고 지난해 방문했던 평양의 추억을 떠올렸다. 특히, 현장을 직접 본 평양의 추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순안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시내로 들어갈 때만 해도 멀리 보이는 평양은 멋진 도시였다. 널찍한 도로와 광장, 크고 높은 빌딩 등 넓은 평야에 세워진 웅장한 계획 도시라는 생각이 머리에 떠올랐다. 그러나 가까이 가서 보니 그 큰 빌딩에 페인트는 낡아서 군데군데 벗겨져 있었고, 유리창은 모두 깨져 비닐로 가려져 있었다. 평양의 첫 인상은 한마디로 멀리서만 멋진 ‘100미터 미인’이었다.
대동강의 하중도에 세워진 양각도 호텔 밖으로 보이는 평양의 야경은 전력 부족으로 암흑천지였으며 예정되었던 지하철 관광도 운행이 중단되어 취소되었다. 대동강 하구에 있는 남포 갑문과 평안북도 향산군의 묘향산 국제친선관람관으로 가면서 차창 밖으로 바라본 산의 색깔은 모두 붉은 색이었다. 비가 오면 산사태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경사지에도 식량을 얻기 위해 농사를 짓고 있었다. 어두움, 남루함, 황량함, 이것이 북한이 주는 인상이었다.
현재 북한 전체 산림 750만ha 가운데 약 20%인 160만~200만ha가 완전히 황폐화된 민둥산이며 나머지도 금강산과 묘향산 등 명승지를 제외하면 그다지 울창하지 않는 산들이다. 북한 당국도 문제의 심각성을 뒤늦게 인식하고 하천정비, 농경지 복구, 토지정리사업 등을 적극 전개하고 산림 황폐지 160만㏊에 조림사업을 벌이고 있으나 계속되는 경제난으로 매년 반복되는 재해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결국 가난 때문에 국토는 황폐화되었고 주민들은 재난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승리
지난 1960~1970년대까지만 해도 사회주의 계획경제가 적어도 환경을 위해서는 좋은 제도인 것처럼 보였다. 부(富)에 대한 욕망으로 가득 찬 시장경제는 급속한 산업화를 불러왔고, 거주이전의 자유를 보장하는 자유민주주의는 폭발적인 도시팽창을 가져왔다. 물질적 풍요는 자원의 과소비와 넘쳐나는 쓰레기를 만들어냈고, 산업문명은 폐수와 스모그로 도시를 질식시켰다. 통제되고 계획된 사회주의 경제체제가 그나마 환경을 지키기에는 적합해 보였다.
그러나 지난 몇십년 동안 서방세계가 환경 위기의 시대를 경험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지난 1970년 미국 연방환경보호청을 시작으로 영국, 프랑스, 일본 등에서 환경행정 독립조직이 생겨나고, 환경기술을 개발하기 위한 방대한 연구투자가 이루어지고 강력한 환경정책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다. 과거 심각한 대기오염을 겪었던 런던, 뉴욕, 로스앤젤래스, 도쿄 등 선진 대도시의 대기는 훨씬 맑아졌다. 뿐만 아니라 한때 죽음의 강으로 불리던 영국의 템즈강과 독일의 라인강도 다시 살아났고, 미국 뉴욕의 허드슨강과 일본 도쿄의 스미다강도 한결 깨끗해졌다. 반면에 사회주의 국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했다. 오랜 기간 사회주의 체제하에 있었던 동독과 체코, 그리고 폴란드는 유럽 최악의 환경오염 지역(Black Triangle Region)이 되었고, 나머지 동유럽 국가들과 러시아, 중국 등도 별반 차이가 없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서방세계의 환경을 다시 살린 일등 공신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였다. 자유민주주의는 환경의 수혜자이자 피해자인 국민이 자유롭게 권리를 주장할 수 있고 선거로 민의를 전달할 수 있기 때문에 강력한 환경정책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리고 시장경제는 환경기술의 급속한 발달을 가져왔다. 기술과 제품 경쟁에서 승자만이 살아남는 시장경제가 끊임없는 연구개발을 촉진하였고 이것이 지금의 환경기술을 이루어낸 것이다. 그리고 경제 성장을 통한 부의 축적이 환경을 보호하고 개선할 수 있는 재원을 제공할 수 있었다. 지난 20세기의 인류 역사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환경을 지키기에 더없이 소중한 제도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새로운 환경 이론의 등장
20세기 후반 선진산업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새로운 환경변화를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유턴(U-Turn) 이론이다. 이 이론은 초기 산업화가 진행되는 동안 오염이 가중되어 환경의 질이 저하되지만 경제성장이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환경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기술이 향상되어 환경이 다시 회복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환경의 유턴 현상을 만들어내는 것은 국민들의 환경의식과 기술, 그리고 이를 뒷받침해줄 수 있는 부(富)라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이미 지난 1990년대 후반부터 유턴 현상의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서울의 청계천 복원 이후 더욱 급속히 확대되고 있다. 전국 곳곳에서 자연형 하천복원 사업이 벌어지고 있으며, 환경도시 만드는 사업이 유행병처럼 번져가고 있다. 신화라 불릴 만큼 엄청난 변화를 보여준 울산의 태화강도 좋은 유턴 사례다. 이제 더 이상 공장이 많은 도시가 공해도시가 아니고, 돈이 없고 민의가 소통되지 않는 도시가 공해도시가 되는 것이다.
유턴 현상과 더불어 환경문제의 원인도 달라지고 있다. 인간에 의한 토지 간섭을 크게 도시(시장), 산업단지(공장), 농업경작지(농장) 등으로 나눌 경우, 과거에는 공장이 가장 많은 환경문제를 야기했다. 산업폐수와 매연 등으로 각종 공해병이 발생한 곳이 공장지대였다. 그리고 다음이 시장, 농장 순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환경기술의 발달로 연간 수십, 수백조원을 벌어들이는 무공해 공장이 생겨나고 있다.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나오고, 친환경교통시스템이 구축되고, 첨단 하수처리와 소각기술 등이 나오면서 친환경 도시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오히려 농약, 비료, 축산 폐수 등으로 관리가 안 되는 농장이 더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이것이 바로 뉴 삼장(三場)이론이라는 것이다. 결국 환경비용을 지불할 돈이 문제라는 것이다.
이와 함께 등장한 것이 거시(巨視) 환경이론이다. 보다 포괄적으로 환경문제를 봐야 한다는 이론이다. 예를 들어, 지금까지는 석탄과 석유문명이 대기오염의 주범이고 지구를 병들게 했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북한의 현실에서 봤듯이 석탄과 석유가 없으면 결국 산이 황폐화될 수밖에 없다. 화석연료가 산림을 살린 것이다. 미국은 화석연료 덕에 지금이 건국 이래 가장 넓고 울창한 산림을 가진 시기가 되었다고 자랑하고 있다. 비슷한 예를 자동차 문명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자동차가 매연과 소음 등 여러 가지 환경문제를 야기한다고 주장하지만, 그나마 이것이 없었다면 도시의 거리는 우마차의 배설물로 악취가 진동하고 전염병이 창궐해 더 큰 고통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보다 넓은 시각으로 환경을 보아야 바른 판단을 할 수 있다는 이론이다.
맺음말
지금까지 우리는 인간의 과욕과 부유한 생활방식이 환경을 오염시키고, 자연을 파괴하며, 지구를 병들게 한다는 이야기를 수없이 들어왔다. 사회가 점점 부유해지면 지구의 한정된 자원을 더 많이 소비하고, 인구는 과잉 상태가 될 것이며, 환경은 더욱 훼손되고 오염될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물질적 욕망을 줄이지 않으면 환경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 오랜 기간 주류를 이루어왔다.
그러나 지금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은 이것과는 정반대다. 부유한 삶은 오히려 사람들로 하여금 환경을 돌보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점점 부유해질수록 자신의 건강, 환경의 쾌적함, 그리고 자연의 아름다움에 더욱 민감해졌다. 또한 부가 증대될수록 환경을 보호하고 개선할 수 있는 경제적 수단이 마련되었다. 반면에 가난에 빠진 사람들이 자연을 파괴하고 환경을 오염시켰다. 고의적인 것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동남아시아의 열대우림을 벌목하고 아마존의 원시림을 불태우는 것도, 중국과 몽골의 사막화의 원인도 결국 가난이라는 것이다. 아프리카와 남아시아에서 하루 수천명의 어린이가 먹는 물로 죽어가는 것도 가난 때문이다.
북한의 수해를 보면서 우리는 지금까지 빠져있던 잘못된 환경이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가난과 부, 그리고 문명이 환경을 지키는 데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아야 한다. 아울러 현재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는 허황된 환경주의와 오도된 환경논리를 바로 잡아야 한다. 특히, 환경지식도 없이 환경재앙 운운하는 외눈박이 환경주의자들은 가난이 앗아간 한반도의 반쪽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모르는세상얘기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요(堯) 임금과 왕비 (0) 2008.05.02 헬렌 켈러와 스승' 애니 설리번의 사진 (0) 2008.05.02 한반도 대운하의 행방(구자건) (0) 2007.10.04 나무의 세계(이상훈) (0) 2007.10.04 작은 행성 지구에서 잘 사는 법 (0) 2007.0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