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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 닭 / 정 호 승시가 있는 사랑방 2013. 5. 24. 10:36
까 닭 /정 호 승 내가 아직 한 포기 풀잎으로 태어나서 풀잎으로 사는 것은 아침마다 이슬을 맞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바짓가랑이를 적시며 나를 짓밟고 가는 너의 발자국을 견디기 위해서다 내가 아직 한 송이 눈송이로 태어나서 밤새껏 함박눈으로 내리는 것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 싸리빗자루로 눈길을 쓰시는 어머니를 위해서가 아니라 눈물도 없이 나를 짓밟고 가는 너의 발자국을 고이 남기기 위해서다 내가 아직도 쓸쓸히 노래 한 소절로 태어나서 밤마다 아리랑을 부르며 별을 바라보는 것은 너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너를 사랑하기엔 내 인생이 너무나 짧기 때문이다
새들은 바람이 가장 강하게 부는 날 집을 짓는다.
강한 바람에도 견딜 수 있는 튼튼한 집을 짓기 위해서다.
태풍이 불어와도 나뭇가지가 꺾였으면 꺾였지
새들의 집이 부서지지 않는 것은 바로 그런 까닭이다.
-정호승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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