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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함경1
    모르는세상얘기들 2011. 6. 27. 16:32

     

     

    아함경/니카야/니까야/불교원전

    목숨은 밤낮으로 줄어드나니 때를 놓치지 말고 부지런히 힘써라. 세간의 이치는 덧없는 것이니 미혹하여 어둠 속에 떨어지지 말라. 법구경 노모품(老耗品)   
     아함경

    ▲아함경(阿含經)

    아함은 범어 아가마의 음역(音譯)이다. 전승(傳承)이란 뜻을 갖고 있다.

    말하자면 전해져 온 부처님의 가르침이란 의미다.

    석존 열반후 1백~2백년이 지나자 입으로 입으로 전해져 오던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을 모으자는 운동이 시작되었다.

    이렇게 해서 모은 것을 아가마라 부른 것이다.
    그래서 아함경은 한 권의 경전이 아니라 부처님의 교설 전체를 담은

    백과사전과 같다고 할수 있다. 불교의 근본사상이 담겨 있는 것이다.

    대승과 소승의 구별도 없으며 이설의 대립도 없다.

    유명한 사성제(四聖諦) 팔정도(八正道) 십이인연(十二因緣) 십이처(十二處) 오온(五蘊) 중도(中道) 십팔계(十八界) 등 불교의 근본교리가 함축되어 있다.

    아함경에는 남전(南傳)과 북전(北傳)이 있다. 북전은 한역(漢譯) 아함경이다. 한역 아함경은 네가지로 나눌수 있다. 장아함경(長阿含經) 22권엔 장편 경전 30경이 들어 있다. 중아함경(中阿含經) 60권에는 중편경전 222경이 담겨 있다. 아울러 잡아함경(雜阿含經) 50권은 단편경전 1362경을 포함하고 있다.

    또한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 51권에는 471경이 들어 있다.

    보통 "4아함"이라고 한다.

    그리고 남전(南傳)은 남방불교의 팔리어 5부(部·니카야)다.

    여기서 니카야는 부분이란 뜻이다. 장부(長部) 중부(中部) 상응부(相應部)

    증부(增部) 소부(小部)가 그것이다. 대개 "5아함"이라고 부른다.

    이중 소부(小部)에 유명한 법구경(法句經) 본생담(本生譚) 등

    경전 15편이 들어 있어 한역 아함경과 구별짓는다.

    근래의 연구에 따르면 아함경이 율장과 더불어

    가장 오래된 경전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4아함은 어느 한 부파(部派)의 소의경전(所依經典)이 아니라

    다른 부파의 것을 모아 엮은 것으로 밝혀졌다.

    팔리어경전의 5아함은 동남아에서 최고의 경전으로 추앙받고 있다.

    (현대불교 미디어센터 ⓒ 2005)

     

     

     

    [질의]

    초기(남방)불교를 비판하는 자들은..

    툭하면 <아함경>은 소승경전이라 하며..

    대승불자들은 <아함경>을 보면 큰 일나는 듯이 말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 

     

    [답변]                     

    참 어려운 질문을 하십니다. 

    답변드리기도 곤란하고 난처합니다.

    이 문제를 잘못 건드리면 이단으로 공격받기 쉽상이기 때문이죠.

    그러나 소승은 성직자의 양심으로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밝히려 합니다.

     

    아함경이 이 땅에 들어온지 겨우 몇 십년입니다.

    근래에 들어와서 평가받기 시작한 경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그 전에는 소승불교 경전으로 치부하다, 많은 신도분들이나 개혁을 주장하는 분들이

    기복신앙적인 요소에서 자유로워지고자 읽게 되어, 점차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부처님의 진 법문 즉 살아있는 경전이지요.

    이것은 부처님 사후 700년 이후 쓰여진 대승경전과 달리, 부처님 재세 시의

    말씀과 행적을 담은 진정한 불교경전입니다.

     

    소승은 승려 생활한지 오래지 않았지만 부끄럽게도 아함경을 처음에는 몰랐습니다.

    그저 금강경이 최고인 줄 알고 읽고 사경하고 했지만, 정작 금강경으로는 뭔가 부족하여

    그 사상의 원 교리를 찾다가 아함경을 읽고,

    정말 부처님 살아 생전의 육성이란 것을 알게 된 것이지요.

     

    아함경이 처음부터 북방불교에 들어온 것이 아닙니다.

    처음 달마조사로부터 선이 들어오면서 선문답이라고 하는 방식의 깨우침을 우선했었지요.

    뜰앞에 잣나무가 어쩌네, 똥막가지가 어쩌네 하며 논쟁을 하다가 소위 큰 스님이라는 분들이

    부처님이전부터 있었으나 부처님이 크게 강조하지 않으신 공사상을,

    개인적인 깨우침에 근거해서 확대재생산하여 여러가지 경전을 마치

    부처님의 말씀인냥 편찬하였지요.

    그 팔만 사천 경전이 된 대승경전을 먼저 받아들인 것입니다.

     

    우리 불자들이나 수행자들은 그 대승경전(경전이라기 보다는 법문이라함이 옳을 듯)을 마치

    석가모니 부처님의 실제 말씀인냥 알고 공부했던 것이지요.

    경전은 대승경전밖에 없었고, 더구나 여시아문 하니까 부처님의 실제 음성으로 믿을 수밖에요.

     

    형이상학적이고 관념론적인 대승경전을 천 몇 백년 공부하던 중에,

    불과 몇 십년 전에 들어온 아함경을 보니, 부처님의 행적이나 연기법 팔정도 등이 대승경전과

    달리 너무 쉽게 설명이 된 것을 보고, 수준이 낮은 경전으로 마치 원시불교(소승불교)에서

    보는 경전으로 치부한 것이지요.

     

    예를 들어 대학생이 초등학교 교과서를 보고 쉽다고 팽개치듯이, 

    정작 부처님의 진 법문인 아함경을 팽개친 것입니다.   

    그리고 현재까지 뿌리 깊은 무속신앙 신비주의 기복신앙을 팽개칠 수도 없는 입장이었겠죠.

    그리고 뭔가 탁하는 순간에 깨칠 수 있다고 믿었는데 아함경은 그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그런 깨침이라는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현재의 선종과는 너무나 다른 가르침에 놀라서 던져버린 것입니다.

     

    제가 대승경전을 비하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더 건전하고 진정한 대승불교를 하자는 것이지요.

    다만 기초학문을 배워 학력이 쌓인 후 대학교 공부를 하듯이 절차와 순서를 밟아가야 하는데, 

    우리 불교는 기초 학문인 아함경을 완전히 무시하고 대학교 교제로 바로 공부를 하는 경우지요.

    그러니 정작 승려들과 신도들이 부처님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수박겉만 핥다가 마는 경우가 바로 한국불교입니다.

     

    1. 그러면 아함경이 왜 중요한지를 먼저 말해야 되겠군요.
    아함경은 우리가 성경이나 코란을 보듯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생활 가운데

    불교의 진리를 설한 내용입니다. 

    누구나 불교의 깨달음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해진 것입니다.

    이 경전은 부처님께서 직접 설하신 내용을 부처님 사후에 부처님의 제자들이 직접

    부처님께 들은 바를 적은 경전이지요.

    기독교로 보자면 4복음서 같은 것으로 불교성전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경전이죠.

    기독교에서 4복음서가 없다면 기독교가 존립하지 못하듯이, 아함경이 없는 불교는

    성립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10명의 제자 중에 지혜가 제일인 사리불 존자나, 두타행을 수행하고 부처님 법을 전한 제1대 조사로서 받들고 있는 마하가섭 등 부처님의 10대 제자에게 설한 경전 내용입니다.

    아함경엔 무상 고 무아 연기 사성제 팔정도 등에 대한 구체적인 교리들과 부처님이 45년간

    설하신 모든 법문 내용이 다 들어 있습니다. 

     

    부처님 사후 700년에서 1,000년이 지난 다음부터, 부처님 얼굴도 음성도 모르는 스님들이

    여시아문하여, 마치 부처님의 진짜 말씀처럼 기록한 법문하고는 차원이 다른,

    그야말로 살아있는 부처님의 말씀을 기록한 최초의 경전입니다.

     

    이 아함경을 읽어보면 부처님이 막 깨달으신 이야기부터 부처님 열반까지 모든 시기에 걸쳐

    부처님과 그 제자들의 말씀과 일거수일투족이 사실 그대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2. 그럼 왜 북방불교에서 아함경을 무시했나?
    우선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달마조사에 대한 설명이 우선됩니다.

    달마조사는 경전에 기록되기를, 앞서 말한 마하가섭 존자가 1대 조사가 되셨고

    나중에 아난존자가 가섭존자로부터 깨달음을 인정받고 2대 조사가 되었으며→

    3조 상나화수존자→4조 우바국다존자 →5조 제다가존자→6조 7조........

    28대 조사 "보리달마" 스님까지 오게 되었으나, 달마조사는 당시 선종의 불교를

    중국으로 가져 온 것입니다.

     

    달마조사가 소림사에서 면벽 9년 하실 때 중국 승려 혜가스님이 29대조사로 맥을 잇게되고→

    30대조사 승찬대사→31대조사 도신대사→32대조사 홍인대사→33조사 혜능대사 까지를

    33조사라고 하여 선종에서 높이 모시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불교 이전에 이미 중국 땅에 뿌리내리고 있던 유교의 영향을 받아서,

    요즘 말로 하면 족보개념 때문에 육조 혜능까지를 중요한 법을 받은 분으로 생각하고,

    그 시대 팽배했던 도교 사상을 결합한 중국불교 즉 선종이 득세하게 됩니다. 

    결국 아함경은 버려지고 마치 선종(선불교)만이 최고의 수행법이고 부처님의

    진 법문인 것처럼 왜곡된 것입니다.. 
      
    3. 한국불교는 어떠한가
    우리 한국불교는 중국의 영향을 받아서 육조 혜능의 법을 이어받은 받은 법손으로 이어지는

    선종을 배워 온 스님만 정통으로 인정해 왔었습니다.

    결국 1600년이라는 오랜 세월의 불교 도입이래 고려 말의 태고 보우나 보조국사 지눌스님을

    지금의 각 종단들이 종조로 삼고 있다는 것이지요.

     

    덕분에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원효대사 의상대사 등 수많은 고승들은 중국에서 즉

    육조혜능의 법을 이어받지 못했다고, 한국 선종에서 인정을 해주지 않는 잘못을

    아직도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한국불교는 철저한 중국의 사대주의적 종교이지요.
    그러나 중국에서는 인도와 지리적으로 가깝다보니 우리같이 선만이 최고인냥 하지 않고 

    남방불교도 많이 받아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마치 조계종단을 중심으로 선만이 최고의 수행, 최고의 불교인 것처럼 왜곡하다보니  국적도 없는 불교가 되고만 것입니다.   그러니 아함경이 달갑지 않은 것이죠.

     

    4. 한국불교에서 다루는 경전은?
    각 종단이 주된 교재로 삼는 경전을 말하는데, 소위 말해서 소의경전이라고 합니다.

    통상적으로 한국불교의 대부분의 종단에서는 금강경을 소의경전으로

    다른 경전보다 우선시 하지요.

     

    금강경은 잘 아시다시피 부처님이 수보리에게 설한 공사상을, 후대에 대승의 승려가 좀 더

    발전적으로 확대해석한 경전으로, 한 곳에 집착하여 마음을 내지 말고 항상 머무르지 않는

    마음을 일으키고, 모양으로 부처를 보지 말고 진리로서 존경하며,

    모든 모습은 모양이 없으며 등등...... 

    이렇게 본다면 곧 진리인 여래를 보게 된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지요.

     

    이것이 즉 선을 통하여 깨달으면 부처가 된다는 대승의 입장에서,

    수많은 경전 중에 금강경을 소의경전으로 사용한 것이지 부처님의 경전이 이것 밖에 없어서

    사용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5. 그럼 지금이라도 아함경을 받아드리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만약 아함경을 인정하면 대승불교 즉 한국불교의 존립기반이 무너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함경을 받아들이면 그 동안 승려들이 법문한 거의 모든 것이 거짓으로 판정되는 것입니다. 

     

    중세에는 승려가 아닌 일반인들이 성경을 읽으면 화형시켰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너무 쉽게 진리에 다가갈 수 있는 아함경은 지금의 대승경전과 너무나 큰

    괴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는 대승에서 받아들인 힌두교의 잡신들과 관세음보살 지장보살 아미타불 염라대왕 주술

    점술 동양철학 산신 칠성 용왕각 유교 도교적 요소 등으로 기복신앙화 되어 있는데,

    이 모든 것을 부정해야하기 때문입니다.  

     

    기복적이고 미신적인 짖거리를 행해야 먹고 살 수 있는 데, 아함경으로 말미암아 이런 기복신앙적인 요소가 없어지면 모두 굶어 죽는다는 생각에 아함경을 읽지 못하게 막고 있는 것입니다.

    아함경에는 현재 대승의 모든 신적인 존재나 점술 허례 의식 기복을 철저히 배격하거든요.

     

     

    일례로 여러분께서 너무나 잘 알고 있다시피, 삼귀의에서 마지막 "거룩한 승가에 귀의합니다"

    해야 할 것을 아직도 "거룩한 스님께 귀의합니다" 하고 있지 않습니까?

    뻔한 얘기를 왜 아직도 고치지 않을까요?

    그것을 고치면 사찰에서 스님과 재가자의 권한이 동등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사찰의 운영에 재가자가 동참해야하는 이론적인 기반이 형성되는 것이기에, 사찰

    운영에 침해받아서 재정을 공개해야하고 재정을 스님 독단으로 사용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함경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가 이와 같은 것입니다.

     

    아직도 아함경을 마치 원시불교 즉 스리랑카 태국 베트남 등 소승에서 배우는 경전으로

    치부하고, 자신들이 배우는 금강경 등의 대승경전이 최고인냥 권위를 부여하여, 

    신도들에게 기도하면서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데도 읽게 만들고 있습니다.

     

    예로 조계종단에서 선승으로 추앙받는 청화 큰스님이 아함경의 중요함을 인식하고

    이제부터라도 승려들이 아함경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하자,

    승려들이 청화스님이 주석하시는 선방에 들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95년 전 만해스님이 불교유신론을 통해서 참선을 올바르게 지도할 것. 염불당을 폐지할 것. 

    포교를 현대화할 것. 무속적인 산신 칠성들을 제거하고 석가모니불만을 봉안할 것. 

    의식(儀式)을 간소화할 것이라고 외친 이유가 무었이겠습니까?

    못내 아쉽게도 만해스님께서는 아함경이 이 땅에 들어오기 전에 열반하셨지요.


    그 동안 우리가 참된 경전인 아함경을 외면하고, 마치 선조사들이 부처님의 진리를

    자기 나름대로 설한 법문을 마치 부처님의 진 경전인냥 하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마디로 말하자면 아함경을 제외한 나머지 경전은 모두가 방편 법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옳습니다. 

     

    물론 방편법문도 진리를 연구하는 이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겠지요.
    하지만 본래 부처님의 깨달은 그대로의 경전이 있는 데, 그것을 애써 무시해서는

    도리가 아닙니다.

    부처님은 아함경을 통해서 진리를 완벽하게 그리고 전부를 가르쳤습니다.

     

    6. 부처님이 설하신 외의 그 어떤 것도 진리가 아닐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만약 아함경의 교리와 다른 이론을 설한 경전이 있다면,

    그것은 결코 부처님의 말씀이 아닐 것입니다.

    물론 아함경에 바탕을 둔 대승의 이념은 더 한층 발전시켜 불교의 교리와 신앙을 더욱

    공고히 하는 작업도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무조건적으로 아함경을 배척하는 것은 바람직한 불제자의 자세가 아니겠지요.

    아함경을 읽어야 기복신앙과 신비주의에 빠지지 않고 참된 수행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자신의 깨달음을 통하여 불교를 종교로 만들고 교주가 되고픈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은 분이셨습니다.

    단지 연기적으로 일어나는 모든 것에 순응하고 포용하며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현상계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관세음보살 지장보살 아미타불의 이념처럼 더불어서 살아가는 것이 부처요 보살입니다.

    우리 불제자들은 이 아함경에 수반하여 육바라밀 팔정도를 직접 행한 후, 대 소승의 이념을

    실천하는 부처요 보살행이 되어야 합니다. 

     

    얼마든지 세상 살아가면서 내 마음을 평안하게 하고 행복하게 할 수가 있는 길을,

    바로 아함경에서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아함경의 말씀을 따라 신앙한다면, 굳이 기복과 신비 등 외도를 가르치는 절에 가서

    부처님을 찾을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원불사의 소의경전은 아함경입니다.

    또한 한국 나아가 세계의 모든 불교의 소의경전은 아함경이 되어야 합니다.

    모든 불제자가 오늘부터라도 경건한 마음으로 아함경을 읽으시기를 삼가 바라마지 않습니다.

     

    그리고 예로 든 금강경은 때를 가려서 공부한다면 너무나 훌륭한 경전입니다.

    지금까지 글을 읽으신 분 중에 금강경을 신봉하고 공부하시는 분들은 오해없으시기 바랍니다.

     

                                                              

    조계산 보현사에서 도월합장 

     

    도월스님의 불교개혁실천모임

    http://cafe.daum.net/DOWOL

     

    도월 - 한국불교개혁카페 원불사 지도스님

    http://cafe.daum.net/wonbulsatem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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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고시대 경전인 천부경 을 보면 석가님의 말슴과 선종의 말이

    모두 한 귀절에 있으므로 그것이 내용이 조금 다르다고 이단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아래는 참고로 펌글이니 참고 하세요,    

     

    天 符 經 과 불교 근본교리

     

    불교의 근본 교리는 연기와 중도, 이 두가지가 空(法)의 실체 즉 부처님이 말씀하신 공(空) 法이 무엇인가, 그것이 바로 정각이고, 그것이 바로 해탈이다. 인생의 생노병사의 고뇌와 번민으로부터 풀려나려면, 영원히 살던가, 아니면 죽음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아야한다.

       

    空은 無가 아니라 모든 것은 연기를 따라 일어난 가실상이다. 용수는 이것을 진공묘유(眞空妙有)라 했다. 없는 가운데 무엇인가 있다는 것이다. 이 세계는 있다고 해도 틀리고 없다고 해도 틀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은 것을 제법의 실상으로 본다.

     

    반야심경의 공즉시색, 색즉시공이 불생불멸(不生不滅), 불구부정(不垢不靜), 부증불감(不增不減). 색이면서 동시에 공이고, 공이면서 동시에 색인 이것은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으며. 늘지도 줄지도 않는 것, 때문에 공에는 색이 없다(空中無色)고 결론 짓는다.

       

    석가세존 부처님은 명백하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고로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하셨다. 이게 제법무아이다. 부처님이 세상의 모든 삼라만상에는 그것이 없으니 이 진리를 '제법무아'라 하느니라,  天 符 經 의 一始無始一를 풀어 해설 한것과 같은  것이 반야심경 이라고 보면 된다.

       

    “대범천왕문불결의경” 부처님이 연꽃 한송이를 들어보이셨을 때, 마하가섭이 홀로 그 뜻을 알고 빙그레 웃었다, 염화미소의 이야기에 마하가섭에게 부처님께서, "나에게는 진리와 하나가 되는 깨달음에 이르는 비법이 있다. 이 비법은 형상이 없어 나타낼 수 없으나 진리의 문을 여는 열쇠이다. 문자나 말로는 표현할 수도, 전해줄 수도 없는 것이다. 나는 이 비법의 열쇠를 마하가섭에게 전한다"라고 하셨다는 것이다.

      

    달마가 '직지인심 견성성불' '견성성불' 사람-아니 미물들을 포함한 모든 중생의 마음 속 깊은 어디인가에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는 본성이 있으므로, 누구나 자기 마음을 바로 보고 이 본성을 발견하면 바로 부처가 될 수있다. 여기서 본성(本性)이라는 말은 본래자성(本來自性)의 준말이다. 혜능이 '마음 밖에 부처가 없으니 마음이 곧 부처' 본성은 청정하고 깨끗해서 그 자체가 부처이기 때문에 누구나 이것을 찾아 발견하기만 하면 부처가 된다고 했다.

     

     

     

     

    선종의 6대조 혜능의 '불이론(不二論). 세상 만물을 두개씩 짝지워서 하늘과 땅은 둘이 아니고, 사람과 하늘은 둘이 아니다. ' 혜능 왈, "사람의 육신이 하나의 성(城)이요, 눈, 귀, 코, 입이 네개의 문(門)이다. 이 성 안에는 마음이 주인으로 자리하고 있어 주인에 따라 평화를 누릴 수도 있고 전쟁을 일삼을 수도 있다. 기쁨과 슬픔, 돈에 목마름, 이 마음의 주인이 현군이면 성안이 태평하여 극락세계의 안락을, 이 마음의 주인이 폭군이면 불안해 지옥세계의 고통을 느낄 것이다. 사람들은 항시 밖으로만 구하나 눈, 귀, 코, 입, 몸과 뜻을 잘 다스려 길들이면 이 몸이 서방이 정토요, 이 마음이 극락세계의 아미타불임을 알지 못한다.

       

    나를 떠나서는 행복과 불행도 없고 기쁨과 슬픔도 없는 것이다. 이 마음의 작용이 극락도 만들고 지옥도 만든다. 마음에 등불을 밝힌 자는 어둠 속에서 헤매이지 않아 극락세계에 있는 것이요, 마음에 주림과 목마름만이 있는 자는 스스로 지옥의 고통을 지어 어둠 속을 헤매고 있는 것이다. 마음 속의 부처, 마음속의 극락세계를 잘 보존토록 하라.

       

    달마와 선종에 대해 살펴보는 것은 후기 불교의 흐름이 선종으로 발전하는데  배달족 천손사상 의 본류인 天 符 經 의 不二論 불이론天二三地二三 析三極 無盡本 本心本 太陽昻의 (本來自性)이 강조 되었다. 용수 의 眞空妙有 즉 一 妙 衍 萬 往 萬 來   의 진리 모든  이 세상에 온것은 무릇 가야한다. 는 이치를 말한다.  석가세존 부처님의 말씀은 천부경의 초기를 말 하고 달마와 혜능은 천부경의 중장을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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