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세상얘기들

나무의 세계(이상훈)

여성국장 2007. 10. 4. 17:17

나무의 세계

이  상  훈 (수원대학교 환경공학과 교수)

 

1. 나 무


근대 문명이 발달하기 전 인간의 생활에서 나무가 차지하던 비중은 지금 우리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컸다. 알프스 정상 근처 얼음 속에서 발견된 신석기 시대 고대인의 미이라 주변에서 다음과 같은 물품이 발견되었다.

‘물푸레나무 손잡이가 달린 돌칼, 구리도끼, 주목나무를 깍아 만든 활과 화살통, 나무살에 뿔촉을 꽂아 만든 14개의 화살, 부싯깃용 버섯, 자작나무껍질로 만든 상자 두 개, 그중 하나의 상자에 담긴 단풍나무 잎으로 싼 불씨, 개암나무 광주리, 뼈를 깍아 만든 바늘, 돌 송곳과 흙손, 돌을 날카롭게 다듬기 위한 라임나무 가지 공구셋트, 약품상자와 항생제용 자작나무 곰팡이 등등’

고대인이 사용한 생활용품의 재질이 대부분 나무로 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고대인들은 나무를 사용하여 집을 짓고, 난방을 하고, 취사를 하고, 배를 만들고, 다리를 만들고, 무기와 생활도구를 만들어 문명을 유지할 수 있었다. 나무는 가공하기 쉽고, 오래 쓸 수 있고, 구하기 쉬운 자재이기 때문에 고대인에게는 필수품이었다. 현대에 와서도 나무는 가구, 악기, 배, 펄프, 종이, 합판 등에 사용되며 문명을 유지하는데 꼭 필요한 재료가 된다.

나무잎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이다. 초록의 잎에는 엽록소가 있고, 이 엽록소에서 영양분을 만들어 낸다. 공기 속에 있는 이산화탄소와 뿌리를 통해 빨아올린 물이 원료가 된다. 나무는 매우 간단한 두 가지 원료를 이용하여 포도당이라고 하는 중요한 영양소를 만들어낸다. 생물체는 포도당을 변화시켜 여러 가지 필요한 물질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처럼 생태계에서 필요한 영양분을 만드는 공정을 광합성이라고 한다. 광합성을 할 수 있는 것은 식물의 잎과 물속의 조류(藻類) 뿐이다. 영어로 식물을 plant라고 하는데 이 단어에는 공장이라는 뜻도 있다. 즉 식물의 잎은 영양분을 만드는 공장인 셈이다. 지구 상에는 수많은 식물과 잎이 있는데, 이러한 잎의 총 면적은 육지면적의 4배나 된다고 한다.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는 “식물 뿌리는 동물의 입과 같으며 뿌리에서 영양소를 흡수하여 살아 간다”고 하였다. 나무의 뿌리는 지면을 중심으로 줄기와 대칭을 이룬다. 땅위에서 줄기가 하늘을 향해 뻗어가고 땅 아래에서 뿌리가 물을 찾아 뻗어내린다. 나무 줄기가 퍼지는 범위만큼 땅속에서 나무의 뿌리가 퍼지는 경계가 된다. 줄기의 양과 뿌리의 양은 비슷하여 일정한 비율을 유지한다. 나무의 뿌리와 줄기의 일정한 비율을 T-R비라고 한다. 나무는 뿌리에서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줄기를 뻗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만약에 누군가 줄기를 한쪽 자르면 다른 쪽 줄기로 에너지를 보내어 가지를 더 뻗고, 반대로 뿌리가 잘리게 되면 그만큼 가지의 양을 줄여서 뿌리와 줄기의 비율을 일정하게 조절한다.

빨리 자라는 나무 줄기는 물렁물렁하며 천천히 자라는 나무는 줄기가 단단하다. 아카시아, 이탈리아포플러, 리키타소나무 등은 빨리 자라기 때문에 사방공사용으로 좋다. 천천히 자라면서 단단한 나무로서는 목도장의 재료로 쓰는 회양목, 목탁의 재료로 쓰는 살구나무, 도끼자루를 만드는 물푸레나무, 껍질을 종이처럼 이용할 수 있는 자작나무, 가구 재료로 환영받는 박달나무 등이 있다,

나무의 높이와 수명은 종류에 따라 정해져 있다. 은행나무, 향나무, 주목, 느티나무, 팽나무 등은 오래 사는 나무로서 천년 이상의 수명을 누린다. 소나무는 5~6백년 정도가 수명이며, 벚나무나 낙엽송의 수명은 백년 이하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는 강원도 정선군 두위봉에서 자라는 주목인데 1,400년의 수명으로 알려져 있다. 나무의 수명이 다하는 이유는 분명하지 않지만 나무 줄기 속이 낡아져서 점차 살 수 없게 된다. 또한 나이를 먹을수록 성장이 더디어지므로 나무의 높이도 끝없이 자랄 수는 없다.


2. 소나무와 참나무


우리나라에서 대표적인 나무는 소나무와 참나무이다. 나무 중에 으뜸은 소나무인데, 한자로는 송(松)이라고 한다. 송의 어원은 진시왕이 말을 타고 가던 중에 비를 만나 잠시 피신한 장소가 소나무 밑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진시왕이 나무(木)의 공(公)을 생각한다 하여 소나무를 松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 선조는 소나무를 다양한 용도로 사용하였다. 소나무로 만든 집에서 태어나고, 태어난 아기를 위해 솔가지를 매단 금줄을 쳤다. 소나무 장작불로 밥을 해 먹고, 아궁이에 불을 때서 방을 따뜻하게 하였다. 소나무로 가구를 만들고, 송편을 해 먹었으며, 솔잎주와 송화주, 송순주를 빚어 술로 먹었다. 송화가루로 다식을 만들어 먹고, 소나무 뿌리에 기생하는 복령은 귀한 약제로 쓰였고, 송이버섯은 좋은 먹거리였다.

전통적인 관습에 의하면 아들을 낳으면 선산에, 딸을 낳으면 밭두렁에 그 아이 몫으로 몇 그루의 나무를 심는데, 이를 ‘내나무’라고 불렀다. 돌이 지나면 심게 되는 이 내나무는 주인공과 평생 운명을 함께 하는 공동운명체였다. 딸의 내나무는 시집갈 때에 베어서 장롱을 짜주거나 반닫이를 짜서 평생을 한 방에서 더불어 산다. 아들의 내나무는 아이가 자라 아버지가 되고 할아버지가 되어 죽었을 때에 베어서 그 속에 들어가 영면할 관목으로 쓴다.

우리 민족의 이러한 소나무 사랑은 현대에까지 이어져 애국가 제2절에서는 서울 남산의 소나무를 칭찬하고 있다. 이처럼 귀하게 여겼던 소나무가 최근에 소나무재선충에 의해 공격을 받고 있다니 걱정이 된다. 재선충은 크기 1mm 내외의 실같은 선충으로서 솔수염하늘소라는 곤충이 옮긴다. 재선충이 소나무에 침입하면 개체수가 엄청나게 불어나면서 물관을 막아 영양분이 공급되지 못하여 소나무는 말라 죽는다.

소나무재선충은 소나무 에이즈라고도 부르는데, 일단 감염되면 치료약이 없어서 100% 죽는다. 재선충이 발생하면 감염소나무 주변에 있는 반경 200m 내의 소나무는 모두 베어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1988년 부산 금정산 금강공원에 일본원숭이를 들여올 때 시육상자 송판을 통하여 전해졌다고 한다. 이후 재선충은 서서히 북상하더니, 최근에는 강릉은 물론 서울 근교에서도 재선충이 발생하였다. 위기위식을 느낀 산림청에서는 누구라도 재선충 발견을 신고하면 확인한 후 최고 200만원까지 포상금을 준다고 공고를 하였다.

참나무는 낙엽활엽수로서 우리에게 익숙한 나무이지만 소나무만큼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 소나무는 한 그루에 수백만원씩 조경용으로 팔리고 있지만 참나무를 사서 심는 사람은 거의 없으니 말이다. 산에 가면 흔한 것이 참나무이지만 엄격하게 말하면 산에는 참나무가 없다. 참나무는 특정 종의 이름이 아니고 통칭에 불과하며 참나무과에 속하는 졸참나무, 갈참나무, 상수리나무, 굴참나무, 신갈나무, 떡갈나무 등 6종의 식물을 모두 참나무라고 부른다. 우리가 가장 많이 보는 참나무는 신갈나무로서 옛날에 짚신이 헤지면 깔창 대신으로 깔아서 사용했다고 하여 ‘신갈’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졸참나무는 잎과 열매 등이 가장 작아 ‘졸’이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최근에는 버섯의 재료목으로 많이 쓰인다. 떡갈나무는 잎이 가장 큰데, 큰 잎으로 떡을 찌거나 싸서 보관할 수 있어서 떡갈나무라는 이름이 붙었다.

참나무의 공통적인 특징은 도토리라고 부르는 열매를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참나무는 시원하고 넓은 잎새와 적당히 굽은 둥치의 아름다움, 그리고 산짐승에게 좋은 먹거리인 도토리를 제공한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소나무보다 못하지 않다. 그래서 우리 선조들은 나무 중에서 가장 좋은 나무라는 뜻에서 ‘참나무’라고 이름 붙였으며, 선사시대에도 진목(眞木)으로 불렀다. 요즘에 지구온난화가 문제가 되고 있는데, 최근 국가장기생태연구에서 밝혀진 바에 의하면 참나무숲은 소나무숲에 비해서 탄소저장량이 2배나 많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즉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서는 소나무보다 참나무를 많이 심는 것이 유리하다는 이야기이다.

 

3. 숲의 혜택


나무가 모여서 숲을 이룬다. 숲은 문명의 산실이다. 최초에 원시인은 숲에서 채집수렵을 하며 거의 200만년을 보냈다. 인간이 숲을 떠나 농사를 지은 것은 불과 1만 전이다. 우리의 유전자에는 숲에서 살던 시절의 행동양식이 새겨져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산림은 2004년 현재 640만 ha로 국토면적의 2/3에 해당한다. 그러나 인구가 많아서 일인당 산림면적은 0.14ha (1,400m2)에 불과하다. 산림이 우리에게 주는 유형 무형의 혜택을 돈으로 따지면 얼마나 될까? 2003년에 임업연구원에서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산림이 주는 공익적 혜택은, 대기정화 약 13조원, 수원함양 약 15조원, 토사유출방지 약 11조원, 휴양기능 약 11조원 등 1년 동안 모두 58조8,800억 원의 혜택을 제공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산림의 가치는 국민총생산액의 10%에 해당하며, 국민 한 사람에게 약 123만원의 금전적 혜택을 주는 셈이다.

숲은 종합병원이다. 숲에 들어가면 풀과 나무들이 뿜어내는 특유의 향들이 우리를 감싼다. 숲속에는 식물들이 미생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살균물질인 피톤치드가 있고, 테르펜이라고 하는 정유성분이 많이 있어서 삼림욕을 하면 건강에 도움이 된다. 집안의 TV나 컴퓨터 등 전자제품은 몸에 해로운 전자파가 나오지만, 개울물이 흐르는 숲에는 몸에 좋은 음이온이 많아서 건강에 좋다. 색치료라는 것이 있다. 초록, 파랑, 노랑 등 다양한 색깔로 사람의 질병을 치료하는 것인데, 숲에는 최고의 명의라고 부르는 초록색이 가득하며 다양한 색깔로 우리의 건강을 지켜준다. 향치료라는 것이 있다. 꽃에서 추출한 향으로 우울증 두통 등 많은 질병을 치료하는데 사용한다. 숲에는 인공적으로 만들지 않는 수많은 꽃향기가 가득하다. 또한 음악으로 병을 치료하는 소리치유라는 것이 있는데, 숲에는 음악보다 더 좋은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 풀벌레소리 등이 가득한 곳이다.

울리치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 중에서 병실 창을 통하여 숲을 볼 수 있는 환자와 그렇지 못한 환자로 나누어서 수술 후의 회복을 조사했더니, 숲을 볼 수 있는 환자의 회복기간이 훨씬 빨랐다고 한다. 사람은 숲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생명력을 회복할 수가 있는 것이다. 나무가 하나도 없는 도시를 상상해 보라. 그런 도시가 존재할 수도 없겠지만, 그런 도시에 살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무는 대가를 바라지 않고 모든 것을 준다. 푸른 잎은 바라보는 즐거움을 주고, 산소를 만들어 제공하고, 예쁜 꽃을 피워 눈을 즐겁게 하고, 열매를 맺어 동물과 사람에게 먹거리를 제공하며 인간에게 목재를 제공한다. 새에게는 앉을 장소와 집을 지을 장소를 제공하고, 덩굴식물에게는 버팀목을 제공한다. 숲에 있는 모든 동물은 음으로 양으로 나무의 혜택을 받으며 살고 있다.

최근에는 나무 아래에 장사를 지내는 수목장이 소개되고 있다. 수목장은 화장한 후 골분을 지정된 나무의 뿌리 주변에 뿌리는 장묘법으로 1999년 스위스에서 처음 도입된 후 독일과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에 전해졌다. ‘장사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최근 공포됨에 따라 산림청은 경기도 양평군에 첫 수목장림을 조성한다고 2007년 5월에 발표하였다. 양평의 수목장은 잣나무와 소나무 등으로 수종이 다양한 55ha의 국유림에 조성되는데, 2009년부터 매장신청을 받을 계획이다. 수목장은 매장 중심의 장묘문화로 인해 좁은 국토에서 산림이 몸살을 앓고 있는 문제점을 개선하여, 산림을 보호하고 국토이용의 효율성을 높이면서 자연친화적인 장묘문화를 만드는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대로부터 샤머니즘과 토테미즘 같은 사상으로 인하여 오래된 나무를 보면 뭔가 신령한 영이 내재하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오래된 나무는 함부로 베지 않고 보호하였으며 고사를 지내고 소원을 빌었다. 특히 마을 앞에 있는 고목나무는 자기 마을을 지킨다고 생각하여 함부로 베지 않았다. 나무를 보호하는 아름다운 전통이라고 생각된다.


4. 나무와 진리


나무의 이러한 속성과 덕성을 간파한 현인들은 일찍부터 나무를 칭찬하고 있다. 중세의 기독교 성인인 성 프란체스코는 다음과 같은 짧은 시를 남겼다.


나는 나무에게 물었다

하느님에 대해 말해 주겠니

그러자 나무는 꽃을 피웠다.


20세기 초 미국의 음유시인 조이스 킬머는 ‘나무들(Trees)’ 이라는 시에서 “시는 나같은 바보가 쓰지만, 하느님만이 나무를 만들 수 있다”고 읊었다. 수필가 이양하는 1960년에 발간한 수필집의 제목을 나무라고 이름 붙였으며, ‘나무’라는 제목의 수필에서 여러 가지로 나무를 칭찬한 후 마지막으로 “불교의 윤회설이 참말이라면 나는 죽어서 나무가 되고 싶다”고 썼다.

세상에는 나무가 있기 때문에 사람이 있고, 문명이 있고, 미래가 있다. 나무가 없는 세상에서 인간은 살 수 없다. 나무가 있기 때문에 나는 이 글을 쓸 수 있고, 여러분은 이 글을 읽을 수 있다. 인간이 나무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면 그러한 문명에는 희망이 없다. 인도의 명상철학가 크리슈나 무르티는 “진리를 알려거든 나무를 보라”고 말했다. 나무가 가르쳐 주는 진리를 깨닫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다. 지금 숲으로 가서 나무를 보라. 거기서 당신은 무엇을 보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