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과 경제를 망치는 대선 공약(이상돈)
환경과 경제를 망치는 大選 공약
이 상 돈 (중앙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1. 대통령 선거 때마다 대형공사 공약
198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당시 집권당이던 민정당의 대통령후보 노태우씨는 새만금 간척을 공약(公約)으로 발표했다. 경제기획원 등의 정부 관료와 연구소의 전문가들은 새만금 사업이 경제성이 없다고 판단했지만 호남 표를 잡아 보겠다고 이런 공약을 발표한 것이다. 그런 공약을 내걸었다고 노씨가 호남 표를 얼마나 얻었을 것인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대통령 취임 후에 새만금 사업을 재검토해서 이를 공약(空約)으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었지만 ‘호남 푸대접’ 비난을 들을 것으로 걱정한 노태우씨는 약속을 지켰다. 새만금 공사가 시작되자 언론은 ‘단군(檀君)이래 최대의 역사(役事)’이고 ‘웅비하는 한민족의 상징’이라고 치켜세웠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한 것이었다. 막대한 세금을 퍼부었으나, 쓸모 없는 땅덩어리를 만들어 내고 바다 생태계만 망가트린 것이다.
1992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당시 정부와 여당은 경부고속철 건설계획을 발표했다. 이 공사는 물론 당시 여당 대통령 후보인 김영삼의 당선을 돕기 위한 프로젝트였다. 공사를 국제입찰에 붙여서 독일, 프랑스, 및 일본의 고속철 회사가 입찰을 했다.
프랑스가 입찰을 따냈는데, 이 계약의 진실은 아직도 베일에 가려져 있다. 몇 년이 지나자 공사 계획 자체도 엉망이었고, 실시 설계도 부실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노선을 두고 지자체 사이에 첨예한 대립이 생겨서 온 나라가 시끄러워졌다. 또한 천성산 터널을 둘러싸고 갈등이 발생해서 막대한 국력 소모를 초래했다. 원래 예산의 몇 배가 들어간 경부 고속철이 수지를 맞출 가능성은 전혀 없다.
2. 부동산 광풍(狂風)을 일으킨 수도 이전 공약
나라 살림이 거덜난 상태에서 이루어진 1997년 대선 때에는 새로운 공사를 하겠다는 공약은 나오지 않았다. 김대중 대통령은 임기 내내 노태우 김영삼 두 대통령이 저지른 새만금과 고속철의 뒤치다꺼리를 했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도 개발을 정치에 이용했다는 비난을 면할 수는 없는데, 그것은 물론 그린벨트 해제라는 공약을 내세우고 당선된 후 그 공약을 이행했기 때문이다.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씨는 수도(首都) 이전과 지방분권화를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됐다. 당선 후 수도 이전이 위헌 판결로 인해 불가능해지자 행정수도를 건설하고 공공기관을 지방도시로 이전시키기로 했다.
이로 인해 온 나라에 토지투기 광풍(狂風)이 불었고, 막대한 보상금이 지급됐다. 큰 보상금을 거머쥔 토지소유자들은 다시 땅을 사고 강남과 분당의 아파트를 사서 부동산 광풍을 한층 더 크게 만들었다. 다음 대통령은 노씨가 저지른 이 무모한 장난의 덤터기를 뒤집어 쓰게 생겼다.
3. 경부 운하
2007년 대선은 경부 운하와 열차 페리의 각축장(角逐場) 되고 있으니 기가 막힐 일이다. 한나라당 후보 경선이 대통령 선거 본 선거가 되는 듯이 생각하는 이명박 씨와 박근혜 씨가 공약 경쟁을 하고 있는데, 공약이라는 것이 운하 대(對) 페리인 셈이다.
이명박 씨는 4년이면 경부운하를 만들 수 있고, 서울에서 유람선 타고 운하을 거쳐 경부 상주를 가게 되면 세상이 바뀐다고 한다. 이씨는 기자들을 대동하고 독일의 라인-도나우 운하를 방문했고, 라인-도나우 운하 관계자들을 서울로 초청해서 세미나를 열었다.
그러면 이명박 씨가 경부 운하의 모델로 내세우는 라인-도나우 운하의 실체는 어떠한가? 서울에 초청되어 온 라인-도나우 운하회사의 관계자들은 그 운하가 대단한 성공작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것은 오직 그들만의 이야기일 뿐이다.
라인-도나우 운하가 완공되던 시점에 내셔널 지오그래픽은 이 운하에 관한 특집기사를 실었다. 라인 강과 도나우 강은 유럽을 가로지르는 긴 강으로, 오래 전부터 내륙 주운(舟運)에 이용되어 왔다. 따라서 두 강의 상류를 잇는 운하를 건설하면 북해와 흑해를 잇는 물길이 열리게 되어 있다.
1000년 전부터 이 두 개의 강을 이어서 유럽 대륙을 관통하는 긴 물길을 만들려고 했는데, 1845년에 바바리아의 루드비히 1세는 라인 강의 상류 지류인 마인 강과 도나우 강을 잇는 작은 운하를 건설했다. 그러나 이 운하는 운하라기에는 너무나 좁고 얕은 물길이었다. 게다가 완공될 즈음에 유럽에 철도가 부설되어 운하는 용도를 상실해 버리고 말았다.
라인과 도나우를 잇는 본격적인 운하 건설은 1972년에 시작되어 1992년에 끝났다. 11개의 갑문을 건설해서 고도차이를 극복하게 한 이 운하는 엔지니어링 측면에서는 대단한 성공이었다. 그러나 건설 과정에서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너무나 많이 훼손하고 말았다. 더 큰 문제는 운하가 도저히 경제성이 없다는 것이다.
운하를 통해 화물을 보내는 것 보다 트럭운송이 훨씬 편리하고 신속하며 값이 싸다. 심지어 북해-대서양-지중해를 거쳐서 배가 가는 것이 운하를 거쳐가는 것 보다 훨씬 빠르다. 건설비를 회수하는 것은 생각지도 못하는 것이고 수익금은 운영비의 10%도 안 되는 실정이라 바벨탑과 같다는 비판을 듣고 있다.
1997년 프랑스 정부는 라인-도나우 운하의 참담한 현실을 보고 라인 강과 론느 강을 이으려던 운하 건설계획을 취소해 버렸다. 운하라는 것이 역사의 유물(遺物)임을 인정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지형적·기후적 여건도 유럽과 다른데다 이미 고속도로가 거미줄 처럼 연결되어 있으니 운하건설은 터무니 없는 이야기이다.
4. 열차 페리
이명박 씨가 경부 운하 건설을 내세우자 박근혜씨 측은 이에 뒤질세라 동북아 열차 페리를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열차 페리는 말 그대로 열차의 객차나 화물차를 부두에서 특수하게 설계한 페리에 옮겨 싣고 바다를 건너가서 다른 쪽 부두에 내린 후 그곳에 대기하고 있던 기관차에 연결하는 시스템이다. 자동차 대신 객차나 화물차를 페리에 싣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페리는 물 건너 눈앞에 땅이 있는 경우에 그것을 잇는 경우에 많이 쓰인다. 과거에는 페리가 많이 쓰였지만 교량과 해저 터널이 건설됨에 따라 페리는 갈수록 줄고 있다. 터키의 보스포러스 해협을 잇는 열차 페리를 통해 그리스와 루마니아가 철로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데, 현재 공사중인 해저터널 공사가 완성되면 열차 페리는 사라지게 된다.
미국에도 과거에는 열차 페리가 곳곳에 있었지만 지급은 대개 사라지고 말았다. 뉴저지와 뉴욕의 브루클린을 잇는 철로는 폭발물질을 실은 열차가 해저터널을 통과하지 못하게 되어 있는 탓에 인화물질 화물차가 있는 경우에 한해 열차 페리를 사용하고 있다.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도버 해협에도 철도 페리가 있었지만 해저터널이 건설됨에 따라 없어졌다. 열차 페리는 하중의 중심이 상부에 있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위험해서 전복사고가 나기 쉽다. 1929년에 미국의 5대호에서 열차 페리가 침몰하는 등 크고 작은 사고가 많이 났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한국과 중국을 잇는 열차 페리 구상은 넌센스라 할 것이다. 화물은 화물선을 이용하면 되고, 여객은 여객선을 이용하면 되고, 일단 항구에 도착하면 육로 교통수단을 사용하면 되는 것이지 구태여 열차 페리를 새로 만들 필요는 없다. 이제는 역사적 기념물로 남아 있는 열차 페리를 대선 공약으로 내세우는 것은 정말 이해하기가 어렵다.
5. 반목과 불신의 뿌리
돌이켜 보면 1987년 대통령 선거 이후 빠지지 않고 대형공사가 대선공약으로 등장했다. 그 결과로 엄청난 세금이 낭비되었고, 자연환경은 심각한 훼손을 입었다. 새만금과 경부 고속철도로 인해 야기된 엄청난 갈등, 그리고 그로 인한 반목과 대립의 뿌리도 따지고 보면 대권욕(大權慾)에 눈이 멀어 버린 정치인이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2007년 대선에도 지속될 것 같다는 점이다. 이명박 씨의 공약 1호인 경부 운하는 이미 철회하기가 늦은 것으로 보인다. 운하가 지나가는 경상북도 산골마을 마다 운하가 건설되면 땅값이 올라간다고 대단히 들떠 있다고 한다. 박근혜 씨가 제시한 열차 페리도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벌써부터 평택이 열차 페리의 기점으로 적절하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아마도 평택 시는 열차 페리가 평택에서 출발하면 평택을 기점으로 한 철도망이 구축될 것으로 기대하는 모양이다. 철도 페리는 산을 파괴하는 공사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데에 그나마 위안을 삼아야 할 것 같다.
이런 공사를 추진하는 사람들은 이를 통해 고용을 늘려서 경제를 일으키겠다고 한다. 하지만 이 역시 터무니 없는 주장이다. 케인스 식(式) 처방은 경기침체를 연장시키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이 대형 토목공사를 공약으로 내세우는 일은 후진성의 발로(發露)라고 할 것이다. 환경과 국토가 정치의 제물(祭物)이 되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하겠지만, 정치인이라는 ‘육감적 동물’에게 환경과 국토는 안중에도 없으니 그것이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