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사랑방

눈보라는 대륙을 거느린다 - 김요섭

여성국장 2012. 7. 29. 00:01

 

 

김요섭




 

▣ 시인의 약력
 

1927년 함경북도 나남에서 태어나다.

1940년 13세 소년으로 매일신보 신춘문예 동화 <고개 넘어 선생님>이 입선되어 등단하다.

-아마도 최연소 신춘문예 수상 기록 보유자인 듯--.

1946년 시집 『죽순』을 통하여 <수풀에서>, <바닷가 애가> 등으로 시인으로 데뷔하다. 이윤수, 유치환 등이 관여한 시 전문지였을 듯--.

1954년 첫시집 』『체중』 이후 『달과 기계』 『빛의 뿌리』 『맥(짐승이름 맥)』 등 시집 10여 권.

1957년 동화집 『따뜻한 밤』 등 38권의 동화집 발간.

그 외 평론집 『현대시의 우주』, 『현대 동화의 환상적 탐험』

1991년 자서전 『눈보라의 思想』펴냄--500여 page에 달하는 거편임.

젊은 날의 초상을 살펴보면, 단편 소설 수 편과 희곡까지 발표함. 문학에 관한 다재 다능한 팔방미인임.

·수상 경력 생략함. 수많은 상패의 이름은 김요섭 석자로 오히려 빛이 나기 때문임.





 



 

눈보라는 대륙을 거느린다



 

XXX(시인)




 



 

시인을 찾아간다는 방문한다는 뜻일까?

발견한다 즉 창조한다는 것이 아닐까?

필자는 *기술한다(décrire, 설명하다)와 설명한다(expliquer, 해석하다)를 엄격히 구분해서 사용하는 철학의 경우를 생각해 보았다. 즉 <기술한다>는 우리의 경험에 나타난 것을 언어로 옮기는 것이지만, <설명한다>는 그 현상을 그 자체이게 하는 형상, 법칙, 원인 등을 찾아내어 재조명한다는 뜻이지 않은가.

그렇다. 시인을 찾아간다는 시인을 찾아내고 창조하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김요섭. 요섭과 요셉, 요셉과 요섭.

독자 여러분은 무슨 뜻인지 알아차릴 것이다. 그러했다. 필자도, 김요섭=기독교, 필자는 무신론자 자끄 모노에게 훈수를 청하면서, 그가 즐겨 타고 다닌 화성에서 온 인공위성에 동승했다.

"뚜뚜두, 호랑이 모양의 반도α, 허리를 가르는 강이 보인다."

"강이란 원래 인공물과 자연물 그리고 생물체를 탐색할 수 있는 최적의 지점이다. 속도를 줄이고 확대 포착하라."

"뚜뚜두…… 돔형의 구조물이 보인다. 기하학적인 대칭 구조라는 점만 확인됨. 직사각형의 기둥 발견, 수백 아니 수천이다. 밀집되어 강변을 따라 도열해 있다."

"지구인들의 가옥구조 아파트라는 것이다. 특이점을 보고하라."

"돔형의 구조물에서 지류를 끼고 달리는 오른쪽 측방, 1㎞지점, 눈보라가 발작하듯 휘몰아친다. 시계 불량. 드디어 제로. 편의상 미스트랄르 요셉으로 명명함"

"무슨 소린가. α도는 지금 여름이다."

"자끄 박사에게 보고하라. 미스트랄르 요셉의 진앙지에서 거대한 불꽃 발견, 눈보라가 발작을 일으킬수록 불꽃이 커지고 있다. 아니다. 불꽃이 눈보라를 삼키고 있다. 생명체일런지도 모른다. 직사각형 기둥의 정체를 탐색하라."

"뚜두두……. 자끄 박사의 보고문에도 신통한 게 없음. 생명체의 특징인 DNA의 자기 복제라는 규칙성과 반복이 미스트랄르 요셉의 형태로 존재한 적이 없다고 함."

"비상사태를 선포한다. 모든 승무원은 정위치로 돌아가라. 지구상에 자끄박사도 알 수 없는 괴물체 발견, 접근을 금지한다. 최고의 속력으로 지구에서 이격하라 이상."



 

*자끄 모노 ― 불란서 태생, 분자생물학,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 그리고 김요섭 시인.

필자의 너스레가 좀 심했던가? 굳이 상상의 공간을 자끄 모노와 함께 한 것은 그러나 서두에서 밝혔듯이 <시인을 찾아간다>가 시인을 창조한다라면 뿌리부터 뒤집어 놓고 볼 일 아닌가. 자끄 모노는 말했다. *우주에는 목적이 없으며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의 저서 「우연과 필연」을 매만지며 필자는 가슴속으로 전의를 가다듬고 나직이 읖조렸다. ―물질은 영원불멸한 것이다. 시작도 끝도 없는 것이다. 아아 차라리 시간의 외부에 전재(前在)하는 영원(eternal)인 것이다. 그렇게 하자. 어정쩡한 범신론에서 벗어나서 무신론으로 무장하자. 세계는 그 종결과 완성으로서 미리부터 주어져 있는 어떤 목적, 목표를 향해 진행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Apart의 현관. 회색빛 금속. 빠꼼히 쳐다보는 접안(接眼)의 눈초리에 긴장감이 돋았다. 곧 이어 노시인의 형형한 눈빛. 전의 상실. 고개를 숙이고 이리저리 돌리는 기죽은 눈빛을 맞이해 주는 것은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족자 한 폭. ―절대적 진리는 물과 같다―. 모노 박사, 시인은 범신론자인 것 같소이다. '허허 젊은이―어디선가 노자라는 늙은이의 가래침 끊는 소리― 무신론이든 범신론이든 그 무거운 개똥철학은 부리고 들어오게.'

필자는 시인의 존재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上善若水라는 글씨만 쳐다보았다.

'선생님 실례지만 붓글씨는 몇 년 정도 쓰셨습니까?"

"한 20년 될까."

아, 그래 맞다. 저 글씨체. 20년 전 필자가 서울 남산에서 본 글씨를 닮았다. 안중근 기념관에 걸려있던 중국의 장개석 총통의 글씨가 저러했다. 붓이 아니라 칼로 쓴 듯한 글씨 말이다. 그때에도 기이한 글씨체에 이끌려 오래오래 쳐다보고 있었지.

'눈은 높고 손은 낮다고 글씨에 대해서야 뭐 아는 게 있겠냐마는 첫째는 연습량, 둘째는 재능, 셋째는 인격이 아닌가 싶네."

"……"

"그 보다 자네가 글씨에 대해서 아는 것 같아서 연습하던 추사 서첩을 치워 버렸네만……"

필자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속으로 고소를 지었다. 기실은 갈필(渴筆)로 갈긴 길 장(長)자 건너편 발문으로 엎드려 있는 글씨는 추사의 것이었다. 더구나 上善若水를 다시 보았을 때 장개석의 칼과 추사의 붓이 반반씩 섞갈려 있는 것이다.

추사체―잘 모르겠다―. 그러나 때로는 만용이라고 하는 무식하고 용감한 지껄임이, 자끄 모노 식의 돌연변이라는 우연으로 대치되고 그것이 필연으로 나아갈 수 있다면, 내 기꺼이 한 수 던지리라. 추사 김정희. 여름날의 골방도 덥히지 못할 엉덩짝의 훈기를 가진 늙은이가 붓대를 잡는다. 게다가 수전증까지 걸려 덜덜덜 떨면서 간신히 휘젓는다. 꼴에 귀향살이다 자아도취형 사대광(事大狂)이다 스스로 지어내는 분기탱천으로 붓 끝에 힘을 모으다가 먹물이 뚝뚝 휘날리듯 쓴 글씨 말이다. 이것이 평소에 추사체에 대해서 가지는 필자의 졸견이다. 그러므로 그 무엇을 알겠는가. 그러나 내친김이라 했다. 추사의 글씨에서 흔히 힘을 말하지만, 힘보다는 균형이요 조화가 아닐까 . 엄격한 정제미와 기막히는 균형미야말로 자유분방하게 치달리는 힘의 뿌리로 살아, 뚝뚝 맺히면서 용트림을 하게 만드는 기반인 것이다.

"선생님께서는 서첩이나 보신다고 하시지만 제가 보기에는 일가(一家)의 풍모가 엿보이는데요"

"이 사람아 서력 20년에 일가는 무슨 그럭저럭 괴발개발이나 면했다면 다행이지 뭐"

시인은 어디까지나 겸손하시다. 글씨에 대한 졸견을 끌고 나간다는 것은 시인에 대한 실례가 될 것 같았다. 더구나 비전문가의 조심스러움까지. 그러나 한마디만 속으로 덧붙이고 있었다. 버나드 쇼는 몰리에르와 세익스피어를 반반씩 표절했더니 어느 날 유명해졌더라고. 그래서 이를 두고 노드롭 프라이가 말했다. 창조라는 것은 모방이라기보다는 차라리 표절하는 것 같다고.

그렇지 않겠는가. 서예가 김요섭의 글씨가 추사를 배웠다고 누가 추사의 글씨라고 하겠는가. 당당히 시인 김요섭의 정신 속에 용해되어 20년의 속꽃이 핀 것을. 그러므로 우리는 시력(詩曆) 반 세기의 영혼 속으로 에로스의 애인이 되어 찾아가야 하는 것이다.



 

시인 김요섭


 



 

14살에 신춘문예를 통과한 후 50년, 반세기의 시력. 당연한 몫으로 그의 고구려도 50년이며, 그가 먹어치운 악몽도 50년이며, 그의 가슴속으로 불어대던 눈보라도 50년인 것이다.

필자는 노시인의 형형한 눈빛―어둠에다 일직선으로 빛의 칼날을 뚫는다는 호랑의 눈빛이 저러하리라 싶었다.―을 바라보면서 500page나 되는 그의 자서전 「눈보라의 사상」을 뒤적거렸다.



 

1945년 38선이 그어지자 그는 외친다



 

" 조선의 기독교들이여, 만일 예수가 백만 대군을 거느리고 삼천리 강산을 쳐들어오면 분연히 일어나 예수와 맞서야 한다 ! 조선의 불교도들이여 석가가 백만대군을 거느리고 반만 년 금수강산을 쳐들어 오면 일어나 싸울 결심은 되어 있는가!"



 

또 이런 말도 준비했다



 

" 조선의 공산주의자들이여 ! 맑스가 백만대군을 거느리고 쳐들어 오면 뛰어나가 맞서 싸워야 한다!"

―상게서 p. 240에서



 

필자의 등골이 서늘했다. 약관에도 이르지 못한 그에게서 이만한 혈기가 쏟아질 때, 그것은 그의 몸 속에서 폭발하게 된 철학(=인식)만의 힘이겠는가. 누군가 말했다. 전자(電子)에도 자유의지가 있다고, 그렇다면 만주벌판의 눈보라와 저어기 성산(聖山) 백두산의 자유의지가 그의 혈맥 속에서 폭발한 것은 아니었는지.



 

이 연설에서 나는 고구려의 땅, 우리의 고토(故土) 만주 땅도 독립 새 나라의 우리 영토이어야 한다. 이를 위하여 함북의 청년들은 먼저 북간도를 찾아야 한다.

―상게서 p.242에서



 

1946년 그의 나이 스물에 대구 시립 도서관에서 책만 읽었다고 한다. 38선을 넘을 때 공포와 긴장의 악몽에 시달리면서.



 

나는 그 뒤 대구 자유극장 영화관 캄캄한 어둠 속에서 또 한 번 눈물을 흘릴 일이 있었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자 한반도의 모든 산맥에서는 공산 게릴라와 국방군의 전투가 더욱 치열해졌다. 극영화를 돌리기 전 국방부에서 제작한 영화가 영사막에서 돌아갔다. 그것은 국군의 토벌작전을 그린 영화였다. 포병들이 산을 향해 포를 쏘아 댔다. 포탄이 산중턱에 날아가 꽂힐 때마다 포염이 솟았다. 그때마다 나는 산맥이 몸을 비틀면서 신음소리를 내는 듯했다. 민족의 살 속으로 포탄이 박힌 것이다. 나는 두 눈을 감았다. 콧등이 찡해지면서 두 눈이 젖었다. 민족이니 겨레니 하는 말을 오늘날까지 많이 써왔지만 민족을 위해 눈물을 흘려본 일은 이때 밖에 없다.

―상게서 p. 434 , 밑줄 필자의 의도



 

아, 우리 말하지 말자. 가슴을 적시는 뜨거운 눈물 앞에 아무런 대책이 없을 지라도.

20년 전의 필자 또한 그러했다. 대구 제일극장. 벤허. 가장 박진감 넘치는 전차 경주의 장면. 화면을 가득 메우는 로마 군중들의 함성과 확대되어 치달리는 전차 바퀴. 정면으로 치달아 오던 전차 바퀴의 의미는 무엇이던가. 그것은 신흥 서로마 제국 미국의 문화가 고요한 동방의 나라를 짓밟아 버리던 상징은 아니었는지. 20년 후 우리들의 오늘이 어떠한가를 살펴볼 필요성이나 있는 것인지. 옆 좌석의 낯모르는 여대생은 기립 박수를 날리며 흥분하는데 필자의 눈시울은 아무런 대책이 없었다.



 

" 씁쓸하게도 시력 반 세기에 베스트 셀러 시집 하나 없구만. 미문(美文)과 감상에 애소주의는 유행가 아니겠는가. 아직까지 연애시 한 번 못 써 봤디"



 

나직한 말씀이 장서 일만 권은 됨직한 서가를 두루두루 핥아 대다가 필자의 귓전을 때린다. 소박하달까 수십 점의 골동품과 은은하게 감도는 묵향이 연무가 되어 흐른다. 이 곳에서 자끄 모노 박사의 화성인들은 눈보라에 길을 잃고 말았다. 그것은 필자의 상상력일까. 아닐 것이다. 그의 시집을 펼치면 김요섭의 시 세계는 화성보다 먼 곳에서 타오르는 우등불인 것이다.

그의 시 세계를 찾아가기 위해서 맹자의 지언(知言)을 상기하자. 맹자는 2300여 년 전 오늘날 구조주의자들의 방법론에서 말하는 소기(所記)와 능기(能記)를 발견한 바 있다. 아마도 맹자에게 이 글을 쓰게 하면 김요섭의 시 세계에 들어 있는 언어와 그 상상력의 구조를 간추릴 것이다.



 

땅의 눈물, 땅위의 별, 빛의 뿌리, 금빛의 목소리, 눈보라, 범, 백두산 대맥, 우등불, 해삼위, 고구려, 신라, 한울님, 무지개. 활, 창, 징별, 눈송이, 페치카, 북쪽, 밤, 맥(짐슴이름 맥)



 

/ 목마름, 그 목마름은 눈송이를 먹어도 // 눈보라의 백마를 타고 // 우리의 영혼이 물들일 시간이다 // 흙에서 별까지의 旅路 // 눈 속에서 모든 관계가 끊어진다는 것은 / 고독한 혁명처럼 화사스러운 것 // 악몽을 먹는 짐승 // 무쇠를 먹고 꽃을 똥으로 누는 아해 / 네 피는 달의 보석에서 우러나온 것 // 피처럼 흐르는 별빛은 밤하늘에 낸 상채기였다 // 하늘에는 권총을 찬 기러기떼 북을 향해 날고 // 나는 꿈꾼다……고구려 신라 백제 조선으로 이어지던 슬픈 이야기들 / 눈송이가 되어 향기로운 불 속에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 / 꿈은 강철보다 강하다 // 말(言語)을 켜들고 다닌 옛날 사람 // 캄캄한 허공을 향해 앞발을 들었다 / 갈기를 날리는 달빛으로 된 흰 말 // 사랑으로 쌓아놓은 것은 길이 빛으로 살게 될 뿐이다. / 이승에서 저승으로 / 저승에서 이승으로 / 넘나들 수 있는 빛으로



 

이상은 김요섭의 시집 「빛의 뿌리」와 「맥(짐승이름 맥)」에서 무작위에 가깝게 추려본 것들이다.

우리는 그의 시어(詩語)가 스스로의 말처럼 눈물과 사랑 타령의 반대편에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일상적 공간에서 초월적 공간으로, 서사적 시간에서 非서사적 시간 속으로 그리하여 시간의 존재 밖까지 넘나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환상이 주는 몽환적 달콤함에 머무르는 법이 없다는 것은 그의 시 세계가 동적인 힘의 구조 속에 자리잡는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1948년 대구에서 쓴 「햇빛을 부시며 달리는 눈보라」라는 제명에서 보여주는 역동성이 40년이 지난 최근의 시에까지 일관되게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추구하는 세계는 무엇이며 50년 시력의 뿌리는 무엇인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① 그는 악몽을 먹고 자란다는 맥(짐슴이름 맥)이라는 짐승의 얘기를 자주한다. 꿈과의 연장선에 놓인다. ② 백두산족들이 바깥에서 큰 나무둥치를 태우는 모닥불=우등불을 줄겨 소재로 삼는다. ③ 다음으로 그의 대표작이라 할 만한 장편 서사시―원고지 250매에 가깝다―에서 고구려의 바보 온달과 평강공주가 그려져 있다. ④ 그의 국토관이라기보다는 땅관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고구려의 성벽은 고구려의 살갗이라는 표현에서 하늘=땅, 사람=흙, 국토=살갗 등이 확인된다. 그의 국토에 대한 애정은 포성을 듣고 살갗이 찢어지는 아픔을 느낄 만큼 스스로의 인체와 동일시되는 대상이며 하늘인 것이다.

요약하면 김요섭 그는 새로운 신화를 창조하여, 조국의 가슴 속에 영원히 타오르는 빛의 뿌리 즉 우등불이고자 하는 것이다. 그 우등불=詩는 분단된 조국과 만주벌판까지 밝히는 우등불이 될 때까지 악몽 속에서 처절히 울고 싶은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의 시의 출발점이자 상상력의 근원은 백두산이라는 것을 쉽게 포착할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눈보라는 백두산으로 귀결되며 그곳이 하얀 불꽃으로 타오를 때에 잃어버린 땅 만주벌판까지 불 밝힐 수 있는 것이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김요섭이라는 이름이 주는 시인에 대한 선입관은 불필요해지는 것이다. 그의 神은 예수이기 이전에 백두산인 것이다. 백두산이야말로 스스로를 실현시키는 고귀한 사유로서 존재하며, 그 성스러움이 빛부시게 김요섭의 가슴속으로 치달리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김요섭 시인이 시작노트를 보면서 저것은 몸부림이다, 50년 간의 빛부심이라고 생각했다. 황하에 이르지 못하면 죽어도 쉬지 않겠다(不到黃河死不休)라는 말이 있다. 김요섭 시인의 상상력과 그 정신의 역동성이 그러할 것이다.

끝으로 시인의 작품은 길이가 길수록, 서사성이 강할수록, 시간과 공간이 확대되어 존재할수록 시적 긴장이 더 팽팽하다는 것을 알았다. 시인의 작품은 짧은 시보다 긴 시가 좋다는 말이다. 이것은 무엇 때문일까? 또 그의 장시를 읽으면 어느덧 장쾌해지는 것이다.

생각해 보라―눈보라의 사상을. 눈보라가 밀폐된 공간에서 어울리겠는가. 좁은 형식으로 넓은 내용을 담을 수 있겠는가. 어디까지나 눈보라는 대륙을 거느릴 때에 울부짖을 수 있는 것이다. 덧붙여 그의 서사시 '푸른 흙의 戀歌'는 재조명했으면 한다. 최근 10여 년 간 우리 시단은 졸부의식이 횡행했었다. 졸부의식이란 투기성, 경박성, 일확천금 등으로 대표할 수 있을 것이다. 시단에 비유하면 잘못 짚은 시대를 핑계삼거나, 매스컴에 기대는 등으로 화려한 각광을 받는 경우이다. 우리는 그러한 시인들을 또 유명한 시인들을 너무나 많이 알고 있다. 대개의 경우 그들의 작품은 유행가 가사에도 못 미치는 작품성이라고 혹평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며, 또 이들의 폐해는 극심하다. 우리 문단에 암적인 존재인 것이다.

상기한 졸부시인들에 대한 반성과 문단의 제 자리 매김의 차원에서도 김요섭 시인에 대한 집중적 조명은 절실하다고 생각했다면, 필자의 졸견이겠는가?



 



 

'자끄 모노 박사, 당신에게 이 우주는 아무런 목적이 없이 존재하겠지만, 우리에게는 백두산이 있습디. 백두산만이 신의 이름으로 존재하는 목적이디. 똑똑히 기록해서 화성으로 돌아가게.



 

―백두산은

눈보라를 태우면서

높아진다는 것을―.



 

고구려 모든 바위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꿈꾼다.



 

고구려 사람들의 눈물이 돌과 돌 사이에는

고구려 사람들의 한숨이 돌과 돌 사이에는

고구려 사람들의 소망이 돌과 돌 사이에는 돌과 돌이 서로 껴안고 있다

돌과 사람이 서로 껴안고 있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 껴안고 있는

고구려의 성벽은

고구려의 살갗



 

― 푸른 흙의 연가 중에서


*기술한다(décrire)와 설명한다(expliquer) ; 프랑스 예비 대학생들을 위해 저술하였다는 <철학강의 1, 2>의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였다. 지금 읽으니 오역인 듯하다. 기술하다는 설명하다, 설명하다는 해석하다로 번역해야 할 듯하다. 그래서 괄호 속에 넣는다.

*자끄 모노(1910-1976 Jacques Lucien Monod) : 프랑스의 과학자이다. 자크 모노라고 하기도 한다. 그는 노벨상을 받았으며 생물학과 화학을 결합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가 쓴 <우연과 필연>은 분자생물학에 관한 학술 서적이지만 프랑스에서는 대중적 인기를 얻어 베스트셀러로 팔렸다. 그는 실존주의의 영향을 받은 과학자로서 우주에는 신의 목적 따위는 없다고 하였다. 수억 종의 생명체를 이루는 DNA의 구성 요소는 아미노산 잔기 20개이다. 20개의 알파벳을 생각해 보라. 조합에 따라 수억 종이 될 수 있다. 이 20개가 우연적인 결합으로 생명체가 이루어진다. 생명체의 고유한 속성도 20개의 기본 요소의 결합 때문이다. 이 우연으로 개체가 이루어지면 DNA의 자기복제라는 필연으로 개체의 영속성이 지켜진다고 하였다. 그래서 책 제목이 <우연과 필연>이다. 이 책에서 그는 필연, 본질, 신의 목적 등보다는 우연, 돌연변이, 실존, 인간의 주체성 등을 강조하였다. 특히 서문의 끝 부분에 베르그송에게 던진 멘트가 인상적이어서 이 글에 인용하였다.

베르그송 그대에게는 이 우주에 목적이 있겠지만 나는 그 어떤 목적도 발견할 수 없다.

베르그송은 당대의 천재 철학자로서 프랑스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었다. 그는 카톨릭 신자로서 우주가 신의 뜻에 따라 창조되었으며 신의 목적을 구현한다는 믿음을 피력하였다. 베르그송은 청소년기에 프랑스의 가장 권위 있는 수학 경시대회에서 연거푸 우승하여 프랑스인의 사랑이 절정에 달하였다. 그가 군입대를 선언하자, 프랑스인들이 그의 집 앞에서 군에 가지 말라고 데모를 하였다고 한다. 천재 베르그송이여, 그대의 두뇌를 인류를 위해 헌신해 다오, 뭐 이런 데모였다고 한다. 자끄 모노가 질투심을 느꼈는지 모르나 베르그송은 노밸상을 타지도 못하였고 크게 주목받지 못하는 철학자로 생을 마치었다. 이 글을 쓸 때에 나는 자끄 모노의 <우연과 필연>을 읽고 있었다. 김요섭 시인은 기독교 신자임이 분명함에도 예수보다는 한 평생 백두산을 기리다 영면하였다. 그의 시와 그가 살았던 시기를 고려하면 그의 시는 위험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투옥 등의 억압을 받지는 않았다.
민족주의를 AIDS처럼 혐오하는 임지현 교수류와 같이 머리가 나쁘지는 않았다고 본다.


 

후기 : 김요섭 시인의 거처는 비바람 몰아치는 곳이 아니라 서울 강남의 미도아파트였다. 이 아파트는 지금의 타워팰리스 등이 세워지기 전에 최고급 아파트 중의 하나였다. 그리고 그의 지어미(wife)는 이화여자대학교 교수인 김영희였다. 이 분은 나에게 일본어를 배우라 하였다. 그로부터 수년 후 조선일보에서 만엽집 어쩌고 하는 연재를 하였다. 이곳에서 그가 꿈 꾼 것은 백두산의 눈보라였다. 무엇이 그를 평생토록 절규하게 하였을까.
김요섭 시인은 왜 민족주의로 빠졌을까. 지금 독자들이 시시해 하는 생각 속으로. 미국이 싫어한다는 민족주의. nationalism은 민족주의와 국가주의의 의미란다. 미국은 국가주의라고만 생각하는데 우리는 민족주의라고만 번역한다. 그리고 미국이 미국 외의 나라에 민족주의를 버리라 한다고 말하면서 진보적인 체한다. 아니다, 미국은 nationalism을 버리라고 말한다. 한국의 국가주의를 왜 미국이 버리라 말라 하는가. 미국은 핵무기를 가져도 너희들은 가지면 안 돼 이런 식으로 이해해도 되는가. 미국의 국가주의는 그 어떤 종교보다 강하다. 초중고 학교의 교실에 성조기를 펄럭이게 하면서 강의한다. 예수도 예외가 아니다. 그래서 미국의 길거리에서 기독교를 믿으라고 하면 체포한단다. 종교의 우위에 있는 것은 국가다. 미합중국의 단결을 와해하는 것이 무엇인가. 학문, 종교, 문화, 단체, 그 무엇이건 작살낸다. 겉으로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다양성의 나라라고 하면서.
6.25 전쟁 때 김요섭은 미국이 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그걸 말하고 싶어 했었다.  

 
    1. 파우스트 2009/11/30 19:03 

      월요일만 되면 나를 찾아 오는 예의 그 자칭 선배이자 후배인 서아무개라는 자 때문에 오늘은 월 마감일에도 불구하고 낮술을 한잔 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선생님의 글을 읽고 편향된 느낌이 든다고 해서 내가 좀 나무랬습니다.
      범부의 입장에서 봤을 때 선생님은 분명 편향되었음에 분명합니다.
      그런데 송빠인 제 입장에서는 단호히 그 입장을 부인했습니다.
      [니가 편향되었기 때문에 그의 글이 그렇게 보인 것이다]
      [선생님은 고집은 좀 셀 지 모르겠는데 마음에 없는 말씀을 하시는 분은 아니다]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닌 것이 시인이 세상에 대고 하는 말씀이다]
      [너 필부가 세상을 알면 얼마나 안다고 올 곧은 말씀에 대고 가타부타 하는 것이냐]
      한참 꾸짖었습니다.
      [너는 글의 힘을 느껴 본 적이 있느냐]
      [비수를 몇번 맞아보면 확실히 안다. 멋 모르고 덤비면 디진다. 너도 공부 좀 더하고 다시 읽어봐라]
      [덕담 몇마디 나눈다고 될 것 같으면 나는 예수하고 동기동창이다. 킹 제임스 텍스트 원문으로 몇번 읽어 봤는데 나는 영문텍스트 shall의 번역도 정확하게 했다. 전부 화자의 의지를 이야기하던 내용이더라. 그런데 아무런 감흥도 없더라]
      김주대 시인하고 동갑인 나의 예전 직장 선배이자 이제는 후배인 서 아무개는 경영학을 전공한 자입니다. 통합이전 한솔PCS에서는 전국단위 노조위원장이었던 그는 노사협의회때 사장한테 '당신이 할 일은 회사의 주가관리인데 어쩌구...' 나무라던 입장이었는데 저번 이번 KTF 노조위원장 선거에서는 줄줄이 떨어져 지금은 거의 회사백수 비슷합니다.
      그런데요, 선생님. 글이란 것도 중독성이 있는 모양입니다.
      예전 제 애인은 알콜이 그렇다고 했지만 지금 보니 선생님의 글이 '아프로디시악'입니다.
      풍경님이 말씀하신대로의 시가 아니더라도 선생님 글의 힘이란 제가 익히 느껴봤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끝장을 보여주시는 것이잖습니까.
      솔직히 저는 시를 모릅니다. 그리고 사실 그렇게 알고 싶은 생각도 별로 없습니다.

      • 파우스트 2009/11/30 19:06 

        들려주시는 말씀 주워듣고 새기기는 합니다만, 지나가시는 님의 글처럼 백과사전을 펼쳐야 겨우 뜻이나 이해하는 수준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파우스트는 결국 그 구원도 얼마 못가 별볼일이 없어지고 불만족에 빠질 인간이란 정도만 압니다. 인간이란 대충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결국 하느님의 구원도 완전한 만족을 구현하지는 못할 것을 압니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잘못이 없다’고 한 이야기를 들었는데요, 그냥 선생님 그늘에서 몇마디 주워듣고 생각 한번 해보고 그래 살랍니다.
        바둑 배울 때 후배 사부 왈 '형은 열심히는 하는데 棋才가 없는 것 같아'라는 평의 충격이 지금도 되살아 납니다. 부끄럽습니다.ㅠㅠ

        •  2009/11/30 20:03

          파우스트님
          바둑이 1급이라는 걸 알고 놀랐는데요. 범재는 1급 못 따지요. 나는 자칭 2급인데 사이보오로에서 2판 두어 2판 모두 졌었지요. 사이버오로 드나든지 5년은 넘었는데 아직도 2판만 두었습니다. ㅎㅎ
          바둑 같은 기예는 익힐 나이가 있을 터인데 나이 들어 1급이면 기재가 출중한 것이지 <형은 기재가 없어......> 이런 말을 어떻게 할 수 있는지, 거 참 덕과는 거리가 있는 친구로군요.

          또 편향되었다는 판단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를 때 쓰는 막연한 상투어인지라,
          객관적인 진리란 세상에는 없고,
          정보의 입력이 50인 사람이 100인 사람을 보고 편향적이라고 말하기 십상이니 이런 의미에서 편향적이라면 편향적이지 않는 사람이 없다고 볼 수 있지요. 편향적이라는 말은 그 말을 하는 당사자가 이해를 못하고 있다라는 자기 고백에 가깝습니다.

          아들과 딸이 나에게 편향적이라고 하면 너희들이 나보다 공부를 더 많이 한 후에 이런 생각은 이런 점 때문에 올바른 판단에서 치우친 것 같은데 왜 그렇습니까라고 해야지, 나보다 너희들은 아직 공부를 적게 했잖아. 그러므로 편향적이라는 판단을 내릴 수 없는 거야라고 말해 줍니다.
          물론 내 생각의 부족함으로 빚어지는 편향성은 그 부분을 정확히 지적하지 못하는 나의 무지 탓이지. 그 무지는 너희들도 공유하고 있잖아.

          편향성을 지배하는 요인 중에는 감성적 요소나 상황 즉 처지의 불일치라는 요소도 있지요. 이 역시 편향적이다라고 말하고 입을 쓱 닥으면서 꼬리수염을 쓰다듬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래서
          나는 섹시하다라든가, 정운찬처럼 나는 천재다라고 말하지 않는 것, 이것마저 대단한 내공을 필요로 합니다. 언어철학자의 책을 여러 권 읽고 아하 이런 말은 명제가 될 수 없구나, 이 정도 이해하는 사람은 아마츄어 바둑에서 거의 1급 수준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요즈음은 다른 것에 걱정이 앞서는데요.
          생계가 막막하고
          박가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어디로 피신을 해야 되는지
          차라리 감옥에 갇히는 것이 신변의 위험에서 벗어나는 것인지
          하여간 무사히 넘기기는 어려울 것 같아서 걱정이거든요.
          안 두렵다는 생각이란 자위에 불과하고
          비합리성이 지배하는 박가 추종자들의 처리방식 때문에 지금 무엇을 해야할지 궁리가 서지 않습니다.

      • 파우스트 2009/11/30 20:21 

        오늘은 돌아가신 아버지 기일이어서 조금 일찍 갑니다.
        제대하고 공부해서 대학교 원서 내시는 날 돌아가셨는데요, 솔직히 마음속으로는 '왜 하필 오늘 돌아가셨는냐'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초상 치르고 삼오제 치르고 나니까 시험이 내일 모래 더군요.
        예정대로 그해는 떨어졌습니다. 인간의 이기심이란 것이 그렇게도 작용하나 봅니다. 지나가다님이 늘 말씀하시는 '인간의 욕망과 무지'...
        수학 50문제를 한문제당 2분안에 풀어야 되는데, 그게 감을 잃어 버리면 기계적으로 풀 수 없었거든요. 신림 4거리 여관에서 잠을 이룰 수 없었던 시험전야, 8시 반까지 입실을 해야하는데 밤새 뒤척이다가 일어나니까 8시 40분이더군요. 요새 흔히 나오는 입실직전 경찰 오토바이타고 붕하고 오는... 제가 그걸 해봤습니다. 조선일보가 찌라시이지만 걸어가면서 인터뷰 청하길래 늦었다고 하니까 제일 나중에 오는 수험생 보고 걱정하지 말라고 하면서 시험장에 넣어주더군요.
        시험 끝나고 그날 영등포가서 술 엄청 먹었습니다.
        오늘 저녁은 우리 아부지 때문에 또 한잔 할 것 같습니다.
        박가 나부랭이들 뭐라하면 저 부르십시오. 제가 딴 거는 몰라도 몸빵하나는 잘 합니다.
        지역사회에 아는 놈들도 좀 있구요. 제 아내 신조가 '눈에는 눈, 이에는 이'입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건강하세요...

        • 풍경과 시 2009/12/01 01:39 

          다시 와서 열씨미 일고 감상문을 올려야겟습니다. 독자의 가독성을 계획적으로 방해하는 그런 글은 아닌 정말 쓰다 보니까 도대체 남이 모를 수도 있는 어떤 다른 세계 없었던 세계를 만들고 싶은 맘 살짝 생겼습니다. 그래서 언어를 들고 강가에 가서 술마시다 보니까 이건 아무것도 아닌 그냥 술꾼 딱 그거였습니다. 어제 오늘 아 그런데 이미 내일이 되어버렸습니다. 열두시 넘었잖아요. 이거 참 고들빼기님의 품 속에서 헤엄치다가 한 대 맞고 정신 차리고 보니 또 그 품....그런 기분...그 이모를 다른 엄마라고 한 촌 의사를 고들빼기님이 나무라셨죠...다 봤어요...그거 참 저는 이모를 다른 엄마라고는 생각지 않았지만 한자로 이 자를 생각해 보지는 않았어요.. .역시 고들빼기님이구나 그랫지묘
          저 술 처먹어서 타자가 잘 안됩니다. 안 고치고 그내아마 막 올립니니다.
          하여튼요 여기 지나가다님 파우스트님 고들빼기님 정말 먹물은 확실합니다. 저도 조금 먹물이면서 그걸 싫어했늗데 먹물이 멋진 걸 알았죠 나이 조끔 들어서요.
          제가 그 오토바이 보고 고들빼기님 생각한 거는요 낡았다 소외됐다 이런 거 아니고요.
          저거 참 쇠. 강철 이거 참 변화무쌍한 존재다 그런 거 생각했어요 반질반질한 강철 보다 녹슨 그거 참 무거워 보이고 내용있어 보이고 멋있어 보이는 그런거 있잖습니까.
          천자문도 못 뗀 미천한 놈이 좀 중얼거립니다. 물론 지나친 겸손은 무례와 통하기도 하겠지만 정말 모르는 걸요

          아이고 다 쓰고 보니 고들빼기님 댓글에 박가 얘기가 나오네요...박가 주변 애들 거의 미친놈 수준이잖아요..지금은 그게 좀 통용될지 몰라도 앞으로는 절대 아닙니다. 큰소리만 쳐서 될일은 아니지만 느낌이 그렇습니다.

          •  2009/12/01 01:37

            술에 취해도 모든 글이 시인데요.
            언어를 들고 강가로 갔다는 이런 표현 역시 시인이 아니고서는 나올 수 없지요.
            푸르나님 블로그에 갔다가 <예인선> 보다가 울고서는 청도 운문사, 경주의 바닷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할 수 있는지
            요즘 어떤 안 좋음이 있는지 생각하다가
            행복하게 잘 살리라 그렇게 멋대로 단정 내리고 다시 고들빼기로 돌아왔더니
            풍경과 시님이 딱 버틴 듯이 지나갔었네요.
            <시골의사 박 아무개>라는 멋진 닉으로 KBS 라디오 문학 평론에까지 나오면서 姨母를 다른 엄마(異母)라 하기에 웃다가 자동차 사고 낼 번 했거든요. 그때 자동차 몰면서 방송 들었어요.
            시간 지나고 보니까 남의 흠집 잡는 글을 올리는 내 모습이 싫고 남의 실수를 빌미 삼으면서 한문 자랑하는 내가 미워서 지워 버렸지요.
            오트바이 시는 고들빼기 아무개를 염두에 두지 않아도 너무 좋은 시였어요.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의 이방원이
            이몸이 죽고 죽어 골백번 죽고 죽어의 정몽주보다
            시인으로서 이미 이겨 버렸다는 김용직선생님 말씀이 생각나네요.
            이제 겨울의 계절 12월이군요.
            풍경과 시님은 멋진 시를 쓰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