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사랑방

자객 열전 - 史記 권 86 + α 이형기 시인

여성국장 2012. 7. 28. 23:36

 

 

이형기


▣ 시인의 약력



 

1933, 경남 진주 출생

1950 고교 재학중 시 추천 완료 - 진주농림학교, 「문예」

1955 동국대 불교과 졸업

1963 첫 시집 『적막강산』상재. 그 후 시집 6권, 평론집 『감성의 논리(76)』외 2권

1986 박목월 평전 『자하산 청노루』

1991 『현대시 창작 교실』(문학과 지성사)

현재 동국대 교수



 



 



 



 

자객 열전

― 史記 권 86 + α



 



 

XXX(시인)



 

적막 강산.

비가 내리고 있는 것도 아니련만. 잔뜩 흐린 겨울산 한줄기만 늙은 바람기를 보내고 또 보내고 있었다. 무엇인가. 시작도 끝도 없는 이 산자락만 밟고 있게 만드는 4·19 탑이며, 수유리라는 지명하며.

시인은 반쯤 눈을 내리 감고 있었다. 가타부타 한 마디 말씀도 없는 거였다. 이렇게 답답할 수가. 실마리가 보여야 매듭을 풀지. 아득한 곳에 물러 앉아 우는 적막강산. 시인은 지척이 천리라는 것을 보여주듯 무덤덤하게 정좌(正坐)하고는 방심무한(放心無限) 비가 젖는 산(山)이었다.

허허로운 눈빛, 이미 모든 것을 알아버린 듯한 태연한 몸가짐. 이조 백자 속에 비오는 날의 수채화를 그린다. 그 속에 낚싯대를 드리운 무심한 은자(隱者) 앞에서 펜과 노트를 들고 말을 걸고 있는 것이다. 낭패였다. 아아 때에 따라 바람소리도 편안하면 견딜 수 없는 것이다.

"저 선생님, 애송시를 가진 시인은 행복하다고 할 수 있겠지요. 선생님의 시 낙화를 저도 무척 좋아하는데요"

"글쎄 글쎄, 시답잖은 것을, 아마도 아마추어 수준의 연질의 서정시겠지요."

머쓱해지고 말았다. 시인을 슬며시 비켜서면서 저만치 물러앉아 버린다.

"선생님이 시 낙화에서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하는 부분을 두고 역사적 상황과 동일시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즉 독재정치의 장기집권과 기묘하게 맞아떨어지지 않습니까"

"뭐 생각하는 것은 자유겠지요"

"혹시 이승만, 박정희 등의 장기집권을 염두에 두고 쓰신 것은 아닌지요"

"천만에, 그 시를 쓸 때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어요. 그보다는 내 시 중에서 수준이 낮은 것인데 자꾸 들먹이니 거 참―"

수준이 낮은 거다. 탐방자 자네도 아마추어 수준이다. 이조백자 속의 은자는 이쪽의 칼날을 슬쩍 비켜서는 것으로 손을 탁탁 털어버리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다시 낚시대를 던지며 무심공간에 눈길을 던지는 것이다. 낭패 아닌가. 또 다시 적막강산에 비내리고……. 어디선가 아득한 산 그림자, 밀물소리, 바람소리. 필자도 어느덧 현미경 속으로 흘러가는 그리움의 숨결소리 같은 빗소리의 환청에 젖어들고 있었다.



 

적막강산에 비 내린다

늙은 바람기

먼 산 변두리를 슬며시 돌아서

저문 창가에 머물 때

저버린 일상

으슥한 평면에

가늘고 차운 것이 비처럼 내린다

……

지금은 누구나

가진 것 하나하나 내놓아야 할 때

풍경은 정좌하고

산은 멀리 물러앉아 우는데

나를 에워싼 적막강산

그저 이렇게 비 속에 저문다



 

― 이형기 <비> 중에서



 

산은 조용히 비에 젖고 있다

밑도 끝도 없이 내리는 가을비

가을비 속에 鎭座한 무게를

그 누구도 가늠하지 못한다

표정은 뿌연 시야에 가리우고

다만 윤곽만을 드러낸 산

천 년 또는 그 이상의 세월이

오후 한 때 가을비에 젖는다

이 심연 같은 적막에 싸여

조는 둥 마는 둥

아마도 반쯤 눈을 감고

旅心無限 비에 젖는 산

그 옛날의 격노의 기억은 간데없다

……

‥‥



 

― 이형기 <산> 중에서



 

그의 시는 서정시가 가지는 격정의 밀도가 발견되지 않는다. 심장을 깊이 찌르면서 코허리를 찡하게 만들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의 서정시는 독특한 경지를 확보하고 있다. 그래서 시인 조창환은 「젊은 시절 벌써 원숙한 서정적 아름다움의 영역을 개척하였다」라고 말한다. 필자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들이 조숙한 천재라고 말할 때에 가지는 선입견과는 전혀 다른 천재성이 보이는 것이다. 즉 「정서의 천재」라는 것이다. 여기서 정서의 천재라는 말은 필자가 만든 말로서 이퇴계와 이율곡의 예를 들어 설명하고자 한다. 퇴계와 율곡의 생애는 많은 점에서 대조되는 삶을 살았다. 젊은 날의 초상까지 그러하다. 아마도 그 둘이 오늘날 똑같이 대학입학시험을 보았다면 율곡은 서울대 수석을 몇 번 했다고 할 수 있지만, 퇴계의 경우에는 낙방하여 몇 번이나 재수를 하든가 지방대학에 응시를 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두 사람의 과거시험 합격기를 가지고 유추한 것이므로 후손들은 흥분하지 말았으면 한다. 둘은 시에서도 그러하다. 율곡이 8살에 썼다는 화석정(花石亭)은 대구(對句)의 기발함이 후학들을 깜짝 놀라게 만든다. 역시 천재라는 거다. 그러나 퇴계가 젊은 날에 쓴 시들에서는 그러한 천재성이 보이지 않는다. 그 대신 정관(靜觀)의 도(道)를 알 수 있는 것이다. 즉 그는 10대 20대에 오십이나 육십 대에 가지는 정서적 완숙함과 안정감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아마 요즈음의 바둑 천재 이창호의 기다림을 생각하면 될 것이다. 필자는 편의상 「학습에 관한 천재」에 대신하여 「정서의 천재」라는 표현을 빌리고자 한다. 탐방자를 끝까지 당혹스럽게 만든 것은 이형기 시인이 가지고 있는 기다림의 정력(定力)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점은 그 후에 그의시를 읽으면서 확신을 가진 것이기도 하다.

여기서 독자들은 필자가 잠시 옆 길로 빠지는 것을 이해해 준다면 몇 마디 하고 싶다. 흔히 퇴계 선생하면 우리나라를 팔아먹은 양반 문화 어쩌고 하는 궤변이 있다. 양키물이나 먹은 유학생들, 아니면 얼치기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맥락에서 나온 말일 게다. 이런 자들에게 들려줄 말을 논어에서 찾아보자. 통이불원 오부지지의(侗而不愿 五不知之矣)―무식하고 용감한 놈들을 우짜면 좋을꼬.― 하는 공자의 탄식 말이다. 심지어 식자들 중에는 다도(茶道)나 분재(盆栽)까지 일본에서 왔으니 주체성이니 하는데 말이다. 무식하면 방자(狂)하지나 말아야지. 에이 그만두지 뭐.



 

하여간 이형기 시인의 시세계로 되돌아가자. 필자는 그 뭐더라. 이조백자 속의 은자, 아니 자객(刺客) 얘기까지 했것다.

"선생님의 고향은 진주인 걸로 알고 잇는데요. 저도 한 1년 살았습니다."

"그래에……"

"망향에 관한 소견은 없습니까?"

"뭐 고향이란 누구에게나 다 좋는 것이니까, 꼭 같은 거지 뭐……"

진주, 그 곳은 경상도 상층 문화의 한 표상이기도 한 곳이다. 진주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녔다. 그런데도 시인은 흔히들 그러하듯 고향 얘기 뒤에 오는 야릇한 쾌감같은 들뜸까지 보이지 않았다. 그 날은 매사가 이러했다. 무엇을 탐방한단 말인가. 내친 걸음 바싹 다가 앉았다. 가벼운 잽을 날리면서.

"선생님께선 국문과를 졸업…"

말이 짤렸다. 비로소 짤라주는 거였다.

"아니네 이 사람아. 불교학과를 다녔어. 불교는 사물과 세계의 이해에 대한 특이한 방식을 가르쳐 주지."

불교. 특이한 방식. 이럴 때는 필자의 가슴에 피가 흥건히 흐르고 있었다고 말하고 싶다. 이미 자객의 칼에 K.O. 당한 것이다.

불교는 방식이다. ― 조작개념(notion operatoire)이라고, 기껏해야. 난생 처음 듣는 얘기이면서 이보다 더 정확할 수 있는가. 필자같은 우둔한 놈에게 불교는 그 방대한 전적이 떠오르고, 2500년의 향불 연기와 범패소리가 들리고 그리고 열반이다 깨달음이다 하는 그 야릇한 미로가 생각나서 호흡까지 가빠지지 않던가. 그런데 기껏해야 notion operatoire라고 한다. 오뻬라뚜아르, 오뻬라뚜아르. 아 아 한 방 먹은 것이다.

그랬다. 율곡은 격몽요결 첫 머리에서. 초학자는 모름지기 성인이 되겠다고 굳게 결심하고 책을 보라고 ―初學先須立志必以聖人自期―. 그래서 젊은 날의 필자도 흉내내기를 즐겨했다. 예수, 석가, 공자 야 임마들아 3:1로 붙어라. 그렇게 젊은 가슴을 불태우며 밤을 새웠다. 그런데 기껏 詩人이다. 그것도 데뷔한 지 5년이나 되었으나 아무도 몰라주는 문단의 말석에 이름도 없는, 생각해 보자. 내 언제 불교를 조작개념쯤으로 치부하는 보폭 큰 걸음이 있었던가. 아아 뱁새 다리로는 황새를 따라잡을 수 없는 것일까.

탐방자는 위좌(危坐)하여 고개를 낮추고 눈빛을 죽였다. 시인은 이윽고 입을 연 것이다. 나직나직, 적막강산 비 내리듯 일정한 호흡으로.

"시인이란 혼자 당수이지. 자기가 최고이지, 그래서 모든 시인들이 자기가 쓴 시가 최고라고들 생각할 거야."

"뭐 팔자라고 봐야지. 축구 구경 생각해 봐. 돈이 생기나 뭐가 생겨. 그런데도 2시간이나 앉아 있는 거야. 문학이 그거야. 그거 팔자라고 생각하면 돼. 시 쓰지 말라고 해 봐. 그래도 시인은 어디선가 시를 쓰고 있을 거야."

"인문학이란 본질적으로 취미에서 시작하는 거야. 종교야 그렇겠지 사명감에서 하겠지. 이봐 이거 재미있지 않아. 시(詩)는 본질적으로 구축해 놓은 가치를 허무화(虛無化)시키는 작업 아니겠어" "시 속에 절대적 가치란 없어. 자꾸 다른 곳으로 가는 팔자를 타고 난 놈들이 시인이야. 그 점에서 Platon이 머리가 좋은 사람이야. 그 사람의 시인론 말이야. 정곡을 찔렀어. 그 무엇이건 전적으로 수용하지 않으려는 정신의 자유 말이다."

이조백자 속의 자객은 삿갓을 푹 눌러 쓰고 내방객을 되돌아 보지도 않는 그림을 상상해 보았는가. 그는 묘묘한 강심(江心)에 태허(太虛)의 눈길을 모두고 낚싯대만 당겼다 던지고 또 당기는 것이다. 그리고 내방객에게 월척 한 마리씩 척척 떠안기는 것이다. 찌가 움직이고 또 잉어 한 마리. 이크. 필자의 몸에서도 생선 비린내가 스며들고 적막강산 아득한 심연 속에 빗소리가 들렸다 잦아지는데―.



 



 

"시가? 잘 안 될 때가 있지. 40년을 쓰면서 많이도 그랬지. 난 冊을 읽었어. 책을. 경험에다 의미를 부여하는 능력, 그 에너지는 책에서 나오는 거야."

역시 그렇군요. 너무 동감이었다. ― 필자의 생각과 , 행동과 경험을 높이 사는 놈을 필자는 멸시까지 하는 편이다. 그러나 자객은 무심공간 낚싯대를 던지고 또 말이 없는 거였다. 이윽고 찌가 움직이고―.

"뭐 굳이 소속될 필요가 있겠어. 없는 게 좋은 거야. 문학단체가 관변단체화 하는 데는 우리 나라밖에 없어. 있잖아 왜. 좁쌀 석 되만 있어도 처가살이 안한다고. 그저 작은 문학 집단, 예들 들어 동인 같은 것만 있으면 되겠지"

"정치와 반대야. 모이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고 생각해. 모이면 결국 개성의 날카로움이 깎여 나가는 거야."

적막강산 빗소리를 들으며 챙긴 월척도 어느덧 한 소쿠리가 넘는 거였다. 아득한 공간 속으로 아득한 시간 속으로 잘 생긴 시인의 옆모습을 바라보며 문득 史記를 쓴 사마천이 떠올랐다. 긴 얼굴, 표정 없는 무심함의 날카로움과 허숙함. 아아 늙은 자객(刺客)이 뜻을 이루고 江湖에 몸을 숨길 때의 시니컬한 얼굴이 저러하리라.



 


 

太史公이 말한다.

……조말에서 형가까지의 다섯 사람의 자객은 그 의협심이 혹 이루어지고 혹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러나 그 뜻을 세움이 바르고 환했다. 스스로의 뜻을 속이지 않아 후세에 그 이름을 드리웠다. 어찌 망령되다 할 수 있으랴.

― 사마천의 사기 권86, 자객열전 중에서



 

"그렇잖아? 보들레르, 릴케, 두보 평생 혼자 돌아다닌 놈들이야"

필자는 '선생님처럼 자객처럼' 이란 말이 뱃구레에서 밀려나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시인은 사진을 찍기 위해 4·19탑까지 가자는 제의에 동의해 주었다. 훤칠하고 분위기 있는 베레모의 조용한 걸음걸이. 다사롭게 맑은 눈동자의 조용한 우수. 그에게서 자객의 이미지를 찾아낸다는 것이 실례가 된다면 다음의 시편들을 보자.



 

암살은 틀림없이 감행되었다

물증보다도 확실한 심증

심증보다도 더욱 확실한 것은

저 상현의 달이다



 

자객이 누구냐고 묻는가

피살자가 누구냐고 묻는가

보라 저기 저 고산 만년설에 꽂혀 있는

한 자루 비수

대답은 이미 소용없는 시간이다

눈물은 과거의 인류가 모두 흘리고

지금 남아 있는 것은

다만 이 첨예한 겨울 나의 노래

소리 없는 외마디 소리의 스티카토



 

드디어 밤은 절명한다

그렇다 밤은

죽지 않으면 다시 살아날 수 없다



 

往生하라 死者여

너를 축복하는 一片의 이미지

자객의 눈초리는 복면 속에서 빛나고 있다



 

― 이형기 <첨예한 달> 全文



 

詩는 쉽다. 달=비수=외마디 소리의 스티카토=一片의 이미지=자객의 눈초리로 이어진다. 그것은 암살자와 피살자를 연상시키고 죽었다 다시 살아나는 시간의 성격을 말해준다. 이 공간에서 달이 자객으로 등장한 것이다. 또 그의 시 「칼을 간다, 보자, ……칼을 간다 / 칼을 갈 듯 그 눈을 간다 / 이따금 날을 비춰보는 달빛 / 가을을 간다 여기서는 이형기의 달빛은 가을이라는 계절을 갈아대는 칼날로서의 달빛이다. 물론 섬찟하다.

그러나 필자가 이형기 시인의 상기한 시를 통해서 자객(刺客)이라는 이미지를 찾아낸 것은 아니다. 그는 자신을 노리는 자객인 것이다. 즉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라(逢佛殺佛)는 말 그대로 기존의 사고방식을 모두 뒤엎어 버리는 새로움의 장 속에서 몸부림치는 자아의 자객인 것이다. 이것을 평론가 김준오(金峻五)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 철저한 자기 해체를 통해서만 도달되는 꿈을 위해서 바늘과 칼이 필요했다. 즉 고통이 필요했다.―

시인은 4·19 탑을 등에 지고 편안한 포즈를 취해 주었고 필자는 카메라를 들이댔다. 4·19탑이라 하지만 4·19에 의미를 부여한 것은 아니었다. 필자는 그런 것을 싫어한다. 단지 그곳이 사진 찍기에 좋았고 시인의 집과 지척지간이었을 뿐이다. ...중략...



 

인식의 차이는 그만두고 하여간 4·19와 사진은 상관이 없는 거다. 더구나 그 조잡한 조각품들 때문에 카메라 렌즈만 버렸다. 세상에 분노하면 머리카락이 하늘로 올라간다는 말은 들었지만, 그토록 큰 처녀 유방이 하늘로 치솟는 것은 처음 보았다. 독자들은 4·19탑 앞에 가보면 무슨 말인지 알 것이다. 옛 선조들의 관음보살 상은 유방이 거의 없는 듯한데 왜 그리 아름다운가. 미술하는 놈들에게 물어보자. 우리나라 처녀들 유방 크기 말이다. 그러니 이중섭이 따위의 소 그림을 걸작이라고 교과서에 실어 ? 그 소가 한국 소야. 아무튼 美大生 뽑는 뎃상 시험의 모델이 쥴리앙인가 뭔가 하는 로마 조각상이지 뭐. 가당찮다. 가당찮은 노릇이다. 그러니 그 유방이 클 수밖에. 하여간 더러운 조각품 앞에 알레르기 돋는 필자의 눈살이 찌푸려졌고 시인은 금새 알아차리는 거였다.

"거 참 못 만든 조각품이다"

시인은 부드러움과 단순함으로 필자의 번다함을 가로막아 주었다.

"이만 찍고 그냥 가지 뭐"

이렇게 편할 수가 있는가. 단순하고 간편한 말들로서. 그리고 시인은 굳이 싫다하는 필자의 소매를 이끌고 등산객들이 자주 이용하는 식당으로 갔다.

"이 집이 맛자랑등으로 신문에도 나는 유명한 집이야, 출출한데 속 좀 풀어야지"

해장국. 속만 풀었겠는가. 이 땅의 사실주의를 모르는 식민지 그림쟁이들 때문에 잔뜩 독이 오른 머릿속까지 환히 풀리는 거였다. 아아 언제일까. 우리들이 민족문화를 가지는 날은.

한 마장이 얼마의 거리일까. 老시인은 젊은이의 손을 이끌어 제법 먼 길까지 마중을 해 주었다. 잘 가라고. 여기서 버스를 탄다고. 문득 적막강산 한 자락이 그를 배경으로 하여 비에 젖고 있는 것을, 그의 시 코스모스처럼 돌아서며 돌아서며 연신 부딪치는 물결 같은 그리움이 이는 것을. 필자는 차창 밖으로 비에 젖는 아쉬움 한 자락을 문득 바라보았다.


 

끝으로 이형기의 시집을 읽고 난 소회를 말한다. 주로 시작법에 관해서만. 필자도 시인이니까.

먼저, 그의 시가 가지는 잡히지 않는 잡힘의 정조는 필자가 읽은 어떤 시보다도 탁월했다. 소설도 아닌 시에서 대상과의 거리두기를 이토록 肉化시킬 수도 있구나 하는 개안(開眼)이 있다.

둘째, 대부분의 그의 시는 시 한 편 중에서 핵심적인 이미지가 시의 뒤쪽에 놓여 있다. 이것은 그 어떤 서정시인도 흉내내지 못한 면이 아닐까 한다. 예를 들어 신경림이나 박노해 같은 서사적 서술구조를 가진 시에서는 충분히 가능하다. 그러나 그 외의 서정시에서 이러한 시작법이 가능하다는 것은 너무나 예외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시인들이 핵심적 이미지를 시의 전반부에 낭비하고 후반부에서는 칸 메우기 정도로 언어를 낭비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결같이 후반부에 힘을 쏠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시에는 태작(駄作)이 거의 없는 것이다. 필자는 커다란 감동으로 하여 밤새워 그의 시집을 모두 다 읽을 수 있었다. 아마 그것은 詩作法이 주는 감동이 훨씬 크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것이 그의 시에서 느끼는 禪的인 靜力과 관계가 없는 것일까?

그의 책 「현대시 창작 교실」을 꼭 읽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