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의 원리 - 에너지는 줄어든다
생태계의 원리 - 에너지는 줄어든다
이상훈 (수원대 교수) muusim@suwon.ac.kr
에너지란 무엇인가?
에너지(energy)는 물리학에서 “일할 수 있는 능력”으로 정의된다. 에너지의 어원은 그리스어의 에네르게이아(energeia)로서 “활동하는데 필요한 힘”을 가리키는 말이다. 사람이 아침에 일어나서 전등을 켜고 산책을 하고 밥을 먹고 자동차를 운전하는 등 하루의 모든 일이 에너지 사용의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책을 읽거나 생각을 하는 등 정신활동을 할 때에도 뇌는 에너지를 소비하므로 정신활동은 정신노동이라고 볼 수 있다. 물리학에서는 에너지의 종류로서 기계에너지, 전기에너지, 화학에너지, 열에너지, 핵에너지 등으로 나누기도 하지만 에너지의 종류에는 정신에너지도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에너지는 자연과학적인 개념이지만 동양사상에서 에너지에 해당하는 용어로서 기(氣) 개념이 있다. 기운이 세다, 기가 빠졌다, 기세가 등등하다, 기진맥진하다, 기를 보충해라 등등의 표현을 볼 때에 에너지에 해당하는 우리말은 기라고 볼 수 있다. 서양 의학에서는 기라는 개념을 측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실체를 인정하지 않지만, 한의학에서는 기를 매우 중요한 개념으로 인정하고 있다. 동양사상에서 기라는 용어가 나타내는 개념이 분명 있었지만 이러한 기를 정량화하는 과학적인 연구가 진행되지 못하고 다만 추상적인 논의 수준에서 머물러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성리학에서는 사람을 포함한 우주 만물의 존재와 운동을 이와 기라는 서로 다른 2가지 근본 원리에 의해 설명한다. 이와 기의 관계에 대해서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과 이기일원론(理氣一元論)이 대립하였는데, 조선시대에 이황(李滉)이 이기이원론을 주장하고 이이(李珥)가 이기일원론을 주장하였다. 이기이원론에서는 이와 기의 차별성을 강조하여 이가 기보다 먼저 존재하면서 기를 낳는다거나, 이는 기 바깥에 독립해서 존재하는 객관적 실재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기일원론에서는 이와 기가 서로 다른 것이라는 점은 인정하지만 양자의 상호의존적인 측면을 강조하는데, 특히 이는 기에 내재하는 원리나 법칙성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기는 에너지라는 실체를 말하고, 이는 에너지의 법칙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에너지는 점점 감소한다
생태계 내에서 에너지는 점점 줄어드는 특징이 있다. 뜨거운 커피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식어가고, 소가 여물을 먹어서 에너지를 보충하지 않으면 결국은 죽고 말 것이다. 나무가 광합성을 통하여 포도당을 만들지 못하면 죽게 될 것이다. 화초가 햇빛을 받지 못하면 죽고 만다. 생태계를 이루는 식물, 동물, 사람, 미생물은 모두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데, 흡수된 에너지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줄어들므로 에너지는 계속해서 공급해 주어야 한다.
지구생태계에서 이러한 에너지의 근원은 태양이다. 태양의 중심부는 온도가 섭씨 1500만 도로 뜨거운데, 수소원자가 핵융합 반응을 일으키면서 에너지를 발생시킨다. 수소 원자 4개가 결합하여 헬륨이 되면서 질량이 감소하는데, 이처럼 감소된 질량은 엄청난 에너지로 전환된다. 태양에너지는 빛이 되어 지구로 쏟아지는데, 식물이 광합성 반응으로 이용하는 양은 태양빛의 1% 정도이며 나머지 99%는 대기층에서의 열전환, 지구 표면에서의 반사, 지온의 상승, 수면에서의 물의 증발 등에 사용된다.
광합성을 통하여 식물은 생명을 유지하고 잎과 줄기를 만들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식물의 일부는 동물의 먹이가 된다. 사람은 쌀이나 밀같은 알곡을 먹고, 토끼는 식물의 잎과 줄기를 먹는다. 생물체에 저장된 에너지는 먹이사슬의 상위단계로 올라가면서 10% 정도만이 이용되며 나머지는 이용할 수 없는 열 등으로 손실된다. 예를 들어 태양으로부터 1000 칼로리의 열이 식물에 도달하면 식물에 저장되는 에너지는 100 칼로리에 불과하고, 동물이 식물을 먹은 후에 동물에 남는 에너지는 다시 10 칼로리로 줄어든다. 지구 표면에 식물의 양이 엄청나게 많은 데 비하여 초식동물의 양은 상대적으로 적고, 육식동물의 양은 아주 적어진다.
이러한 사실은 인류의 식량문제 해결에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인류가 식물만을 먹으면 현재의 경작지로 먹고 살 수 있는 인구가 최대 200억 정도로 추산된다. 그러나 경작지에 식물을 재배한 후에 소와 돼지 같은 가축에게 식물을 사료로 먹이고, 가축의 고기를 사람이 먹으면 지구가 부양할 수 있는 인구는 30억 명에 불과할 것이다. 채식에 비하여 육식은 지극히 에너지 낭비적이다. 서양 사람들은 이동을 특징으로 하는 유목민의 후예로서, 옛날부터 우유를 먹고, 치즈를 먹고, 소고기와 양고기를 먹었다. 햄버거, 스테이크, 핫도그, 햄 등은 모두 가축에서 나오는 음식물이다. 그러나 동양 사람들은 정착생활을 하면서 곡식을 재배하여 채식위주의 식생활을 하였다. 밥, 떡, 김치, 콩나물 등은 모두 식물에서 나오는 음식으로서 동물성 음식에 비하여 에너지의 소비가 적다.
2008년은 UN이 정한 ‘지구의 해’이었다. UN 식량농업기구(FAO)에서 나온 보고서를 보면, 6000평의 땅에서 나오는 작물로 육식만을 한다면 단 1명을 먹여 살릴 수 있는데, 만일 채식만을 한다면 80명이 먹고 살 수 있다고 한다. 육식은 채식보다 80배나 더 많은 땅을 필요로 한다. 고기를 씹으면 맛이 있지만 육식은 에너지의 낭비가 심한 식사법이다. 2007년 노벨상평화상을 수상한 단체인 ‘유엔 정부간 기후변화위원회(UN IPCC)'의 라젠드라 파차우리 의장은 지구 온난화를 멈출 수 있는 실천사항으로서 (1) 육식하지 않기, (2) 자전거 이용하기, (3) 검소한 소비자 되기를 제창하였다. 가축을 기르는 과정에서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므로 육식은 이산화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식사법이다. 최근에 비만을 줄이고 건강에 좋다는 웰빙 식품은 모두 채식성 먹거리임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에너지와 열역학 법칙
열역학 제1법칙은 에너지가 다른 형태로 전환되더라도 총량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음식물은 분해되어 영양소, 이산화탄소, 물 등으로 형태가 변하더라도 에너지의 총량은 변하지 않는다. 이러한 에너지보존의 법칙은 질량보존의 법칙과 유사성이 있다. 열역학 제2법칙은 에너지가 전환되면서 이용할 수 없는 열에너지로 흩어진다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에너지가 농축되어 있는 석탄을 태우면 열이 나오면서 재가 남는데, 열은 흩어지면서 더 이상 이용이 불가능하다.
열역학 제2법칙을 어려운 용어로 달리 표현하면 닫힌 계(closed system)에서 엔트로피(entropy)는 항상 증가한다고 말할 수 있다. 엔트로피란 원래는 내연기관의 열효율을 연구하면서 고안한 개념으로서 물리학에서는 정확히 정의되지만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쉽지 않으며 오해를 불러 일으키는 경우가 있다. 엔트로피를 설명하면서 흔히 드는 예가 “가지런히 정돈된 방은 시간이 지나면서 어지럽혀진다,”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른다,” “열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흩어진다,” 등등이다. 질서있는 상태는 엔트로피가 낮은 상태이고 무질서한 상태는 엔트로피가 높은 상태인데, 자연현상은 무질서한 상태 또는 안정된 상태로 진행하게 된다.
열역학 제2법칙을 때때로 잘못 적용하는 경우도 있다. “열역학 제2법칙에 따라 모든 문명은 멸망하게 되어 있다”든가 “진화론은 열역학 제2의 법칙에 위배된다”는 등의 진술은 열역학 제2법칙이 잘못 적용된 경우라고 본다. 지구는 태양으로부터 계속적으로 에너지를 공급받으므로 닫힌 계가 아니다. 그러므로 지구생태계에서 하등동물로부터 고등동물로 진화가 일어난다고 해서 열역학의 법칙을 위반하는 것은 아니다.
화석에너지와 대체에너지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에너지는 화석연료가 대부분으로서 석탄, 석유, 천연가스 등이 모두 화석연료이다. 이들 화석연료는 지금부터 3억 4500만 년 전부터 6000만년이나 계속된 석탄기에 무성했던 나무, 그리고 바다나 호수에 번성하던 생물이 땅속에 묻혀 변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3억년 전의 태양에너지가 오랫동안 저장된 것이 화석연료이다. 인류가 이러한 화석연료를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산업혁명 때부터이다. 산업혁명과 함께 화석연료의 사용량이 엄청나게 늘어나고, 화석연료를 태우면서 인류는 편리한 문명생활을 누릴 수 있었다.
화석연료가 만들어지기까지 3억 년이 걸렸는데 인류는 앞으로 200년 이내에 화석연료를, 그중에서도 우선적으로 석유를 고갈시킬 지도 모른다. 현재처럼 화석연료를 많이 사용하면, 가채년수가 석유는 50년, 석탄은 200년을 넘기지 못할 것이다. 가정에서 조리할 때에 사용하는 천연가스 역시 가채년수가 50년을 넘지 못한다. 그러므로 화석에너지는 지속가능한 에너지가 아니며 화석연료 대신 사용할 수 있는 대체에너지의 개발이 시급하다.
대체에너지란 화석에너지를 대체할 수 있는 에너지를 말한다. 예를 들면 원자력, 태양에너지, 풍력에너지, 조력에너지, 수소에너지 등을 말한다. 우리나라의 대체에너지개발촉진법에서는 그밖에도 바이오에너지, 폐기물에너지, 소수력, 석탄이용기술, 연료전지 등이 모두 대체에너지에 포함된다. 원자력은 화석연료를 대체할 수 있으므로 대체에너지라고 볼 수 있으나 처리하기가 어려운 방사성 폐기물이 만들어진다는 점에서 깨끗한 대체에너지라고는 말할 수 없다. 작년 8월에 정부의 국정목표로서 ‘저탄소 녹색성장’이 제시된 후 모든 분야에서 유행어가 되었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2030년까지 원자력 발전소 10기를 추가로 건설하여 전력수요를 충당할 것이라고 한다. 원자력 발전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으므로 ‘저탄소’는 맞으나 녹색에너지는 아니며, 환경단체에서는 원자력발전소의 증설을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원자력을 제외하면 우리나라의 대체에너지의 사용비율은 2006년 현재 2.2%에 불과한데 이명박 정부에서는 2030년까지 11% 이상으로 높이는 계획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목표치는 다른 나라에 비하면 너무 낮은 감이 있다. 프랑스와 일본은 대체에너지의 사용비율을 2020년까지 20%로 높이는 목표를 설정하였다. 우리나라도 최소한 이들 선진국 수준으로 목표치를 높이고 대체에너지의 기술개발 분야에 보다 많은 연구비를 투입하여야 할 것이다.
에너지는 물질로 변할 수 있다
질량을 가지고 있는 석탄을 태우면 열에너지로 바뀐다. 열에너지는 물질이 아니며 질량을 잴 수 없고 형체도 없다. 태양은 현재는 매우 뜨겁지만 수소 연료를 다 소모하고 나면 50억 년 후 차거운 별로 변하여 수명이 다할 것이다. 그날이 오면 태양의 행성인 지구 역시 차겁게 변하고 생태계는 사라질 것이다. 사람처럼 태양도 탄생과 죽음이 있다. 사람의 수명은 길어야 100년이지만, 태양의 수명은 100억년으로 추정한다. 지구생태계는 전적으로 태양에 의존하고 있으므로, 장기적으로 말하면 지구생태계는 영원히 지속가능한 것은 아니다.
에너지는 그 자체는 형체가 없지만 물질로 변할 수 있다. 이러한 과학적인 사실을 간결하게 표현한 식이 아인슈타인의 E=mC2 이라는 식이다. 여기서 E는 에너지를 말하고, m은 질량을 말하며 C는 빛의 속도를 나타내는 상수이다. 이 식이 나타내는 바는 질량과 에너지가 상호 전환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주가 시작되던 대폭발시에 엄청나게 뜨거운 에너지 덩어리가 있었다. 이 에너지덩어리가 폭발하면서 팽창하게 되고 성간물질이 생겨나고 이러한 성간물질이 엉켜서 은하계가 되고 별이 되고 행성이 되고 현재의 우주가 만들어졌다.
생태계에서 에너지는 순환하는 것이 아니고 일방적으로 흐른다. 에너지의 흐름은 태양으로부터 시작하여 식물을 지나 동물로 이동하면서 더 이상 이용할 수 없는 열에너지로 흩어진다. 그밖에도 화석연료로부터 시작하여 연소과정을 거쳐 열에너지로 흩어지는 흐름도 있다. 이러한 에너지 흐름의 특징은 일방통행이라는 점이다. 에너지의 흐름은 어찌 보면 시간의 흐름과 유사하다. 시작이 있고 한쪽 방향으로만 흘러간다.
불교의 반야심경에는 ‘색즉시공 공즉시색 (色卽是空 空卽是色)’이라는 말이 있다. 불교학자들은 이 표현이 아이슈타인의 E=mC2을 잘 나타낸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E는 형체가 없는 공(空)이고, m은 형체가 있는 색(色)이라는 해석이다. 불교신자가 들으면 기분좋은 해석이겠지만, 과학의 영역과 종교의 영역은 구별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된다. 반야심경에 나오는 공을 에너지로 해석하는 것은 일견 일리가 있지만 불교의 핵심개념인 공을 너무 좁은 의미로 해석하는 것으로 생각된다.